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효자 강응정이 살았다. 강응정은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지성으로 모셨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부모는 늙어 노환으로 죽게 되었다. 강응정은 부모상을 당하여 무덤 한 옆에 묘막을 짓고 시묘를 하였다....
-
조선 전기 성현이 논산의 관촉사를 방문하고 감회를 읊은 한시. 성현(成俔, 1439~1504)의 문집인 『허백당시집(虛白堂詩集)』2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유명한 시인인 성현이 관촉동에 있는 관촉사 미륵불에 대한 세상 속설의 허구성과 옛 영화의 실상을 읊은 시이다. 길가에 오래 된 절이 있어(路傍有古刹) 웅장한 언덕을 넘어가니(超超跨雄岡) 뜰 가운데 여섯 길이나 되는 몸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서 하마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성삼문(1418~1456)은 조선 세종 때의 문신으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세조 원년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사송치(思松峙) 인근에 성삼문의 묘소가 있다. 199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서 상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 논산군이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 때의 일이다. 일본에 상리라는 기와 공인이 살고 있었다. 상리의 기와 굽는 기술은 일본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조선에서 만든 기와를 본 상리는 깜짝 놀랐다. 조선의 기와 굽는 기술이 자신보다...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서 성삼문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성삼문은 10여 세에 이미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다. 1453년(세종 17)에 생원 시험에 합격하고부터 벼슬을 하기 시작하였다. 1453년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의 야욕을 품고 거사할 때 성삼문은 우사간으로 있었다. 1455년 수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신개다리와 허씨부인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송도 땅에 대사헌 허응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허응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예의범절이 분명하고 인물이 뛰어났다. 그녀는 17세가 되던 해에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사는 충청도관찰사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서 오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원오산」은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원오산이란 산이 있다. 조선 전기에 시조를 읊으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왕족(王族)이 있었다. 왕족은 풍류를 즐기며 시조를 읊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저기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시조를 읊곤...
-
조선 전기 서거정이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은진동헌을 소재로 지은 한시.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로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 등에 정통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저서에 『동인시화(東人詩話)』, 『동문선(東文...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채운과 채운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 때의 일이다. 청양의 정산 고을에 황진사가 아내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부부는 자녀가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영험한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황진사가 아내에게 “채운산의 용왕사가 영험하여 그곳에 빌어 자식...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은진 고을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불효하였다. 불효가 지속되자 농부는 아들을 고을 원님에게 맡겼다. 그러자 고을 원님은 농부의 아들을 강응정의 집에 머물게 하였다. 어느 날 강응정의 부인이 기름을 짜고 있었다. 부인은...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유생이자 효자. 자는 공직(公直), 호는 중화재(中和齋).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의(姜毅)이다. 강응정은 부모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1470년(성종 1) 효행으로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1483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 유생으로 김용석(金用石), 신종호(申從濩), 박연(朴演), 손효조(孫孝祖), 정경조(鄭敬祖), 권주(權柱) 등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강응정의 정려. 강응정(姜應貞)은 모친이 병들자 3년여 동안 정성껏 봉양하여 천수를 누리게 하였고, 사망한 후에는 5년 동안 정성껏 시묘를 하였다. 강응정의 이런 효심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성종이 친필로 쓴 현판을 내리고 정려를 건립토록 하였다.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를 가면 산노...
-
이알평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시조는 이알평(李謁平)이다. 이알평은 박혁거세가 왕이 된 뒤 아찬에 올라 군무를 장악했으며, 32년에 양산촌(陽山村) 이씨를 하사받았다. 경주이씨는 고려 후기 문인 이제현을 배출하면서 명문으로 성장하였다. 경주이씨가 논산 지역에서 언제부터 어떠한 경위로 세거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논산시 연산 지...
