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이하곤이 개태사 옛터를 지나며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과개태사구지유감(過開泰寺舊址有感)」은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문집 『두타초(頭陀草)』9책에 수록되어 있다.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여러 사찰과 암자를 찾아다녔던 이하곤이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를 황산(黃山)에서 토벌한 기념으로 세운 개태사의 유허를 지나며 그 사연을 읊은...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서 보냇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표진강은 양촌, 반야산 앞을 지나 논산·강경을 안고 돌아 금강과 합류하여 서해 바다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그 강을 가로질러 반야산 우측 마을 거북실에서 오약골 넉바위까지 380칸의 긴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이 다리는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
-
1779년 한 노승이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 봉황루에 올라 지은 한시. 「쌍계사 봉황루 등루부운(雙鷄寺 鳳凰樓 登樓賦韻)」은 노납(老衲: 납의를 입은 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노승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고만 알려진 작자가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로,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 봉황루 현판에 남아 있다. 고루에 나 홀로 누워 (高樓我獨臥) 마음은 하늘을...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에서 전한로의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전한로는 조선 후기 성동면 삼산리 사람으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1779년(정조 3)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정려문 현판은 ‘효자진무부위우군 사용증 승정원좌승지 전한로지문(孝子振武副尉右軍司勇贈承政院左承旨 田漢老之門)’이라 되어 있다. 전한로 효행 정려는 원래 성동면 삼산리에 있었는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지경리·대명리에서 조석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바우내에서 박재림(남, 76)·박재홍(남, 72)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3년 암천정신연구소에서 출간한 『암천 박증과 모곡서원』에 수록하였다. 17세기 중엽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 박상문이란 인물이 살았다. 박상문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학당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바우내에서 박재림(남, 76)·박재홍(남, 72)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3년 암천정신연구소에서 출간한 『암천 박증과 모곡서원』에 수록하였다. 조선시대에 진산 고을에 김 아무개라는 인물이 살았다. 김 아무개는 외아들로 자라서 버릇이 없었다. 때문에 김 아무개는 성장한...
-
1712년(숙종 38)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학자 윤선거의 문집.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의 문집은 아들 윤증(尹拯)이 직접 정리하고 편차하여 1712년에 노강서원(魯岡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당시 기휘(忌諱) 사항이었던 윤휴와 관련된 글들은 모두 별집(別集)으로 모아 따로 편차하였다. 그 외에 속집(續集), 부록(附錄)도 수록 내용을 살펴볼 때 원집...
-
1741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윤순거의 문집.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시문은 1671년경 아들인 윤진(尹搢, 1631~1698)과 조카인 윤증(尹拯, 1629~1714), 윤추(尹推) 등이 수습하여 교정하였다. 이 원고를 집안에서 보관해오다가 1712년(숙종 38) 윤증과 손자인 윤지교(尹智敎), 윤인교(尹仁敎) 등이 편정(編定)하여 간행을 시도하였...
-
1732년(영조 8)에 간행된 조선 후기 논산 출신 문신 윤증의 문집. 윤증(尹拯, 1629~1714)의 종손(從孫) 윤동수(尹東洙, 1674~1739)가 쓴 발문(跋文)에 의하면 1732년 윤증의 아들 윤행교(尹行敎)와 손자 윤동원(尹東源)이 『주자대전(朱子大全)』의 범례에 따라서 서차를 정하여 편집하고 활자로 인출(印出)하여 간행하였다. 이후 1800년대 초반에 중간이 이루어졌...
-
1687년(숙종 14)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김장생의 문집. 1685년(숙종 11) 홍수주(洪受疇)가 윤증(尹拯)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리며 이이(李珥)가 삭발을 했었다는 증거로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글을 인용하자 조정에 일대 시비가 일어났다. 결국 그 해 5월 홍수주의 상소와 김장생의 문집을 들이라는 하교가 있었다. 그 해 9월 송시열(宋時烈, 16...
-
1710년(숙종 36)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김집의 문집. 1710년 유고(遺稿) 15권 7책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는데, 이는 초간본(奎6182)에 실려 있는 연보를 통해 알 수 있다. 더 이상 자세한 언급은 없고, 서나 발도 없어 누구에 의해 어디에서 간행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1922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사계전서(沙溪全書)』가 간행된 데 이...
-
1775년(영조 51)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학자 윤원거의 문집. 윤원거(尹元擧, 1602~1672)의 시문은 윤원거가 죽은 직후 아들 윤유(尹揄) 등이 수집하여 윤증(尹拯, 1629~1711)의 산정(刪定)을 거쳐 2편으로 엮어 정사(精寫)하여 집안에 보관해 왔다. 이 고본(稿本)을 바탕으로 증보하여 1775년에 족현손(族玄孫) 윤광소(尹光紹)가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돌다리. 강경 미내다리는 채운면 삼거리 강경천에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놓였던 다리이다. 강경 미내다리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로 건설 당시 삼남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다리였다. 3개의 홍예(虹霓)는 가운데가 크고 남북쪽이 약간 작으며, 받침은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
조선 후기 강경포구에서 상품의 위탁판매·창고업·화물수송업·금융업 등을 행하던 중간 상인. 논산의 서쪽에 자리한 강경포구는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이 증대되면서 18세기 이후 상품작물이 등장함과 동시에 장시(場市)로 크게 발전한 곳이다. 전국의 3대 장시로 불릴 만큼 큰 규모의 장시가 열리고 상품유통이 활발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장시에는 수많은 전문직의 사람들이 상주하였는...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적비. 관촉사 사적비는 관촉사의 상징인 은진미륵 및 정문과 법당의 조성 경위를 밝히고 있는 사적비로서, 1743년(영조 19) 승려 각혜와 속인으로 구성된 불량계원(佛粮契員) 다수가 참여하여 세운 비이다. 관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인 마곡사의 말사로 963년(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하였다. 관촉사 사적비는 화강암으로 변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평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광산김씨 효열부 3명에게 내려진 정려. 조선 명종 때 광산김씨 가문의 사당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조상의 신주를 꺼내 오기 위해 불길에 싸여 있는 사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할머니가 나오지 않자 그 며느리가 뒤를 이어 사당 안으로 들어갔고, 또 아무런 소식이 없자 곧이어 손자며느리도 뒤를 따라 들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 윤씨 문중 서원 터. 구산서원은 서인계 성혼의 학맥을 이은 곳으로, 훗날 후손 중에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尹拯)이 배출되었다. 파평 윤씨는 성혼, 김장생, 김집, 송시열 등 대 유학자들과 관계가 깊은 대표적 호서 명가의 하나이다. 특히 김장생의 광산 김씨와 빈번한 혼인 관계를 맺었는데, 이는 호서 사림 내에서 파평 윤씨 일족의...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성(子誠), 호는 반곡(盤谷). 권겹(權韐)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전(權佺)이며, 아버지는 집의를 지낸 권양(權讓)이다. 어머니는 홍사도(洪思道)의 딸이다. 권수는 권속(權謖)에게 입양되었다. 아들은 권적이며, 딸은 현감 김지경에게 출가하였다. 권수는 1679년(숙종 5) 진사가 되고, 1692년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 소재 권수 묘소 앞에 세워진 조선 후기 묘비. 권수의 자는 자성(子誠), 호는 그가 살던 고장의 이름을 따서 ‘반곡(현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즐겼으며, 책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 성품이 강직하고 반듯해서 관직에 있을 때는 바른 정치를 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에 따라 홍문관에...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권수의 묘소. 권수(權𢢝, 1656~1718)의 본관은 안동, 자는 자성(子誠), 호는 그가 살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반곡(盤谷, 지금의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이라 하였다. 권수는 성품이 굳세고 반듯하여 관직에 있을 때 바른 정치를 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항상 청렴·신중·근면을 신조로 공무에 임하였으며, 공...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소재 기계유씨 묘소 앞에 세워진 조선 후기 묘표. 기계유씨는 김집의 아내로 좌의정 유홍의 딸이다. 1592년 김집에게 시집 왔으나 자식 없이 별세하였다. 사후에 김집 묘소와 거리도 떨어져 있고 비석도 없었기 때문에 기계유씨 묘표를 건립하였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
