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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686
한자 黃耆淵
영어음역 Hwang Giyeon
이칭/별칭 영숙(英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찰리사
출신지 경기도 과천
성별
생년 1835년(헌종 1)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창원(昌原)
대표관직 제주찰리사|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함경남도관찰사|평안남도관찰사|궁내부특진관

[정의]

조선 말기 제주찰리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숙(英叔). 아버지는 황종창(黃鍾昌)이며, 황종림(黃鍾林)에게 입양되었다. 경기도 과천(果川)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873년(고종 10)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찬에 임명되었다. 그 뒤 부교리·부수찬을 거쳐 1888년(고종 25) 대사성이 되었다. 1888년 함경도 영흥부민들이 환전(還錢)의 고통을 견디다 못하여 난을 일으키자, 안핵사로 파견되어 난의 책임을 물어 함경감사·함경도병마절도사·영흥부사 등을 모두 유배가게 하였다.

1873년 대사간을 거쳐, 1891년(고종 28) 이조참의·천진주재독리를 지냈으며, 1898년(고종 35) 함경남도관찰사와 평안남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901년(고종 38) 3월 제주도민들과 천주교도들 사이에 일어난 충돌 사건인 1901년 제주민란(일명 이재수의 난, 신축교난, 제주교난)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1901년 6월 5일 제주찰리사에 임명되어 참령 윤철규(尹喆圭) 등과 함께 강화도 군인 3백 명을 인솔하고 제주 정기 왕복선 현익호(顯益號)편으로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도에 부임하였다.

이때 프랑스 함대의 함정 1척이 산지포(山地浦)[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항]에 상륙하려 하자 윤철규 등이 병력을 과시하니 프랑스군이 퇴각하였다. 이재수(李在秀)[1877~1901]·오대현(吳大鉉)·강우백(姜遇伯) 등 3명을 체포하고 상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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