-
김남득을 시조로 하고 김사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김남득(金南得)은 경순왕의 11세손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장손으로 고려 때 전리좌랑(典理佐郞)을 역임한 김의(金宜)의 첫째 아들이다. 김남득의 본명은 김기지(金麒芝)였다. 1340년(충혜왕 1) 진사시에 합격하여 감찰집의를 지내고, 공민왕 때 양광도안렴사를 역임하였으며, 판개성부사문하평리(判開城府事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서 광산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고정리는 1400년대 초반 광산김씨 동족촌락으로 형성된 이래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산김씨 문중에서 배타적 공간으로 지켜 온 곳이다. 연산에 거주한 광산김씨의 연원(淵源)은 고려시기 본관지 광산을 이탈하여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재경(在京) 광산김씨의 일파였다. 김약채(金若采)가 광산김씨로서는 최초로 연산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양천허씨 정려. 양천허씨는 조선 전기 태조 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許應)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과 결혼하였다. 17세에 남편이 죽자 부모가 다시 출가시키려고 하므로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 집으로 가서 평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보인다. 양천허씨는 유복자인 김철산을 정성을 다해 키워 좌의정을 지낸 김...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약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말기 신무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자 신라의 비운을 예견한 김흥광은 무주(武州, 현 광주광역시 평장동)의 서일동에 피신 은거함으로써 시조가 되었다. 광산김씨 가문은 조선시대에 총 260여 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여기에서 정승·대제학·청백리·...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효통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기계(杞溪)는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신라 때 아찬(阿湌)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신라 멸망 후 고려왕조에 불복하자 태조(太祖)가 기계호장(杞溪戶長)을 삼았다. 그 후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하였다. 기계유씨는 조선 초기부터...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를 지낸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형은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후 감찰, 정언, 병조좌랑, 병조정랑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에 승진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광산김씨 공안공파 종중에서 행하는 김겸광의 불천위제사. 김겸광(金謙光, 1419~1490)은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시호는 공안이다. 건주위 여진족 토벌을 비롯하여 평안도 관찰사와 절도사를 지내면서 국방 정책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세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성종 때 순성명량좌리공신에 책봉되고 광성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제삿날은 음력을 준수하고 있다. 제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공신 김겸광의 신도비. 김겸광 신도비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좌리공신 3등으로 광성군에 봉해진 김겸광의 공을 추대하여 1492년(성종 23)에 세웠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백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직진하면 고정리가 나온다. 신도비는 쇠머리에 위치해 있다. 1507년(...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관경(觀卿), 호는 서석(瑞石).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우는 김겸광(金謙光)이다. 김국광은 1441년(세종 24) 문과에 병과 7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445년(세종 28) 황해도도사로 승진하고 144...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의정공파 종중에서 행하는 김국광의 불천위제사.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은 조선 세조 때의 명신으로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워 정충출기적개공신의 호를 받고 숭록대부좌찬성에 봉해졌다. 1469년(예종 1)에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영경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좌의정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왔다. 1471년(성종 2)에는 순성명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국광의 사당.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의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석(瑞石)이다. 세종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등을 역임하였고, 세조 때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맞아 함경도 경차관으로 공을 세워 병조 참판, 병조 판서에 이르렀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남이 장군과 함께 평정하였...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국광의 신도비. 김국광 신도비는 구 신도비와 신 신도비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구비는 1489년(성종 20)에 세워졌고, 신비는 1726년(영조 2)에 세워졌다. 왕의 총애를 받았던 김국광은 병이 들어 사직한 뒤 병치레를 하였다. 왕이 이를 슬퍼하며 부의를 내리고 사후에 쓸 장사 지낼 기구를 보내주었는데, 김국광의 아들 김극...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김극괴는 1483년(성종 15) 영남좌도에 변이 일어났을 때 성종의 자문에 응한 숙부 김겸광(金謙光)에 의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천거되어 적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묘소는 논산시...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의백(義伯).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며,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며, 처는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김극뉴는 처음 음사로 청진전직이 되었다가 찰방이 되었고 1468년(세조 14) 춘장방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종부시...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고,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김극수는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라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에 제수되었고 원종공신(原從功臣) 회맹제에 참여하였다. 군자감판관을 거쳐 충훈부경력으로 재직 중 아버지의...