-
‘충절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충청도, 그 이미지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충청 지역을 대표하고 있으며 강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그러한 상징의 연원은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고 있었던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논산에서 뿌리내린 호서 사족의 활약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기호 유학을 이야기할 때...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17세기 이후 발전한 기호 지역의 성리학. 기호유학은 이이(李珥), 성혼(成渾), 조헌(趙憲) 등 경기 지역의 유학자들에 의해 성립되어,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 충청 지역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전한 유학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학술적으로는 이이의 학설을 따르는 학파를 주기적 경향의 성리학을 전개했다고 평...
-
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강재윤(姜在潤)이다. 김두한의 처 진주강씨는 출가한 후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남편의 대소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자기의 넓적다리를 베어내고 손가락을 잘라 공양하며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었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죽자 1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죽으려고 물속에 뛰어들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자결하지 못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광산 김씨 돈촌가에서 전해 오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김만증의 초상. 김만증(金萬增)[1635~1720]의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증손자이며,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만년에는 고향에서 학문에 몰두했다. 「김만증 초상」은 복건에 심의를 입은 김만증의...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화(汝和), 호는 기기재(棄棄齋)·묵계(默溪). 광성군(光城君)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하겸(金夏兼)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중과(李仲科)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큰아버지 김용겸(金用兼)에게 입양되었다. 김상연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배웠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6년(숙종 42) 부친상을 당...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 장선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수의 처 완산이씨 정려. 완산이씨는 고령인 남편 김수(金檖)가 죽자 뒤를 따라 죽었다. 이 사실을 알고 조정에서 1772년(영조 48) 정월에 정려를 내렸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시 탄천면으로 통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6㎞쯤 가면 공주시와 논산시의 경계 지점에 호암리 장마루마을이 있으며,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1...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응근의 불망비. 김응근(金應根, 1793~1863)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경(溪卿), 호는 의석(宜石)이다. 1816년(순조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822년 익위사세마가 되었다. 그 뒤 외직으로 여러 고을 수령을 거쳐 1857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에 제수되었다가 1860년 공조판서, 이어 형조판서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자건의 묘비. 김자건은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시문에 뛰어났으며 서예가였다. 자는 이계이고, 광산인이다. 좌찬성 김극복의 후손으로 김덕린의 아들이다. 1656년(효종 7)에 재학으로 추천되어 선공감역 빙고별감을 지냈으나 효종이 승하하자 벼슬을 버리고 산수를 벗삼아 초야에 묻혀 살았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 김씨 문원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1717년(숙종 43) 김장생의 문묘 배향을 명하는 교서.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1578년(선조 1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른 뒤 창릉 참봉을 거쳐 정산 현감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조 정랑으로 명군의 군량...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사계 김장생의 후손이다. 김재경은 광산김씨 7대조에 자손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다. 양자로 들어간 뒤에 양어머니가 아들 삼형제를 두게 되어 구박을 받았으나 친부모에게 다하지 못한 효도를 양부모를 위하여 다하였다. 양어머니는 처음에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그의 마음이 변함없고 진심함을 알고 난 후에는 친아들처럼 잘 보살펴 주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재경의 정려. 김재경은 광산김씨 7대조에 자식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는데, 양자로 들어간 뒤 양어머니가 아들 셋을 낳으면서 김재경을 구박하였지만 효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주위에 김재경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64년(고종 1) 정려가 내려졌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를 가다가 남쪽 도로로 2.5㎞를...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숙우, 호는 삼육재.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입부(立夫) 김성휘(金成輝)이다. 김정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항상 손바닥에 ‘효우(孝友)’ 두 글자를 써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잊지 않고 보곤 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환이 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숙진1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중창의 정려. 김중창(1619~1684)은 본관이 광산이다. 광산김씨로 부원군 김국광의 7세손이며, 충곡서원에 배향된 김정망의 아들이다. 1654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중창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대변을 맛보면서 병세를 짐작하였고 단지(斷指)하여...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 사계 김장생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영돈령부사 김만기(金萬基)이고, 어머니는 한유량(韓有良)의 딸이다. 누이동생은 숙종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이며, 부인은 정철(鄭澈)의 6대 손녀로서 1752년(영조 28)에 정려를 받았다. 김진규는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1686년(숙종 1...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김장생의 현손이며, 할아버지는 참판 김익훈(金益勳)이다. 아버지는 김만채(金萬埰)이며, 어머니는 이항(李杭)의 딸이다. 김진상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으며, 1712년(숙종 38)에 정시문과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설서·지평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20년(숙종 46)...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철산의 묘비. 김철산의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김문(金問)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천품이 순후하고 강직하여 모두가 숨은 덕이 있다고 칭송하였다.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에 책봉되었고,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의정부사 광성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처음 세워진 묘비는 오랜 세월의 풍우로 인해 마모되었고, 172...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가 대래, 호는 둔암(屯庵). 김필태는 향리에서 후학들을 교육하여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여 돌아가신 뒤에도 성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안 도백의 추천으로 사헌부감찰과 영릉령을 지냈다. 1811년(순조 11) 문인인 황언진(黃彦鎭) 등의 편집을 거쳐 손자인 김광옥(金光鈺)에 의해 간행된 『둔암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한수의 불망비. 김한수의 공적을 잊지 않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건립한 불망비이다. 김한수(金韓洙)의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기 어렵지만, 『방여총지(方輿總志)』 전라도 지역 증직 인사 명단에 순조 연간 ‘광산인감찰(光山人監察)’로 올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1830년에 비가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
