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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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鳳九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 이봉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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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이봉구 장안·우정면 독립만세시위 참여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이봉구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35 |
거주|이주지 | 경성부 화천정 511 영창여관(泳昌旅館)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3·1운동을 주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봉구(李鳳九)[1897~?]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35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 부근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오후 3시 경 우정면사무소에 가서 몽둥이로 면사무소의 집기 등을 부수고 공문서를 소각하였다. 또한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로 가서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권총을 쏘며 도망가자, 차인범(車仁範)·차희식(車喜植)·장소진(張韶鎭)·장순식(張淳息)·이영쇠(李永釗)·이순모(李順模) 등과 함께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처단하기로 계획하여 추적하였다. 이봉구는 가지고 있던 몽둥이로 가와바타 도요타로의 후두부를 3차례 쳐서 넘어뜨렸고, 이어 군중들이 구타하여 처단하였다. 1921년 4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등의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