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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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使用-金成-民亂 |
영어음역 | Sayong Kim Seongui Millan |
영어의미역 | Sayong and Kim Seong's Uprisi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1318년(충숙왕 5) 제주 지역에서 사용(使用)과 금성(金成)이 일으킨 민란.
[발단]
1318년 사용(使用)과 금성(金成)은 대호군(大護軍)장공윤(張公允)과 제주부사 장윤화(張允和)의 탐욕과 행패에 대한 저항으로 민란을 일으키고, 탐라의 최고위 토착 세력인 성주(星主)와 왕자(王子)도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경과]
달아난 성주와 왕자는 고려 조정에 민란 사실을 알렸고,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민란을 평정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봉기민들이 이르기를, “과거 탐라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목민관 이백겸(李伯謙)과 송영(宋英)을 보내주면 우리가 어찌 배반하랴!”하였다.
이에 따라 조정에서는 이백겸과 송영을 보내어 봉기민을 회유하려 하였으나 이백겸과 송영이 제주에 가기 전, 민란에 참여했던 봉기민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는지 주동자였던 사용과 금성이 제거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이었던 문공제(文公濟)가 상당한 무리를 죽이고 민란을 대부분 수습하였다.
한편, 원은 사용·금성의 민란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2개월도 지나지 않아 충숙왕에게 탐라의 사냥꾼 성금(成金)의 난을 평정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여기서 성금이란 사용과 더불어 민란을 주동했던 금성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은 제주가 실질적으로는 고려와 원에 이중 귀속된 상태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결과]
민란이 가라앉자 조정에서는 제주민들이 좋게 생각하는 송영을 다시 제주목사로 임명하는 한편, 민란의 원인 제공자였던 장공윤과 장윤화는 구금했다가 곧 섬으로 유배 보냈다.
또한, 조정에서는 상호군(上護軍) 배정지(裴廷芝)를 탐라존무사(耽羅存撫使)로 파견하여 민란을 완전히 수습하도록 하였다. 배정지는 2개월 동안 민란을 마무리한 공으로 귀경하여 재상 급 관직인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