조선 후기 『정역(正易)』을 집대성한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심(道心), 호는 일부(一夫). 부인은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김항은 어릴 때부터 어질고 너그러운 도량과 재능으로 모습이 비범하였으며, 글 읽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에 깊이 침잠하고 예문(禮文)에 조예가 깊었다. 또 한(漢)·당(唐)·송(宋)·명(明)의 문장(文章)과 이학(理學)에 이르기까지 정통하...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선지(善之), 호는 근와(芹窩). 사계 김장생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수택(金壽澤)이다. 아버지는 김상경(金相庚)이며, 어머니는 이광택(李光澤)의 딸이다. 김희는 1762년(영조 38)에 생원이 되고 음보(蔭補)로 봉사가 되었다. 1773년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77년(정조 1)에 초계어사에 선발되었다. 1779년 교리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면장 남덕원의 불망비. 남덕원 불망비는 면장 남덕원이 베푼 선정을 기려 면민들이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통하는 포장도로를 따라 약 6.5㎞쯤 가면 백석리에 이르는데, 남덕원 불망비는 도로의 오른쪽에 김두종 불망비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근처에 이공겸 부부 효열 정려가 자리 잡고 있다. 비석은 호패형으로, 비의 앞면에 ‘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감 남준응의 선정비. 남준응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연산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연산현 주민들이 세웠다. 원두갈로,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의 크기는 높이 101㎝, 너비 43㎝이다. 비의 앞면에 ‘현감남후준응선정비(縣監南侯駿應善政碑)’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산현감을 지내고 떠난 사람 중 선정비가 세워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공자의 영정이 봉안된 사당. 노성 궐리사는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闕里村)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궐리사는 강원도 강릉과 충청북도 제천, 경기도 화성에도 있었으나 현재는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와 경기도 화성 지역에만 남아 있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400m 정도 가면 북쪽으로 향하는 소로가 있다. 이 길로 약 450m...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노강서원은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1682년(숙종 8)에 사액을 받았다. 성향은 기호계이며, 윤황을 주향으로 하고 윤문거(尹文擧), 윤선거(尹宣擧), 윤증(尹拯) 3인을 추향하는 서원이다. 논산시 광석면에서 북쪽으로 약 1.3㎞를 가면 오강리로 건너는 덕포천 운교(雲...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건물. 논산 노강서원 강당은 1675년(숙종 1) 김수항(金壽恒)의 발의로 윤황(尹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윤황은 논산 출신의 문신이다. 기호 지역 유교 건축의 귀중한 양식적 특징과 지역성, 그리고 17세기 말 서원 건축의 시대적 양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건축물로서 2011년 12...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명재 윤증의 고택. 논산 명재 고택은 논산시청에서 약 6㎞ 북쪽 지점의 노성면사무소 인근 교촌리 노성산 남쪽 기슭에 노성향교, 노성 궐리사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논산 명재 고택은 조선 후기 숙종 대에 건립되어 후대에 수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안채와 사랑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멸실되었던 사당은 1983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이 지은 고택. 이삼 장군 고택은 1727년(영조 3) 이삼이 훈련대장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2등공신 함은군에 피봉되고, 건립비를 하사받음에 따라 지은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이다. 1985년 충청남도에서 안채와 사랑채를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하였다. 국도 23호선 노성면 나들목을 통해 지방도 6...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논산 백일헌 종택은 백일헌(白日軒) 이삼(李森)[1677~1735]이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영조로부터 받은 하사금으로 1700년대 초 지은 전통 가옥이다. 창건 당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가옥 내 영역 구성 수법이나 동선 체계 등 건축 구조나 양식적인 면에서 가치가...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쌍계사는 논산의 최남단으로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작봉산[불명산]을 주산으로 삼고 있으며, 사찰 이름에서 살필 수 있는 것처럼 두 계곡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화재로 폐기된 것을 1716년(숙종 42)에 중창하였고, 1736년(영종 12) 화재로 전소된 것을 1739년 다시 중건하였다. 논산...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논산 쌍계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은 2011년 3월과 4월 각각 문명 대학교와 한국 미술사 연구소의 두 차례에 걸친 복장 조사를 통하여 발원문을 비롯한 후령통(候鈴筒),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관세음보살 보문품」[1462], 『묘법연화경』,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240, 다라니 등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을 통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논산석교를 중수한 뒤 세운 2기의 비. 은진현감 서증보(徐曾輔)가 큰 장마로 유실된 다리에 큰 돌을 놓아 논산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고,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통행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비로, 1846년(헌종 12)과 1858년(철종 9)에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득안대로를 타고 강경 방향으로 약 2㎞ 가다가 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재실. 양천허씨는 태조 때 대사헌을 지닌 허응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에게 출가하였고, 17세에 홀몸이 되자 친정 부모의 재가 권유를 거부하고, 연산에 내려와 유복자인 김철산을 키우며 일생을 마쳤다. 훗날 자손 중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을 비롯, 대사헌을 지낸 김계휘, 기호 사림의 거두 김장생과 김집 등 대유학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반남박씨의 재실. 상월면 대우리는 반남박씨의 집성촌이다. 논산 영사재는 예빈시참봉을 지내고,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박동민(朴東民, 1556~1593)과 사헌부집의를 지낸 아들 박휘, 손자 박세기(朴世耆,1618~1691) 3대를 제향 하는 재실이다. 1690년 창건되었고 논산 영사재 앞에는 박세기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그 밖에 묘표석...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에 있는 조선시대 돌다리. 다리 앞에 대리석으로 된 원항교 개건비(院項橋改建碑)가 서 있는데, 비문에 따르면 1900년에 4명의 승려가 기금을 내고 민간인이 협조하여 모금한 4,130냥으로 다리를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논산 원목다리(원항교)가 처음 세워진 때는 강경의 미내다리와 같은 시기인 1730년경으로 추정된다. 논산 원목다리는 조선시대...