-
조선 전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양천(陽川).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현손녀이다. 아버지는 허웅이고, 남편은 김문(金問)으로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김문 처 양천허씨는 17세에 남편 김문과 사별한 후 개가하지 않고 당시 연산 지역에 있던 시집으로 들어와 유복자 김철산(金鐵山)을 낳고 장성시켜 현달하게 하였다. 그의 손자 김국광(金國光), 김겸광(金謙光), 후손 김계휘...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충청도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김약채(金若采)이며, 어머니는 문정공(文正公) 원송수(元松壽)의 딸로서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형은 김장생(金長生)의 7대조인 김문(金問)이다. 김열은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총명하여 일찍이 배움을 성취하였다. 태종 때에 음직(蔭職)으로 벼슬길에 올라 형조도관 좌랑으로 재직하였다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고령.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이고, 어머니는 훈련원 참군 노승주의 딸이다. 김임은 논산시 노성면 일대의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만석의 거부로서 사람들이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선비로서 풍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에 있다. 1513년(중종 8)에 호조판서를...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광산김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어머니는 대사헌을 지낸 허응(許應)의 딸로 정경부인(貞敬夫人) 허씨(許氏)이다. 아들 넷을 두었는데 장남은 좌의정을 지낸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이며, 나머지 아들들은 김겸광, 김정광, 김경광이다. 김철산은 김문(金問)의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였던 정경부인(貞敬夫人) 허씨(許氏)를 따...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매계(梅溪). 남준은 호서 출신 거유 조헌(趙憲)과 막역한 사이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을 도와 전투에 참여하여 선전관으로 의병을 모집하였고, 군량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가장 치열하였다고 회자되는 금산 전투에 참여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1858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던 조선 전기 유학자 박증의 후손들이 남긴 유물. 박증(朴增, 1461~1517)은 외조부 성삼문의 충절을 추모하여 벼슬의 뜻을 버리고 32세 되던 1492년(성종 23) 노성현 암천(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로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이로써 무안박씨 노성파가 형성되었다. 박증이 노성 지역으로 입향한 이후 후손들이 지금까지 노성 지역에 세거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노성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위(四聖位)를 모셨으며,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동국 9현을 모셔 모두 5성 20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춘추의 제향시에는 주로 성동면,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지역 유림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노성향교의 대성전. 노성향교는 노성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고 유도를 연찬(硏鑽), 강론할 목적으로 노성산 아래향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이다. 노성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5성위를 모시고 있다.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터. 영조 연간에 편찬된 『노성군읍지(魯城郡邑誌)』와 1759~1765년 사이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아사(衙舍) 38칸, 객사(客舍) 31칸, 현사(縣舍) 3칸, 작청(作廳) 6칸, 군기(軍器) 6칸, 관청(官廳) 13칸이 있었다. 그러나 1895년에 발간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아사 15칸, 책실(冊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주. 자는 여호(汝豪). 청송당(靑松堂) 도응(都膺)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참의 도수례(都守禮)이다. 도진민은 종형과 함께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1년(선조 24)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청북도 옥천에서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고 도군민·도호민·도우민 등 형제와 다른 종형제...
-
박진승을 시조로 하고 박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무안박씨 시조는 박진승(朴進昇)으로,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여섯 째 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후예이다. 박진승은 고려 전기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안이라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시대의 박승중(朴昇中), 조선시대의 박의장(朴毅長)·박홍장(朴弘長)·박창하(朴昌夏),...
-
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여흥. 자는 분충(奮忠). 할아버지는 여원군 민백훤(閔伯萱)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여강군 민수산(閔壽山)이다. 여흥민씨 위양공파의 파조이다. 민발은 1437년(세종 19)에 음보로 내금위에 속하였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부사직에 이르렀다. 1450년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3년(단종 1)에는 사복시대호군으로 있다가 무과에 합격하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조선 전기의 무신 여산군(驪山君) 민발(閔發)의 후손이다. 민흥기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던 중에 정유왜란이 일어났다. 그는 신주(神主)와 노모를 업고 피난하였는데, 피난 중에 아무리 창졸간이라도 상복을 벗는 일이 없었고 조석으로 곡(哭)을 빠뜨리지 않았다. 여가에는 맛있는 음식을 구하여 노모를 봉양하니 조익(趙翼)...
