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리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0년 협성청년회가 운영하던 노동 야학에서 제주청년동맹 회원 김두성(金斗性)·김일준(金日準) 등과 함께 마을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31년 1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사망한 동향 출신의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의 시신이 1월 19일에 도착하자, 제주청년동맹은 동지장(同志葬)으로 치루기로 하였다. 상가(喪家)...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세워진 김기량의 순교를 기념하는 비. 김기량은 1855년 폭풍으로 표류하다 중국 광동 해역에서 구조되었다. 1857년 홍콩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조선 신학생에게 교리를 배워 영세 입교하게 되었다. 1858년 제주도에 돌아온 김기량은 전교 활동을 하였고 가족, 친척, 친구 등 20여 명을 입교시켰다. 그는 신앙생활 집단을 이끌었고, 1...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주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김장환(金章煥)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제주에 도착하여 김시범(金時範)과 협의하여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3월 17일부터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때 동지로 참여한 사람은 김년배를 비롯하여 김시은(金時殷)·고재륜(高載崙)·김형배(金瀅培)·황진식(黃鎭式)·김...
-
10여 년 전에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집에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물건들(해녀 잠수옷, 해녀 물질할 때 필요한 도구 등의 자료)이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역사관이 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이러한 물건을 학교 측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역사관이 만들어지고 나서 제대로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현 교장 선생님이신 김경식 선생님의 노력으로 이 역사관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역사관을 방문한 동문...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농산(聾山). 아버지는 김봉호(金奉鎬)이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주에도 그 영향이 미쳐왔다. 제주 출신 김장환(金章煥)은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여 쫓기게 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조천으로 왔다. 조천 지역 유지 숙부 김시범(金時範)에게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시범은 거사를 결심하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1월 15일 도쿄에서 함덕리 출신의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1월 19일에 시신이 고향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할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2일 한영섭의 할아버지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대흘리 장지까지 운구하면서 동지들과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고 ‘한영섭 만세’를 삼창하였다. 1931년 5월 6일 조천읍 경찰관...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1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함덕리 출신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1월 19일 시신이 고향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치룰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2일 한영섭의 할아버지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대흘리 장지까지 상여를 운구하면서 동지들과 함께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고 ‘한영섭 만세’를 삼창하였다. 또한 한영섭 추모비를...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전해오는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의식요. 「꽃염불 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북부 일부 지역에서만 조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도 민요인 「염불 소리」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서도 민요의 「염불 소리」가 제주도에 전해져 음계·창법·가사가 서도 민요와는 다르게 변하여 현재 제주도의 「꽃염불 소리」로 정착되었으리라 본다. 대표적인 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에 있는 봉우리. 당오름이라는 곳이 제주도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당’이 들어선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당오름 북쪽에 눈미 불돗당이 들어섰기 때문에 당오름이라 한 것이다. 당이 들어서기 전에는 누워 있는 산이라는 데서 누온미, 눈미라고 하였으며, 한자 차용 표기로 와호산(臥乎山) 또는 와산(臥山)으로 표기...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주민들은 한을 혹은 한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은 크다(大)는 의미이며, ‘흘’은 숲 또는 바위와 잡풀로 뒤덮인 넓은 땅을 의미한다. 또는 큰 습지였으므로 한흘이 되었다고 한다. 1730년경 유제륭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왔고, 그 뒤 백씨·차씨·송씨 등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이른 시기...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주민들은 한을 혹은 한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은 크다(大)는 의미이며, ‘흘’은 숲 또는 바위와 잡풀로 뒤덮인 넓은 땅을 의미한다. 마을의 옛 이름은 ‘곱은달이’(古分洞)인데, 이는 구부러진 언덕이라는 뜻이다. 1855년경 제주한씨가 처음으로 용동(龍洞)에 들어왔고, 이후 진주강씨·나주김씨·제주고씨 등이 거주하면서 마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제주교구 사찰. 1934년 11월 5일 백양사 함덕포교당으로 설치계를 받아 창건되었다. 백양사 함덕포교당은 함덕과 인근의 대흘리 경계, 속칭 외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외꼴절’로 더 많이 알려졌던 사찰이다. 함덕포교당에서는 1937년 음력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 동안...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수원. 호는 천야(天耶). 아버지는 백찬규(白燦奎), 부인은 안요원(安堯媛)이다.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 만세 시위 운동에서 주동자 9명이 체포된 후, 백응선은 박두규(朴斗圭)·김필원(金弼遠) 등과 더불어 3월 22일 제2차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제2차 시위에서 박두규·김필원이 체포되었다. 3월 23일 제3차 시위가 조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기미년 조천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투옥된 백응선을 기리는 묘비.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제주도에서도 3월 21일 미밋동산에서, 22일 조천리에서, 23일 조천리 장터에서, 24일 함덕리에서 만세 운동이 펼쳐졌다. 일본 경찰은 주동자 23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으며, 이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민들은 뒷개 또는 뒷개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마을 뒤 또는 북쪽에 있는 포구라는 의미이다. 마을 동쪽 고두기 언덕에서 발견된 바위그늘집자리 유적은 기원전 1,000년 전후의 신석기 후기 유적으로 밝혀져 일찍부터 이곳에서 인간의 거주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장씨·이씨·윤씨 등이 이주하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와 북촌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 서모 오름 북쪽 봉우리를 북서모라 하며, 남쪽 봉우리를 남서모라고 한다. 예로부터 서모 또는 서모 오름·서모롬 등으로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서산(西山) 또는 서산악(西山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조선시대에 서모 오름의 북쪽 봉우리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이 봉수를 서산봉이라 하였다. 조선...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당신(堂神) 이야기. 옛날 함덕리에 사는 김씨 영감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갔는데, 그날은 낚싯줄만 드리우면 미륵 같은 석상만 올라왔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버리고 버리고 하다가 피곤해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에 그 돌이 현몽하여 자신은 용왕황제국 공주라면서 봉제하여 주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집으로 돌아온 어부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왯개, 옛개 또는 왜포(倭浦), 내포(內浦), 고포(古浦)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함덕리와 조천리 일부를 분리, 통합하여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는데, 이는 ‘새로 일어난 마을’ 혹은 ‘새로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흥리 동쪽의 함덕리 유물 출토지에서 탐라시대 전기의 유물들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 때 마을 향사에 모여 한글과 산수 등을 익혔던 문맹 퇴치 운동. 야학 운동은 일제하 식민지 제도 교육으로부터 배제된 민중들의 의식화를 위한 민중 교육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운동이다. 제주도의 야학 운동은 3·1 운동 이후 제주 지역 청년들이 계몽 운동 차원에서 노동 야학을 개설, 교사로 참여하여 대중 계몽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함덕리에서 선흘리로 올라가는 억수동 마을 입구의 북쪽에 위치한다. 1998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표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의 바위 그늘 유적 1개소와 탐라시대 전기로 판단되는 바위 그늘 유적...