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담양전씨 전녹생의 문집 『야은일고』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 담양전씨 장판각은 논산시청 뒤편의 도로에서 관촉사 방향 대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내동 마을 회관 건너편에 있던 것인데, 1999년경 장판각에서 보관 중인 목판과 고서적을 도난당하면서 2008년 7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남아 있는 목판의 일부는 담양전씨 재실로 옮겼다. 논산시 내동과...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동흥리에 있는 사설 국궁장. 덕유정은 옛 선현들을 본받아 국궁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에서 건립되었으며, 그 의미는 1948년 이은국(李殷國)이 지은 「관해루기(觀海樓記)」를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덕유정은 강경의 사정이요, 관해루는 덕유정의 누각이다. 노소 사원들과 일반 내빈의 쉼터로 외적의 침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중수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호·김계휘를 제향하는 재실. 모선재는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조부(祖父)인 김호와 부친 김계휘(金繼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자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략 1700년대 초반인 것으로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 가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산부사 민의호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95㎞ 직진하다 보면 황화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봉곡서원이 나온다. 민의호 불망비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서향으로 서 있다. 비석은 귀접이형으로 높이 100㎝, 너비 40.5㎝, 두께 11㎝이다. 앞면 좌우에 공적 내용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공충도관찰사를 지낸 민치상의 선정비. 민치상(1825~1888)은 1867년 공충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뒤이어 1870년 11월까지 공충감사(公忠監司)를 잉임(仍任)한 기록이 있다. 민치상 선정비가 신미년에 건립되었으므로 민치상의 재임 시기와 신미년을 대조하면 1871년(고종 8)을 선정비의 건립 연대로 짐작할 수 있다. 논산시에서 공...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동민의 신도비.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야 세울 수 있는데, 박동민은 사후에 증직되어 종2품인 참판 벼슬을 받아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증조와 조부가 현달하고 형제와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다. 묘를 이곳에 쓰고 자손들이 세거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박동민은 예빈시참봉으로 있으면서 1593년(선조 26)에 죽었으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무안(務安). 성삼문(成三問)의 외손으로서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로 낙향한 박증(朴增)의 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종원, 아버지는 박훈이다. 박상문은 효자로 대대로 이어오는 가풍을 본받아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마을 앞의 개울로 나가 조석으로 물고기를 잡아 봉양하여 이곳에 놓여 있는 다리가 조석교(...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박종후이다. 박성일은 1750년(영조 26) 식년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는데, 『사마방목(司馬榜目)』에 거주지가 니산(尼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정에서 박성일의 아버지가 충신의 손자임을 알고 재릉참봉으로 특채하였다. 그후 평시서직장을 거쳐 귀후서별제·귀후서도정·귀후서도랑을 지내고 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진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훈의 묘표. 1797년(정조 21) 박훈의 증손이 증조부의 공을 기리기 위해 상월면 학당리에 위치한 박훈과 부인 광주김씨의 묘 앞에 세웠다. 논산시에서 국도 23호선을 타고 공주 방향으로 약 14㎞ 가다 보면 상월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지방도 691호선을 타고 약 2㎞ 가다 보면 학당리가 나온다. 박훈의 묘소는...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은진(恩津). 아버지는 송치덕이다. 은진송씨는 16세에 백상준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남편의 병을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친 후 10여 일간 곡기를 끊어서 자결하였다. 묘소는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에 있다. 1812년(순조 12) 열부 정려가 내려져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 매오리마...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상준의 처 은진송씨 정려. 열부 은진송씨는 송치덕(宋致德)의 딸이고, 수원 백상준의 부인이다.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깊었는데, 16세에 출가하여 1년도 못 되어서 남편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송씨 부인은 정성을 다해 치료하고 시부모님 또한 극진히 봉양하니, 남편의 병도 좀 나아졌다. 남편의 병이 어느 정...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관 이삼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이삼(李森, 1677~1735)의 본관은 함평이며,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힘과 담력이 뛰어나 병조판서 김구의 권고로 무예를 연마,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정주목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군제 개혁에 관심을 기울였고, 경종 때 소론으로서 우포도대장, 총융사, 어영대장을 역임하였으...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李常)의 영정을 모신 사당. 백파(白波) 이상(李常)은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의 손자이다. 이상의 아들인 이현동(李賢童)은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벌곡면 조령리에 낙향한 후 정착하였고, 조선후기에 그 후손들이 백파 이상 영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벌곡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호남고속도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사원. 봉곡서원은 이계맹(李繼孟), 이순인(李純仁), 남명한(南溟瀚), 진극효(陳克孝), 남두건(南斗建)을 제향한 곳으로, 우암 송시열과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
신위를 영원히 사당에 모시는 것이 허락된 인물에게 그 후손들이 행하는 제사. 사전적으로 위패를 옮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불천위(不遷位)는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사람의 신위를 말한다.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줄임말로 부조위(不祧位)라고도 한다. 본래 제사는 고조까지 4대를 봉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윤증이 살던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윤증 고택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의 입지 형태는 노성면 교촌리 남쪽으로, 개잣들이 펼쳐지고 들 가운데로 노성천이 흘러 지나간다. 북편으로 약한 구릉이 솟아 니산(尼山)이 되고, 니산 자락이 주택의 배면을 형성하고 있다. 니산 자락이 남으로 흘러 마을의 계면부를 형성하면서 서쪽에 노성향교를, 동...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열의 묘표. 1694년(숙종 20) 당시 논산시 가야곡면의 대표적 세거성씨인 부여서씨 인물 중 판관을 지내고 통례원 벼슬을 지냈던 서열의 묘소 앞에 있던 비석이 너무 오랜 시간 비와 바람에 의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서열의 10세손 서경조가 부여서씨 후손들과 상의하여 자금을 모...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행림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서익(徐益, 1542~1587)의 묘정비. 서익의 묘정비는 서익선생의 인품과 학문적 소양을 높이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67년(고종 4)에 건립되었다. 가야곡면 육곡리 덕은골은 부여서씨의 집성촌이다. 덕은골은 백제 때 은진현 바깥을 다스리는 큰 고을이었는데, 부여서씨의 경우 이때부터 궁중을 드나드는 권위 있는 성씨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정수의 묘표. 서정수 묘표는 논산시 가야곡면의 세거성씨인 부여서씨 중 가야곡면에 처음 입향한 입향조 서정수(徐貞壽)의 묘 앞에 세운 묘표로서, 1694년(숙종 20)에 후손인 서경조(徐敬祖)가 세웠다. 비명은 서정수가 찬(撰)하고 서(書)하였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난 육곡교를 건넌 후 북쪽으로 향...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준영의 사우. 