-
조선 중기 반남박씨 논산 입향조.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는 박동민(朴東民)과 아들은 사헌부집의를 지낸 박휘이고, 손자 박세기 3대를 제향하는 문중재실인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또한 박동민의 아내인 전주이씨에게 내려진 정려가 있다. 본관은 반남(潘南).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이며, 아버지는 박응천이다. 형제로 박동현과 좌참찬을 지낸 박동선이 있으며, 아들은 사헌부집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천. 자는 여수(汝粹). 아들은 박영서이다. 박이현은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 경학을 배웠으며, 창애서실을 지어 경전을 연구하고 성정을 도야하였다. 평소 충절의 의기가 높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와 전라북도 무주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적을 쫓아 대교평에 이르렀다가 치열한 전투 끝에 적에게...
-
조선 전기 1492년(성종 23) 이산(尼山) 암천(巖川)에 은거한 무안박씨논산 입향조. 본관은 무안(務安).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 어머니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어머니 창녕성씨는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成三問)의 딸이다. 박증의 아버지 박임경은 1456년 병자사화(丙子士禍)로 장인이 참화를 당하자 그 시신을 김시습(金時習) 등과 수습하여 노량(露梁)에 매장하고 두문불...
-
조선 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 개성유후(開城留侯)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성달생(成達生)이고, 아버지는 도총관(都摠管)을 지낸 성승(成勝)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첨(朴襜)의 딸이다. 병자사화(丙子士禍) 때 성삼문의 동생 성삼빙(成三聘), 성삼고(成三顧), 성삼성(成三省)과 아들 성맹...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조성된 조선 전기 문신 성삼문의 묘소.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은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47년(세종 29)에는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한글 창제에도 공로가 크다. 그러나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자...
-
충청남도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성주도씨의 사당. 성주도씨 사우는 노은(魯隱) 도응(都膺)을 제향하고 있는 곳으로, 사우 안의 어필각에는 조선 태조가 도응에게 내린 왕지(王旨) 4매(枚)와 녹패(祿牌) 1매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보관된 성주도씨 종중문서는 1981년 7월 15일 보물 제724호로 지정되었다. 왕지는 조선 초기 교지 형식, 교지 서체의 변화, 왕지와 교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성주도씨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관작·자격·시호·토지·노비 등의 특전을 내릴 때 쓰는 문서 양식으로 관리에게 관작을 내리는 교지는 고신(告身)이라 한다. 특히 조선 전기 태조·정종 대에는 교지라는 용어 대신에 왕지(王旨)라 하였고, 보인도 ‘조선왕보(朝鮮王寶)’가 사용되었다. 녹패(祿牌)는 이조·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종...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여 논산에 정려가 세워진 문신,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경(仁卿), 호는 도곡(道谷). 양응춘은 회덕현감을 지내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을 따라 청주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이어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이조참의로 증직되었고, 1720년 충신으로...
-
조선 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로에 세워져 국가가 경영한 여관. 역원에서의 '역'은 전근대시대에 중앙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며, 원은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의 일종이다. 역과 관련되어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논산 지역에서는 남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 처음 설립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강당.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
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각 지리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를 보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 터.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로 읍치의 중심인 객사에서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따라서 객사는 수령의 집무청인 동헌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관아 시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전망 또한 좋은 곳에 자리하였는데, 이 때문에도 관아 안에서는 가장 위압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관아 터. 관아(官衙)란 조선시대 읍치에 있던 관청건물을 통칭하며 연산현 관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헌, 국왕의 위패를 모셔 둔 객사, 고을 양반들의 대표자 격인 좌수와 별감이 있는 향청, 아전들이 근무하던 질청, 기생과 노비들이 있는 관노청 등이 있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연산현지』에 따르면, 연산현 관아에는 동헌...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 전기 기와 가마터. 원북리 와요지는 논산시의 북서쪽으로 광석면 득윤리와 성동면 원북리 사이 약 4.5㎞ 내외의 범위에 위치하고 있다. 장축 방향은 나지막한 구릉의 남사면에 북을 기준으로 24° 편동하여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는 남북 방향으로 두고 있다. 원북리 와요지는 국도 4호선 부여~논산 간 도로를 확·포장 공사하는 구간 내에서 확인되었...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논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2.36㎞ 가다 보면 은진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은진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0.75㎞ 가면 향교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면 은진향교가 나온다. 은진향교는 15세기 익성군의 묘소가 있는 은진면 용산리에 세워졌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 전기와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 설치된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기술한 형식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나 연혁, 호구,...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던 조선 전기 은진현 관아 터. 일제강점기 관아에 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관아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작성된 『은진지도』에 의하면, 외삼문·내삼문·아사·외노방·군고·형청·누상고·사령방·책실·내아문·내아·읍창·창고·향청·관청·장청병현사·작청·삼문·객사·옥 등의 관아 관련 시설물이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를 통하여 관아시설의 구조...
