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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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鳳鎬 |
영어음역 | Jo Bong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1292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순원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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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1292 |
성별 | 남 |
생년 | 1884년(고종 21) |
몰년 | 1920년 |
본관 | 한양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어려서 서당을 다녔고 19세 때 서울로 유학하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설립한 기독교계 경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4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귀향하였고 1906년 23세 때 결혼하였다.
경신학교 재학 때 접한 기독교 신앙이 깊어 1908년(순종 2) 제주에 온 목사 이기풍(李基豊)과 신자 김재원·홍순흥·김행권·김봉호 등과 함께 활발한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야간 영흥학교를 개설하여 주민 교육에도 열성을 다하였다. 1912년 이기풍의 권유로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5월 상해임시정부를 돕기 위한 군자금 모금을 벌여 1만원을 모금하여 송금하였다. 1919년 7월 20일 이 사실이 드러나 관련 인사 60여 명과 함께 검거되었으나, 모든 책임을 혼자 지고 1919년 9월 25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대구복심법원에서 1919년 11월 12일 징역 1년으로 확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1920년 4월 28일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3·1절에 대통령 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977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산자락에 기념비와 모충사(慕忠祠)가 도민의 이름으로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