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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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行敎四學改建碑 |
영어음역 | Yi Haenggyo Geosabi Sahak Gaegeon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Yi Haenggyo's Four Academies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29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순만 |
성격 | 사학개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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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30년 |
관련인물 | 이행교 |
재질 | 제주 돌 |
높이 | 131㎝ |
너비 | 48㎝[윗부분]|45.5㎝[아랫부분]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298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행교를 기리는 비.
[개설]
이행교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827년(순조 27) 8월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제주에서 3년 정도 있으면서 이행교는 전임자인 심영석이 추진하던 제주향교 이전을 마무리 짓고 대일관과 홍화각 등을 중수하여 제주 지역의 사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판관 이의겸이 여색을 탐하고 성질이 포악함을 알고 조정에 청하여 파직하도록 하였고, 도련촌(道連村)의 신치득(愼致得)이 효자로 이름이 높자 부역을 면제해 주는 등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어 이름이 높았다.
[건립경위]
당시 광양에 있던 향교 자리가 사면이 터져 있어 겨울에는 특히 바람을 많이 받아 이만저만 불편하지 않았다. 이에 전 제주목사 겸 방어사 심영석이 관노 고상신(高相信)이 기증해 준 터로 이전할 준비를 하던 중 파직되어 흐지부지 될 뻔하였다.
이행교가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부임한 그 해 겨울, 일을 서둘러서 무사히 서문 밖 비룡지 옆의 현 위치로 이전할 수 있었다. 이행교 사학개건비는 이 일을 기리고 치하하기 위하여 이행교가 제주목사직에서 물러나던 1830년에 제주향교 안에 세운 것이다.
[형태]
비신의 높이는 104㎝이고 너비는 윗부분이 48㎝, 아랫부분이 45.5㎝, 두께는 위가 14㎝, 아래가 13.5㎝이다. 태석은 높이가 27㎝, 앞 너비 61㎝, 옆 너비 30㎝로 비의 총 높이는 131㎝이다. 149년이나 된 제줏돌 비석이지만 각자도 선명하고 보존도 잘 된 편이다.
[금석문]
비면의 왼쪽에는 “향교를 옮기는 커다란 일, 마음을 다해 추진하였고, 남은 힘을 미루어 삼학당(남학당·서학당·우학당)을 고치고 수리하였네.(이교거역 진심규획 추기여력 개즙삼학: 移校巨役 盡心規劃 推其餘力 改葺三學)”이라고 새겨져 있다. 또 뒷면에는 “庚寅 三月 日(경인 삼월 일)”이라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