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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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澤銖 |
영어음역 | Kim Taek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동 1458 |
시대 | 근대/근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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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동 1458 |
성별 | 남 |
생년 | 1901년(고종 38) |
몰년 | 미상 |
대표경력 | 명신학교 교사|신인회 총무부 간사|조선민주청년동맹 제주도위원장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1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서울의 보성전문학교 1학년을 수료하고 돌아와 주류 판매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명신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1921년 제주도 최초의 청소년 항일 단체인 반역자구락부를 창립하였다.1922년 제주청년수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명신학교의 경영 지원에 힘썼다.
1924년 3월 11일 제주도 최초의 사상 단체인 신인회(新人會)가 조직되자 한상호(韓相鎬)·홍순일(洪淳日)과 함께 총무부 간사로 활동하다가 검거되었다. 송종현(宋鍾炫)과 같이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7년 7월 송종현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제주도 야체이카(사회주의 운동의 세포 조직)에 배속되었고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협동전선체인 신간회(新幹會) 제주지회에 가입하였다.
1928년 제4차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사건에 연루되어 경기도 경찰부에 1929년 8월 24일 검거되어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32년 2월 7일 출감하였다.
1946년 2월 서울에서 조선민주청년동맹이 조직되자 제주도위원장이 되었으며 1947년 1월 25일 읍·면 단위로는 가장 먼저 조천면 조선민주청년동맹이 결성되었는데 각 읍·면 조직이 완료될 때마다 명예의장으로 추대되었다.
1947년 2월 23일 좌익 세력의 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지부가 결성되어 부의장단 4명 가운데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947년 3월 1일에 발생한 3·1절 기념 시위 사건 때 미군 CIC(육군 소속의 방첩대)에 검거되었다가 5일 만에 석방되었다.
해방 정국이 혼란스러워지자 일본으로 피신하였으며, 1955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오사카지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남조선노동당 계열이 숙청될 때 물러난 후 그곳에서 사망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