김준영(金俊榮)은 본관이 금령이고, 호는 동악(東岳)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어가를 모시고 호종하여 그 공으로 충근정희호성이등공신이 되었고, 분성군·김해군에 훈봉되었으며, 정일품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랐다. 시호는 충정이다. 선충사 뒤 야산에 김준영 묘소가 있다. 은진면소재지인 교촌리 삼거리 남...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삼문의 묘비.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은 1435년(단종 1)에 생원 급제하였고, 1438년 대과에 급제하여 세종, 문종, 단종을 내리 섬기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단종이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하였는데, 지금의 노량진역 부근에서 다리를 꿰뚫고 사지를 찢는 처형을 받았다. 이런 성삼문의...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성삼문의 유허비. 1673년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446-2에 세워졌다가 후에 충곡서원으로 옮겨졌다. 성삼문의 관작이 회복되자 1692년 성삼문 사당을 동쪽으로 옮기고, 성삼문과 절의 5신을 모셨다. 1702년 계백을 주벽으로 하여 향현 8선생을 봉안하였다. 1827년 원래 유허비가 있던 자리에는 앞면에 ‘창녕성선생유허비(昌寧成先...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탕석교에 대한 3기의 비석.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석성현조」에 “수탕포와 수탕석교가 석성현의 동쪽 7리에 있고, 수탕원이 동쪽 13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동면 지역이 포구에 원과 다리가 있는 중요한 교통 요지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수탕석교를 중수하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긴 수탕석교비군은 사적비,...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있던 조선 후기의 다리.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시진교는 시진포에 있는 다리로 은진현 북쪽 13리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같은 사료에 시진포는 은진현의 북쪽 10리 거리라 하므로 포구의 입구와 다리까지 3리, 즉 1.2㎞ 정도 떨어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시진포의 위치는 은진현의 고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는데 『동여도(東輿圖)』,...
-
충청남도 논산시 파평윤씨 충헌공파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신임사화를 기록한 윤광안의 일기. 파평윤씨 노종(魯宗)문중은 입향조인 윤돈(尹暾, 1519~1577)의 다섯 손자 대에서 설봉공파·문정공파·충헌공파·서윤공파·전부공파 등 노종 오방파로 갈리게 되는데, 『신임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파평윤씨 충헌공파는 이중 셋째 집의 윤전(尹烇)을 파조로 한다. 신임사화(辛壬士禍)는...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찰 중건비. 쌍계사 중건비는 쌍계사 입구에 부도군과 함께 서 있는데, 비문에 의하면 쌍계사는 고려 후기에 이행촌의 발원으로 세워진 사찰로, 목은 이색이 쓴 문기가 전한다. 쌍계사는 본래 고려 때에 창건된 사찰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승려 성능과 극찰이 다시 일으킨 것이다. 쌍계사 중건비는 1739년(영조 15) 쌍계사가 건립...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심, 호는 죽계(竹溪). 아버지는 안신길(安信吉)이다. 안사묵은 석당 정귀석에게 배웠고, 고매한 학행으로 돈령부봉사로 천거되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오직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효성을 다하여 섬기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1860년(철종 11) 학행과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가 내려지...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안신길(安信吉)이다. 예학(禮學)의 대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학행으로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어 왕세자를 호위하다 홍문관수찬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생 학문에만 힘을 기울여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성규, 호는 규정(規亭). 증조할아버지는 중추부사를 지낸 안여택(安汝宅)이다.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은 증조할아버지 안여택의 효행을 본받아 부모 섬기는 데 평생 변함이 없었다. 효행뿐만 아니라 성품이 온화하고 순박하여 동기 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이웃 간에도 화목하여 남의 모범이 되었다. 품행이 알려져 주민들과 유림의 추천...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남측 암벽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문. 암각 해조문은 하루 유동인구 10만을 헤아리는 거대 시장이었던 강경 지역의 풍부한 경제력과 임리정(臨履亭), 팔괘정(八卦亭),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대표되는 흥륭(興隆)했던 학문적 분위기가 어우러져 1860년(철종 11) 강경포구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글은 송심두(宋心斗)가 쓰고, 서항순(徐恒淳)·권...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8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양응춘에게 내려진 정려. 양응춘은 청주양씨로, 자는 인경(仁卿)이고,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현감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성의 탈환전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이어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왜적을 베었으나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고 17...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은진면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 폭동 사건. 조선 말기 삼정(三政)의 문란과 지배층의 과중한 착취, 세도정치의 불합리성, 문호개방 이후 급속히 증가한 국가지출 등은 농민에게 2중 3중의 부담을 지웠다. 여기에 더하여 조세의 징수관인 아전(衙前)의 행패 또한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862년(철종 13) 2월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나 삼남 전역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 관아를 출입하였던 정문.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쯤 가면 구 연산면소재지 인 연산리가 나온다. 이곳 농촌지도소 연산지소 서쪽에 연산아문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양식 2층 목조누각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직사각형의 돌기둥...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극유의 처 의령남씨의 재실. 연산 영사재 뒤쪽 50m 정도 거리의 구릉에 의령남씨의 묘소가 있으며, 묘역에는 묘비·문인석·석등·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상석은 최근의 것이다. 묘비명은 1689년(숙종 15)에 세워진 것으로 호패형이고, 앞면에 ‘유명조선정부인의령남씨지묘(有明朝鮮貞夫人宜寧南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연산 영사재의...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황리에 있는 파평윤씨 충헌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윤원거·윤유·민준의 문집 판각. 조선 중기의 유학자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 1601~1672)와 그의 아들 봉계(鳳溪) 윤유(尹揄, 1647~1721), 제자 성재(省齋) 민준(閔晙, 1642~1776)의 문집 판목 150판으로, 윤원거의 『용서집』, 윤유의 『봉계집』, 민준의 『성재집』...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3㎞를 가면 병사교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봉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에 유봉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경교의 묘비. 윤경교는 파평인으로 자는 양일, 호는 장호이다. 윤황의 증손이며, 윤변의 아들로 1632년(인조 10) 9월 18일에 태어났다. 1657년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1663년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지평에 이르렀으며, 1670년(현종 11) 문학이 되었다. 남인 허적을 탄핵하다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1681년 공...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노종 오방파 중 설봉공파로 5대조는 윤순거(尹舜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덕포 윤진(尹搢), 할아버지는 윤무교(尹懋敎)이다. 아버지는 윤동휴(尹東休), 외할아버지는 권필형(權弼衡)이다. 1783년(정조 7) 식년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이듬해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8년 홍문관교리로서 경기감사 김사목(金思穆)과 파주목...
