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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 공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531
한자 曲阜 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한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곡부 - 중국 산둥성 곡부시
세거|집성지 곡부 공씨 집성지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상두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공자

[정의]

공자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곡부 공씨는 문선왕(文宣王) 공자(孔子)를 자신들의 시조로 믿으며, 공자의 고향인중국 산둥성 곡부(曲阜)를 본관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곡부 공씨는 고려 후기 문신 공소(孔紹)를 중시조로 삼는다. 공소는중국 원나라 한림학사였는데,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혼인하고 고려로 돌아올 때 수행하였다. 원래 이름은 '소(昭)'였으나, 고려 광종(光宗)의 이름과 같아 '소(紹)'로 고쳤다. 창원으로 사적(賜籍)되어 조선 시대까지는 창원 공씨로 알려졌다.

공소의 손자인 공부(孔俯)는 정몽주, 이색 등과 교유하였으며, 사신으로 명나라에 여섯 번이나 방문하였다. 1416년(태종 16)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다가 현지에서 사망하였다. 이외에 조선 시대 곡부 공씨 가운데 중요한 족적을 남긴 사람으로 공서린(孔瑞麟)이 있다. 공서린은 중종 대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경기도관찰사와 대사헌을 지냈고, 기묘사화 당시에는 화를 입은 사림 세력을 옹호하다 관직을 삭탈당하기도 하였다.

[입향 경위]

곡부 공씨의 화성 지역 입향 경위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곡부 공씨 족보를 살펴보면, 일찍부터 수원과 화성 지역에 묘를 쓰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족보에 의하면 곡부 공씨 59세이자 공소의 5대손인 공비가 동탄 지역에 묻혔으며, 마도면, 서신면, 정남면 등의 지역에도 곡부 공씨 묘가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작성된 남양향교[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소재]의 전답안과 양안 등에는 향교 재정의 근간이 되는 토지의 소작인으로 공씨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 인근 지역인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궐리사(闕里祠)와의 관련성도 생각하여볼 수 있다. 궐리사는 원래 중종 대 문신인 공서린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재인데, 훗날 정조가 사당을 세우고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며 궐리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인근 지역임을 고려하면 오산과 화성 지역 공씨들이 서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황]

곡부 공씨 화성 지역 집성지는 1957년 간행된 『경기도지』에 의하면 향남읍 상두리[23세대]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후 1980년의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화성 지역에 212가구 905명의 곡부 공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1,213명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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