항목 ID | GC01902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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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麻衣太子-德周公主 |
영어의미역 | Maui Crown Prince and Deokju Princes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한종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미륵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과 결부되고 있고,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사 창건과 관련된 사찰연기담이다.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서러워하여 이곳까지 와서 미륵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마의태자가 세운 미륵불상은 현재 보물 제96호로 지정된 괴산미륵리석불입상이다. 덕주공주가 세운 마애불상은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의 덕주사지에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으며, 2002년 충주시에서 발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도 수록되었는데, 그 내용은 『전설지』와 동일하다.
[내용]
수안보면 최동단에 미륵리가 있다.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신라의 부활을 꿈꾸며 양병을 위한 장소로 오대산을 정하였다. 마의태자가 오대산으로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왕자의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한터가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건조하며, 그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리라. 포덕함을 잊지 말아라.”고 현몽하였다.
같은 시각에 덕주공주도 같은 현몽을 받았다. 두 남매는 고개를 넘어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곳에 석불입상을 세우고, 마주 보이는 영봉 밑에 마애불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후 마의태자는 오대산으로 떠났고, 덕주공주는 이곳에 머물다 입적했다. 그 후 미륵사 미륵불상과 덕주사 마애불상이 북두칠성의 빛을 받아 서로 상서로운 기운이 상통한다고 하며, 그를 통해 나라의 변이 일어날 것을 예측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주요 모티프는 ‘마의태자의 현몽과 미륵불상’, ‘덕주공주의 현몽과 마애불상’으로, 마의태자가 부처님의 현몽으로 미륵리 미륵사를 창건하고 미륵불상을 세웠다고 하는 사찰연기 설화이다. 마의태자 모티프는 마의태자에 대한 당시 유민들의 애정과 신라 왕실을 불심으로 복원해 보겠다는 염원이 함께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덕주공주 모티프도 덕주공주가 미륵불이 마주 보이는 영봉 밑에 마애불을 조각했다는 마애불상의 유래이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는 미륵사 미륵불과 덕주사 마애불의 탄생과정 이야기로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하여 전설이 생성되는 바, 전설의 형성과 전승을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