-
조선 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 노종파의 설봉공파로 5대조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수찬공 윤절(尹晢)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고,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목사 양익주(陽翊周)의 딸이다. 이조판서 윤동규(尹東奎)에게 입후하였다.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로 한사만(韓師萬)의...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술(而述). 증조부는 윤절(尹晢), 조부는 윤인교(尹仁敎)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며, 어머니는 이익주(李翊周)의 딸이다. 부인은 이하집(李夏集)의 딸이다. 1726년(영조 2)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입학하여 서재(西齋) 장의로 활동하였다. 1733년 영조가 성균관에 거둥하여 시학례(視學禮)를 베풀었는데, 이...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중(敬仲), 호는 남애(南厓)·유당(柳塘). 증조할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윤혜교(尹惠敎)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해주판관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5년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부수찬·사간원헌납 등을 거쳐 1748년 홍문관부교리·홍문관수찬, 175...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정(士正), 호는 일암(一庵). 증조할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 할아버지는 윤증(尹拯)이다. 아버지는 대사헌를 지낸 윤행교(尹行敎)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장령 송기후(宋基厚)의 딸이다. 1722년(경종 2)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사옹원주부·사헌부지평·한산군수·홍주목사·사...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임(士任). 증조할아버지는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윤덕교(尹德敎)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으로 1713년(숙종 39) 진사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사간원사간을 역임하였다. 이어 의정부사인·사간원대사간·공조참판 등을 지냈고, 1753년(영조 29) 한성부판윤에 올...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문거의 묘비. 윤문거의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며, 본관은 파평으로 팔송 윤황의 아들이다. 김집의 문인으로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었고, 1633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과의 화의가 그릇됨을 주장하고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킬 것...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문거의 묘소. 윤문거는 본관이 파평(坡平)이고 자는 여망(汝望)이며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의 딸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교유하였으며, 조익(趙翼), 김상헌(金尙憲) 등에게도 배웠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거 처 공주이씨에게 내려진 정려. 노서 윤선거(1610~1669) 처 공주이씨는 공주의 토성이자 명문가인 생원 이장백(李長白)의 딸로 태어나 19세가 되던 1626년(인조 4)에 윤선거와 혼인하였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편 윤선거와 함께 강화도로 피난하였는데, 1637년 강화도가 함락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수의 묘표. 윤수는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장남이다. 자는 명숙, 호는 운봉으로, 아들이 없어 윤황의 아들 윤순거가 양자로 들어와 대를 이었다. 명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죽주도호부사를 지냈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윤수가 죽은 지 17년 지났을 때 묘표를 세워 자손들이 알아보도록 하게 해달라는 윤덕요의 요청에 윤순거가 명을 썼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순거의 신도비. 윤순거(1596~1668)는 자는 노직(魯直)이고, 호는 동토(童土)이다. 윤황의 아들로서 어려서는 성문준에게 수학했고, 시는 강항에게, 예는 김장생에게 배웠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아버지 윤황이 귀양가고, 숙부는 강화도 싸움에서 순절하자 집안과 나라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전의 신도비. 윤전은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아들이고 팔송 윤황의 아우이다. 성혼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하여 왕을 공주까지 호송하여 공조정랑이 되었다. 정랑을 지내다가 필선이 되었고, 병자호란을 만나 강화도에서 전사하였다. 윤전은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충헌의 시호를 받...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절과 부인 남원윤씨의 묘표.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구찬을 지낸 윤절과 그의 부인인 남원윤씨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표로서, 1716년(숙종 42)에 묘표를 세워 묘의 주인을 밝히고 그의 행적과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2.8㎞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 병사리 1구 마을...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1663년(현종 4) 35세에 공경(公卿)과 삼사(三司)가 함께 그를 천거하였다. 이듬해 내시교관에 제수되고, 이후 공조랑·사헌부지평에 제수...
-
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학자 윤증이 그려진 조선 후기 초상화 5점과 문서. 윤증 초상 일괄은 조선 중기 송시열(宋時烈)과 쌍벽을 이루었던 문신 윤증(尹拯)을 그린 초상화 5점과 『영당기적(影堂紀蹟)』 1점을 말한다. 윤증 집안에서 관리하던 윤증 초상 일괄은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49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충남역사박물관에 기증되어 그 곳에...
