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004 |
---|---|
한자 | 濟州民亂-年- |
영어음역 | 1898nyeon Jeju Millan |
영어의미역 | Jeju Uprising in 1898 |
이칭/별칭 | 방성칠의 난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금순 |
[정의]
1898년(광무 2) 제주도에서 방성칠(房星七)이 주도한 민란.
[개설]
방성칠은 본래 전라남도 동복군[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사람으로 남학교도였다. 1894년 동학 농민 전쟁 실패 후 제주도로 건너가 화전민으로 정착해 살다가 1898년 제주 민란을 주도하였다.
[목적]
화전세와 마장세 등 조세 수취 구조의 폐단을 개혁하려는 목적이었다.
[발단]
1898년 2월 7일 방성칠의 주도로 광청리 일대 수백 명의 화전민이 제주목 관덕정 앞에 모여서 화전세와 마장세의 시정을 요구하였다.
[경과]
제주 목사 이병휘(李秉輝)는 시정을 약속하고 군중을 해산시킨 후 조천포에서 장정 60여 명을 모아 방성칠을 잡아들이려 하였다. 이에 방성칠과 화전민들은 크게 분노하여 각 마을에 통문을 돌려 집집마다 장정 한 명씩 모아 일전을 준비함에 따라 민란이 확대되었다. 봉기민들은 제주읍성으로 쳐들어가 제주목사 이병휘와 대정 군수 채구석(蔡龜錫)을 구타하여 성 밖으로 쫓아내 제주읍성을 점거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방성칠 등의 남학교도들은 독립 국가 건설을 계획하며 육지로 향하는 배들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였다. 장기전에 대비하던 중 방성칠이 일본 배에 탑승을 시도함에 따라 일본복속설이 퍼지면서 방성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되었으며, 관군의 교란 책동으로 인해 남학당 중심의 민란 지도부와 일반 농민들 간의 결속력이 약화되었다.
[결과]
정의 현감 홍재진(洪在晋)은 반격하여 제주읍성을 장악하고 파군봉에서 민란군을 진압함으로써 민란은 실패로 끝이 났으며, 주동자 방성칠과 강벽곡 등은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