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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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在晋 |
영어음역 | Hong Jae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말기 정의현감을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홍범철(洪範喆)이며, 제주목 신촌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이우식(李友植)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부임하였다. 1898년(고종 35) 1월 방성칠(房星七)[1849~1898]이 화전세(火田稅)·장세(場稅)·호포(戶布)의 과다 징수와 환곡의 임의 징수 등의 폐단을 바로잡겠다고 1898년 제주민란(일명 무술 민요)을 일으켰다.
방성칠 등은 장사 수십 명을 선발하여 어남군(禦南軍)이라 부르며 제주성을 점거한 뒤 무기를 탈취하고 제주목사 이병휘(李秉輝)[1851~?]를 내쫓았으며 이방 문주호(文周浩)를 살해하였다.
이에 홍재진은 전 정의현감 송두옥(宋斗玉)[1850~1922] 및 무과 출신 김남윤(金南胤)과 함께 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을 일으켜, 민란이 일어난 지 7일 만에 진압하였고, 주모자 방성칠·강벽곡·정산마(鄭山摩) 등은 사형에 처해졌다. 이 공로로 홍재진·송두옥·김남윤은 품계가 올라갔고, 제주목사 이병휘는 파면되었다.
홍재진은 재임 중인 1881년(고종 18) 명월진의 관아를 개건 또는 중수하였고, 성첩(城堞)도 개축 또는 중수하였다. 개건된 건물은 아사(衙舍) 12칸과 문간(門間) 6칸이며, 중수된 건물은 보고(補庫)·별저고(別儲庫)·군기고·사창(司倉) 등 101칸이다. 성첩은 체성(體城) 412파(把: 약 635㎡, 1파: 약 1.543㎡) 중 110파를 개축하였고 302파를 중수하였다.
1883년(고종 20) 10월 15일 삼읍(제주목·대정현·정의현)에 마병도시(馬兵都試)를 실시하여 제주목에서 173명, 대정현에서 65명, 정의현에서 54명 등 모두 292명을 합격시켰는데, 이때 시험관은 정의현감 홍재진과 제주판관 고경준(高景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