-
조선시대 사대부의 꾸밈새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한 윤증의 고택(古宅)에서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였던 그의 유품이 다량 발견되면서 개략적으로나마 조선 후기 사대부의 복식(服飾)과 이를 통한 생활 및 풍속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윤증의 유품들은 윤증의 생전 고고한 모습과 숨결을 느끼게 함은 물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노종파 윤증가의 책판. 윤증가 책판은 윤선거의 『노서유고』를 비롯하여 『명재연보』, 『가례원류』 등을 널리 보급하고 길이 보존하고자 만든 것이다. 198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책판은 『노서유고』 573판, 『명재연보』 119판, 『명재언행록』 45판, 『일암유고』 111판, 『의례문답』 1...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노종파 윤증가에서 사용했던 물건들과 문중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 성리학과 예학에 밝고 학업과 행실이 뛰어났다.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마다하고 논산군 이산에 머물며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1970년 12월 29일 중요민속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진의 신도비. 윤진은 1631년(인조 9)에 태어나 1698년(숙종 24)에 사망하였다. 윤진의 자는 자경이고 호는 덕포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윤순거의 아들로 1652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빙고별검으로 있다가 1666년(현종 7)에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 이조좌랑, 수찬, 병조정랑 등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다. 왕에게 붕당을...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문(長文). 증조할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윤선거(尹宣擧)이다. 아버지는 소론의 영수인 우의정 윤증(尹拯)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한성부우윤 권시(權諰)의 딸이다. 부인은 병조좌랑 박태소(朴泰素)의 딸이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선발되었다. 1696...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행교의 묘표. 윤행교의 묘는 원래 공주 작곡에 있던 것을 전주 팔봉산 아래로 이장하였다가 후에 다시 지금의 노성면 하도리로 이장하였다. 윤행교 묘표는 묘를 이장한 후 1697년(숙종 23)에 윤행교의 가계, 성품,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하였다. 공주-논산 간 구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노성면 하도리 노성비행장이...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있던 조선 후기 은진 미내에 석교를 세운 것을 기념한 비. 조선 전기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옛길이 있었고, 큰 냇물이 흘러 작은 돌다리를 놓아 통행하였다. 어느 해 큰 홍수가 나고 다리가 유실된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의 통행에 많은 불편을 주었다. 관청에서도 손을 대지 않자 이 고을 석설산과 송만운을 중심으로 황산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겸 부부의 정려. 이공겸은 왕실의 종친으로 옥계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의 증손이다. 이공겸과 그의 아내 민씨는 양촌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공겸 내외는 부친을 등에 업고 공주를 향하여 피난하기 시작했다. 연산 백석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왜병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광좌의 불망비. 이광좌는 경주 사람으로 호는 운곡(雲谷)이다. 이항복의 고손으로 1697년에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신임사화 후에 노론을 제거하고 소론 정권이 수립되자 예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1755년 나주의 벽서사건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 이광좌가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노성 지역을 지나면서 군민을 구...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부사 이두현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고내리가 나온다. 이두현 불망비는 고내리 효죽골에 자리 잡고 있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황화정비, 김상식 불망비 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으로, 비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민진의 묘비.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 당시 외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민진의 증직과 행적을 새겨놓은 묘비이다.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200여 년이 지난 1838년(헌종 4)에 세워졌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200여 년이 지난 후인 1838년(헌종 4)에 이민진의 충절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정려를 하사받게 되었다. 이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민진의 정려. 이민진의 본관은 가평, 자는 자선, 호는 백봉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의병 3천 명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다. 당시 29세의 이민진은 출전할 때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 그러나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
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함평(咸平). 아버지는 부사 이양, 어머니는 진주강씨이다. 세 번 혼인했는데, 양씨와 민씨와 전씨이다. 슬하에는 두 딸과 외아들 이삼, 서자 이송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학업을 잇지 못하였다. 장성하여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가 되어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가 살게 되었...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사길의 묘비. 이사길(李師吉)은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나 사산감역관을 지내고 임기를 마칠 즈음에 병을 얻어 사망하자 노성 술골(주곡리)에 장사하고 후에 묘비를 풍비로 세워놓았다. 이사길은 1703년(숙종 29)에 사망하였는데, 1711년(숙종 37)에 아들이 출세를 하여 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에 증직되었다. 이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숫골에 있는 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이사길의 묘소. 이사길(李師吉, 1639~?)은 부사 이양과 진주강씨 사이에서 1639년(인조 17)에 태어났다. 훗날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와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가 되었다. 윤선거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노강서원 건립에 협력하였고, 사산감역을 제수받았다. 아들 이삼이 과거...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영조의 아낌을 받아 백일헌(白日軒)이라는 호를 받았다. 함평군 이사길(李師吉)과 남양전씨 사이에서 1677년(숙종 30)에 태어났다. 이삼의 가계는 상계로 올라가면 무반 가문의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고조 이후는 문반으로서의 성향이 더해져, 이삼이 ‘문무겸전’의 인물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삼은 윤증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삼의 묘표. 이삼(李森)은 1677년(숙종 3) 상월면 주곡리에서 감역을 지낸 이사길(李師吉)의 아들로 태어났다.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705년(숙종 31) 무과에 급제하여 정주목사·수원부사·한성부우윤을 거쳐 벼슬이 훈련대장에 이르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올라 함은군(咸恩君)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묘소. 이삼은 감역을 지낸 이사길의 아들로 자는 위백이다. 1677년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1735년 59세로 사망하였다.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대장을 거쳐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함은군에 봉해졌다. 논산시에서 공주 계룡산 서쪽에 있는 신원사 앞으로 나 있는 지방도 691호...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의 이삼 장군 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유물. 이삼(李森, 1677~1735)은 조선 영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다. 상월면 주곡리에서 출생하여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숙종 31) 무과에 올랐다. 힘이 세고 지략이 많으며 기계 제조법과 도창(刀槍) 기예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와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승기의 영세불망비 두 기. 이승기는 한산 사람으로 자는 기경(紀卿)이다. 은진현감과 연산현감, 노성현감 등을 지냈다. 이승기 불망비는 두 기로, 한 기는 연산면 연산리에 있고 또 한 기는 노성면 읍내리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다.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이승기 불망비는 1882년(고종 19) 9월 23일에 연산현감으로 부...
