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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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한약방 건물. 논산시 남서부에 위치한 강경읍은 금강 중하류의 경계이자 공주 등과 가까운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젓갈 시장이 형성된 곳으로 1914년 논산시에 편입되었으며, 1920년대에는 충청남도에서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상업 지역이었다.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은 2002년 2월 28일 등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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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시장. 조선시대 강경장(江景場)은 금강 수운을 기초로 하여 주변 지역에서 산출되는 생산물의 집하, 배급 기능을 담당하는 시장이었다. 강경장은 추석이나 설을 전후한 시기에 1만 5천여 명 이상이 몰리는 큰 시장으로, 19세기 초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전국 15개 장시 중 하나로 꼽혔으며, 조선 말기에는 대구장·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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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포구. 강경포구는 금강 본류와 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으로 통하는 논산천, 강경천, 염천 등의 지류가 이어지고, 서해의 조류도 강경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해상 교통과 내륙 교통을 잇는 큰 포구로 번성하였다. 강경포구는 조선 말기 3대 시장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강경장을 배경으로 하여, 성어기인 3~6월의 4개월 동안은 하루 100여 척의 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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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 금강과 논산천이 합류하는 가항(可航) 포구로서 전라북도 용안면의 평야 지대, 논산평야 등 국내 굴지의 미곡 생산지를 배후에 끼고 있어 조선 후기 이래 전국적인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876년 개항 이래 충청도 전체의 시장권이 철도와 개항장을 거점으로 제국주의적 상품 유통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 시장권의 중심인 강경의 지위는 하락하였다. 그러나 유통시장권에서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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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이 평양 및 대구시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일제강점기에 최대 인구는 3만 명에 달하였다. 상인 등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약 10만 명 정도의 인구가 한꺼번에 모여들었다. 이러한 인구의 집결은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의 보급도 빨리 오게 하였다. 1920년대 도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강경만의 전기 공급을 위한 화력발전소가 대흥리에 1백 평 규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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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동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시장. 논산 지역은 지역적으로 주요 곡창 지대인 논산평야를 끼고 있고, 논산천을 통한 선운이 편리하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시장이 발달하였다. 논산장은 조선 말기부터 논산시 은진면은 물론 노성면·연산면 등지에서 많은 물화가 집산되어 형성되었다. 논산장은 예부터 평양시장·대구시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으로 유명하였다. 논산장은 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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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강경포구는 경제수탈의 관문이었다. 1920년대 초 강경은 금강 수운에 의한 내륙으로의 상품이동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고, 강경장도 퇴락해갔지만, 포구는 일본의 농수산물 수탈 전진기지로 바뀌어 계속 이용되었다. 충청도와 내륙지방의 쌀과 면화는 뱃길과 철길을 통해서 빠르게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일본인들은 강경시내 5곳에 대형 도정공장을 세우고 논산평야·강경평야는 물론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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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논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북동쪽은 계룡산(鷄龍山)·대둔산(大芚山)이 걸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또한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호 유교 문화권의 중심이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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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논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남부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북동쪽은 계룡산(鷄龍山)·대둔산(大芚山)이 걸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또한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호 유교 문화권의 중심이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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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군. 옥녀봉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이 옥녀봉 앞에서 휘돌아 흘러 넓은 강폭을 이루며, 잔잔한 물가에 물고기들이 노닐며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연 경치를 즐기며 곳곳에 암각을 새겨 놓은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암각 해조문은 선박들의 왕래를 돕기 위해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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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있는 산. 옥녀봉은 논산시 강경읍 금강 변에 있는 낮은 야산이나 주변 일대가 금강 변의 넓은 평야 지대여서 실제보다 높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은진현 서쪽 금강에 접한 지리적 요충지로서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고, 아래에는 포구와 은진현의 세곡이 모이는 강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옥녀봉의 봉화는 남쪽으로는 익산군 용암면의 광두원산의 봉수, 북쪽으로는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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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된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기술한 형식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나 연혁,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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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이근석은 1898년 3월 23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면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이근석은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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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근오는 1901년 3월 22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으며,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근오는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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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송재기·이근석·이봉세 등은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근태는 1919년 3월 20일 오후 5시경에 강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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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봉세는 1899년 4월 2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고, 논산 지역에서도 1919년 3월 10일과 3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독립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봉세는 1919년 3월 20일 강경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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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의 논산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개설된 장시망. 조선시대 논산 지역의 장시를 살펴보면, 은진에는 읍내장·저교장(楮橋場), 강경장(상·하장으로 구분), 논산장, 연산에 사교장(沙橋場)·두마장(斗馬場) 등의 장시가 있었지만 노성에는 없었다. 논산이 위치한 금강 유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장시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전체의 장시권 평균 면적은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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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시장의 역사는 17세기 말경에 열린 하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시장이라기보다 민간 소유답에 휴한기를 이용하여 상품을 진열하는 정도였다. 1808년 저습지를 매립하여 입지를 확보하면서 큰 시장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 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가지를 조성하게 되어 상권은 더욱 넓어졌다. 상시장이 생긴 것은 지금의 북옥동 등 옥녀봉 밑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을 증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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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젓갈시장 이 형성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염천리에서 젓갈상점을 운영해온 형제상회 박청수(남, 1939년생, 형제상회 사장) 사장을 만나 염천리의 변천과 젓갈상회의 유래 등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염천리의 지명은 예전부터 ‘염정(鹽井)’, ‘염대(鹽臺)’, ‘소금터’라고 불렸었는데, 염정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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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기섭은 1898년 12월 2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 27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염정(䀋町) 지역에서 곡물상을 경영하고 있던 정기섭은 1919년 3월 10일 오전 엄창섭(嚴昌燮) 등의 독립 만세 운동 주동자들의 참여를 권유받고 이날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규섭에게도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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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추병갑은 1903년 8월 14일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6일과 3월 7일경 세도면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0일 강경 장날에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정하고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919년 3월 8일 추병갑은 강경읍에서 한지 60매,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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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개최되는 각종 의례와 행사. 모든 예술이 미분화 상태로 엮어져 있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지닌 것이 축제이다. 더불어 축제의 원 의미 속에는 종교성을 포함하므로, 축제는 예술적 요소가 포함된 제의를 일컫는다. 축제는 애초 성스러운 종교적 제의에서 출발했으나 유희성을 강하게 지니게 되어 오늘날에는 종교적인 신성성이 거의 퇴색되었다. 하지만 축제라는 말 자체가 곧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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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중앙리 67번지에서 쌀 상회를 운영하면서 중앙2리 이장을 맡고 있는 서완길(徐完吉) 이장은 강경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토박이이다. 서완길 이장은 강경포구가 번성하였던 1970년대 초반까지 포구에서 객주 생활을 하였다. 서완길 이장은 달성서씨로 원래는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이 고향이다. 그의 집안은 논산시 가야곡에서 13대 조상부터 살아왔다.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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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규섭은 1898년 2월 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전에 한규섭은 정기섭(鄭沂燮)으로부터 50명의 청년이 강경 지역으로 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정해져 있고, 다른 지역은 이미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후에 있을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았다. 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