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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577
한자 李基豊
영어음역 Yi Gipung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현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교사
출신지 평양
성별
생년 1865년 11월 21일연표보기
몰년 1942년 6월 20일연표보기
대표경력 한국 최초의 초대 목사|제주 최초의 외지 선교사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

[개설]

이기풍 목사는 1865년 12월 23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한국 최초의 목사이자 제주도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로 1908년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이기풍 목사는 1908년부터 1917년까지 많은 복음의 씨를 뿌렸다. 제주도 성안교회를 비롯하여, 금성, 삼양, 성읍, 조춘, 모슬포, 한림, 용수, 세화 등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기풍 목사는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에 완강히 거부하며 반대 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심한 고문을 받고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42년 6월 20일 우학리 교회 사택에서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이기풍 목사는 1883년 개인사숙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890년 평양 서문통 네거리에서 마펫(마포) 선교사를 다치게 한 계기로 1894년 슬왈슨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898년부터 1901년 매서인으로 함경도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1902년부터 1907년까지는 황해도의 안악, 문화, 신천, 해주 등지를 돌며 선교사 업무를 돕는 헬퍼로 시무하였다. 이 때 마펫 목사의 권고로 1903년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하던 해에 독노회가 조직되었고 여기서 목사 안수를 받아 한국 최초의 외지 선교사로 임명되어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이기풍 목사는 당시 1899년 신축교난으로 어려운 때에 제주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911년 10월 전라노회가 결성되었고, 제주도는 1912년 전라노회 관할이 되었다. 이 때 성내교회를 비롯하여 삼양, 내도, 금성, 한림, 협제 등지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록』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제주도의 교인은 410명, 예배당 3개, 기도회 처소가 5곳, 매주 모이는 남녀가 3백여 명에 이른다고 보고되어 있다. 이기풍 목사의 이러한 성과는 1912년 한국 장로교가 첫 총회를 조직하고 중국 산동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며 지금까지의 선교 받는 교회에서 선교하는 교회로 변신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1918년 전라노회의 결정에 따라 광주 북문안교회 초대 목사로 전임하여 전라남도 지역의 복음 전파 활동에 주력하였다. 1927년 제주 성내교회 위임 목사로 재차 부임하였다. 1931년 다시 전라남도 벌교교회로 파송되었다. 1934년 도서 벽지 여수군 남면 우학리 선교 및 도서 지방 순회 선교를 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기까지 많은 활동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4년 제주 성안교회이기풍 목사 선교 기념비가 세워졌다. 또한 1998년 5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이기풍 목사 선교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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