-
남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의령남씨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원래 당나라 봉양부 여남(汝南) 사람이었다. 신라에 귀화하였는데, 신라 왕이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이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는 등 가문의 격을 올렸다. 의령남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의 개국공신 남재(南在)·...
-
조선 전기의 무신이자 가평이씨 논산 중시조. 가평이씨는 신라 말엽에 8세 이기문(李起文) 선대에 의거 조종(朝宗)으로 본관이 바뀌었고, 다시 조선 전기에 31세 이다림(李多林) 중시조(中始祖)에 의거 가평(加平)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관은 가평(加平). 할아버지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이며, 아버지는 도평의사사를 지낸 이침이다. 이다림은 여...
-
조선 전기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제향된 종친. 이방의는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다. 형은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아우는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를 말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이방의는 익안대군(益安大君)에 봉해졌...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백파 이상 영당에서 매년 이상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지내는 제사. 백파(白波) 이상(李常)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3남인 익안대군의 손자이다. 단종을 옹호하던 이상은 세조가 등극하자 초야로 피신을 하여 은둔생활을 하다가 사망했다. 백파도정(白坡都正) 영당은 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당이다. 현재 영당에 걸린 영정은 이상의 아들인 옥계 이현동(李賢童)이...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가평(加平). 어버지는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이다. 할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이다. 이장생은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활쏘기를 좋아해 가평군이 그의 장점을 취하여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1490년에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을 제수하였다가, 선전관...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불부. 할아버지는 병조판서인 이다림이며, 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 어머니는 순안현령 우원구의 딸이다. 전주최씨 충의위 최희보의 딸과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함경도절도사를 지낸 이장생이다. 1449년에 태어나 1503년에 세상을 떠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30세에 통훈대부에...
-
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
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농맹아(聾盲啞). 증조부는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이며, 아버지는 백파도정(白波都正) 이상(李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이현동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왕손의 몸일지라도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의 문인으로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과 도의(道義)...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이현동의 묘소. 이현동의 본관은 전주, 호는 농맹아(聾盲啞)이다. 태조의 3남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의 증손이며, 백파(白波) 이상(李常)의 아들이다.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를 한탄하며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평생을 조령리에 살며 북...
-
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가평. 자는 창백(昌伯). 아버지는 가평이씨의 중시조인 첨지중추원사 이다림(李多林)이며, 어머니는 지금주사 송리(宋理)의 딸이다. 1436년(세종 18) 무과갑과에 급제하고 1447년에 중시장원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455년(세조 1) 12월 판관으로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현동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족보 『선원선계(璿源先系)』에 의하면 이한은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린(李隣)과 그의 형 이의방(李義方)은 고려시대 중앙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당시 여진족(女眞族)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살기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0m 정도 들어가 다시 오른쪽(동쪽) 길로 200m 가면 덕포공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묘역이 나온다. 파평윤씨 재실인 병사는 1574년(선조 7)에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 묘소 수호사로 지었던 건물과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을 포함하여...
-
조선 전기 남양홍씨 논산 입향조. 남양홍씨는 홍세구(洪世耇)의 논산 입향 이후 논산 지역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성장했으며, 노당사·초포사 등의 문중사우를 건립하여 매년 제향을 드리는 등 사족으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세구(洪世耇)는 윤증과 함께 어려서는 보인당(輔仁堂)에서, 자라서는 양정재(養正齋)에서 동문수학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선경(善慶), 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