-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월 21일 오후 3시경 이문천을 비롯한 5,6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미밋동산에 모여들었을 때 김시범(金時範)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김장환(金章煥)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문천을 비롯한 군중은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시가지를 향하여 시위하였다. 3월 23일의 시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 단체. 제주 브라스 앙상블은 틀에 박힌 고정적인 무대 연주를 탈피하고 해변 축제 및 학교, 직장 순회 연주를 비롯한 다양한 모습을 통해 또한 고전에서 현대까지의 레퍼토리와 대중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선곡을 통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설립되었다. 제주 브라스 앙상블은 1996년 3월에 리더 양경식(...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제주 지역 항일 독립 운동의 역사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 1919년 당시 휘문고등학교에 다니던 김장환은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향인 조천리로 내려와 김시범 등 14명과 더불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장환 등은 3월 21일 오후 3시 만세동산에서 조천리·신촌리·함덕리 주민 500~600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읍. 조천(朝天)이라는 명칭은 14세기 초 조천관(朝天舘)이 설치된 이후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조천이라는 의미는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순한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고 하나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북촌리 고두기 언덕에 있는 자연동굴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인 토기와 골각기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인간의 거...
-
1927년 제주도 조천읍에서 결성된 소비조합의 주도로 일어난 항일운동. 신좌소비조합은 1927년 김류환(金瑬煥) 등 당시 조천리 청년 20여 명에 의해 창립되었다. 목적은 실비로 물품을 판매함으로써 리민(里民)의 경제적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역대 조합장 및 이사들로 김순탁(金淳鐸)·김시범·김운배(金沄培) 등이 있었고, 조천만세운동과 관련된 자가 많았다. 시간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맨 처음 제주에 복음이 소개된 것은 임진왜란(1592~1598) 때 일본에 갔다가 유럽 사신들을 따라 제주로 돌아온 김복수가 천주교 교리서 및 기도문을 가지고 와서 복음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또한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이 항해 도중 제주에 표착하였고, 후일 귀국하여 유럽 12개어로 번역 발표한 『표류기』속에서 그...
-
일제 시대 제주에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한영섭의 죽음에 비문을 세우자 경찰이 관련 청년들을 검거한 사건.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한영섭의 장례를 치르면서 함덕리 지역 청년동맹원들이 선동적인 깃발과 비문을 세우자, 일본 경찰이 관련자를 모두 검거한 사건이다. 1931년 1월 15일 제주 함덕리 출신으로서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운동가인 한영섭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함덕리(咸德里)의 ‘덕’은 너럭바위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함씨 할머니가 놓은 돌다리 곧 ‘함다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약 700여 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함덕현이라 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평사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기와를 구웠던 가마터. 함덕포구는 탐라국 시절 4대문과 수군들이 드나들었던 병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서쪽 소나무 동산에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미 그때에 기와가 생산되었을 것으로 여겨져 함덕리 평사동 와요지의 축조 시기를 조선시대가 아니라 고려시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별초군의 격...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탐라시대 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다. 유적은 함덕 해수욕장 서쪽의 해안변에 자리한다. 1998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통일신라시대 토기편이 강창언씨에 의해 소개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토기...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276번지에 위치한 조선 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함덕리 해안 서쪽에 위치한 제주도 기념물 제23-14호(1996.7.18지정)로 지정된 함덕연대는 동쪽으로 서산봉수(직선 거리 1.8㎞), 서쪽으로 왜포연대(직선 거리 1.4㎞)와 교신하였다. 고문헌을 살펴보면, 함덕연대는 제주읍성에서 동쪽으로 35리에 있으며, 소속 별장...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었던 포구. 함덕포는 그 당시 함덕리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이 포구를 두고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과 이형상(李衡祥)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서는 함덕포(咸德浦), 그리고 「제주삼읍도총지도」에서는 강림포(江臨浦)라고 하였다. 강림포는 강녕개의 한자어다. 지금 조천읍 함덕리 2구에는 강녕...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와 함덕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문화학교.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는 제주도심에 인접한 자연마을로, 함덕해수욕장과 문화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반농반어촌의 전통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전국에서 우수 해수욕장으로 선정되면서 관광지 개발로 인한 지역 주민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
-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전까지 제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역사는 타민족의 지배 하에서 더욱 심하게 왜곡되었으며, 이 시기 제주 사회는 한국의 다른 지역 못지않게 심한 식민지적 수탈과 착취, 민족적 차별을 받는 가운데 이전 시기보다 예속 상태가 더욱 심화되었다. 일제는 1912년부터 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해안 일주 도로 포장에 나서 1918년에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