-
조선 후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의령(宜寧). 남편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인덕(李仁德)이며, 아들은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조순(李曺純)이다. 이인덕 처 의령남씨는 남편 이인덕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아들에게 남편의 유언을 전하고 자결하였다. 의령남씨의 아들 이조순이 사헌부감찰에 있을 때인 1863년 명정이 내려져 논산시 두마면 엄사리...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이정보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병세를 짐작하기 위해 어머니의 변을 맛보았다. 의식 없는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수혈하는 등 지극 정성으로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친이 주무시고 있는 집에 불이 났는데, 이정보는 누워 있는 모친이 놀랄까 봐...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등리 대실뜸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정보의 정려. 이정보(李廷輔)는 본관이 합천(陜川)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나 있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변을 맛보았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한테 수혈을 하는 등의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난 일이 있었다. 이정보는 병석에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있는 익안대군 이방의의 초상화. 「익안대군 영정」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를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316번지에 있는 익안대군 영당인 원훈각(元勳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방의는 고려 공양왕 때 판밀직사사가 되었고,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대군에 봉...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현(金尙鉉, 1811~1890)의 「임리정기」를 새긴 비석. 임리정(臨履亭)은 1606년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최명룡·송흥주·윤운구와 집을 지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강경의 황산(黃山) 산기슭에 있다. 이로 인하여 네 사람은 이이(李珥)의 묘당을 세우고자 약속하였으나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626년(인조...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익성군파의 재실. 전주이씨 익성군파 재실 내부에는 선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지 않으며, ‘익성군파보시사실기(益城君派譜時事實記)’라는 현판과 ‘세모재(世慕齋)’라는 현판만 걸려 있다. 은진면 용산리 전주이씨 익성군파 묘역이 있는 구릉 하단부 남동향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이씨 익성군파 재실은 문간채와 재실, 뒷문, 서문으로 구성...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한 수리 시설. 『고려사(高麗史)』의 명종 18년(1182) 3월조에 기록된, “때에 맞추어 농사를 권장하고 힘써 제언(堤堰)을 수축하여 저수(貯水)하고 물을 대게 하여 황모지(荒耗地)가 없도록 하여 백성들의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하라.”는 내용을 보면 제언 축조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6세기 이후 수리...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구하(趙龜夏, 1815~1877)의 불망비. 조구하가 연산 지역을 암행하면서 여러 사안에 선처를 베풀어 그가 떠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1842년 세운 불망비이다. 양촌면에서 운주로 가는 도로변인 인천리 은정자마을 느티나무 아래에 원래 세워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원두갈의 형태로, 비신의 석질은 화강암이다. 비의 크기는 높...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규년의 선정비. 조규년이 은진현감으로 부임하여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 주고 구휼 활동을 하였으며, 민원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준 치적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힘을 모아 1842년(헌종 8) 조규년 선정비를 건립하였다. 1975년 은진면 교촌리 석림사 승강장 근처에 조규년 선정비를 포함하여 은진면 일대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비...
-
충청남도 논산은 17세기 조선 선비 문화의 중심지이다. 기호학파의 중심지이며, 선비 문화를 집약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교 문화 자원이 많은 곳이다. 특히 논산은 한국 예학의 중심지로서, 조선조 예학과 산림 인사들의 거점이며 조선의 예학을 주도했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유서와 전통이 깃든 곳이다. 특...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수의의 선정비. 조수의(趙守誼, 1699~?)는 본관이 한양으로, 자는 정숙(正叔)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58년 5월 연산현감으로 부임하여 1762년 정월에 이임할 때까지 무려 5년 동안 연산현감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조수의가 천안군수로 떠날 때 주민들이 그의 이임을 말리며 아쉬워했으나 어쩔 수 없...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진익의 불망비. 조진익(趙鎭翼, 1762~?)은 본관이 양주로, 자는 사현(士顯)이다. 1789년(정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1822년 9월 연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다가 1825년 4월 24일 평양서윤으로 승진되어 이임하였다. 조진익이 연산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베푼 선정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후기 영상과 귀상의 충노비. 연산현 사람 이민진(李敏進)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죽기를 각오하고 검은색 버선과 행전을 차고 남한산성으로 의병을 이끌고 갔다. 남한산성 근처 광주 험천에 이르러 왜적의 저지를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이민진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동행했던 노비 영상(永上)과 귀상(貴上)은 많은 전사자들 중에...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충곡서원은 원래 백제 장군인 계백과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하위지(河緯地), 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었으나 점차 그 수가 늘어 18위가 배향되어 있다. 8명의 선현을 제향한다 하여 팔현 서원(八賢書院), 육신 서원(六臣書院)이라 불렸던 기록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50m 정도 들어가 오른쪽 길로 200m 가면 덕포선생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재실,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 파평윤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파평윤씨 재실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건물로, 1988년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299호로 지정하였으나 덕포공...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행림서원은 1867년(고종 4)에 세워진 부여 서씨의 문중 서원으로, 육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부여 서씨들의 상징적 유물이기도 하다. 논산시내에서 은진 사거리 쪽으로 가다가 왼쪽 가야곡면 방향으로 약 5㎞ 직진하면 노래골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야촌리 사거리 방면으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2㎞ 직진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명후의 선정비. 홍명후(洪明厚, 1787~?)는 본관이 남양으로, 자는 일성(一誠)이다. 1805년(순조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829년 7월 17일부터 1833년 9월 이임하기까지 5년간 연산현감을 역임하였다. 홍명후가 연산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주민들의 고충을 덜어 주고 어려운 일을 신원시켜 주어 선정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에서 노론과 소론의 선봉에 섰던 송시열과 윤증의 사상 대립. 남인이었던 백호 윤휴(尹鑴)는 새로운 이념설을 주장하면서 모든 경서의 집주(集註)를 상대적 성리학적 견해로 고치고자 하였다. 윤휴의 주자학에 대한 비판론은 당시 주자학의 적통을 이은 송시열(宋時烈)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에 따라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배척하였다. 서인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 가면 산노리 효암서원 앞에 이른다. 서원 입구 오른쪽에 강응정 정려가 있다 효암서원의 전신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가야곡면 두월리의 갈산사로서, 1713년(숙종 39) 현재의 자리인 산노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갈산사는 중화재 강응정을 모신...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휴정서원은 기호 사림의 종장인 김장생의 친족과 그의 학통을 받은 문인들만을 제향한 점에서 여타 기호계 서원과는 의미가 다르다. 연산 지역은 호서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인 논산 돈암 서원이 있는 곳이다. 기호학파의 거두 김장생을 제향한 논산 돈암 서원이 존재하고 있는데 다시 그의 친족 문인들로 구성된 휴정서원이 세워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