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벽청야작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89
한자 堅壁淸野作戰
영어공식명칭 Gyeonbyeogcheongya Oper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고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1년 2월 7일 - 견벽청야작전 발생
발생|시작 장소 견벽청야작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지도보기|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지도보기|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지도보기
종결 장소 견벽청야작전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지도보기|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지도보기|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지도보기
성격 전투
관련 인물/단체 국군 11사단 9연대|9연대 3대대|최덕신|오익경|한동석

[정의]

한국전쟁 중 1951년 2월 7일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해 민간인 마을을 불태워 빨치산 보급처를 소개한 작전.

[역사적 배경]

견벽청야란 중국 한나라 하승천이 그의 저서 『안변론(安邊論)』에서 변방을 방어하기 위해 ‘집단 주민 소개책(疏開策)’으로 언급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중국의 백승희 장군이 항일 전투에서 견벽청야 전법을 모방하여 게릴라지구의 모든 산림과 산간마을을 불살라 없앰으로써 적의 보급로와 숙식을 차단하여 빨치산 세력을 약화시키고 장애물 없이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제11사단장인 최덕신 준장은 항일 전투에서 국민당군으로 참전하였을 당시 경험을 살려 1951년 2월 7일 9연대에 ‘견벽청야작전’을 명령하여 공비 토벌을 전개하였다.

[경과]

1951년 지리산 지구의 산간 마을들은 빨치산에게 식량·의복 등을 전하는 보급처가 되고 있었다. 1951년 2월 7일에 지리산 지구 공비 토벌 작전 중 11사단 9연대가 견벽청야작전을 전개하게 되었다. 함양군 엄천지구의 오지마을인 송전리·운서리·문정리 등 3개 리 200여 가구 600여 명이 소개 명령을 받고 하루아침에 살림살이도 버린 채 가축을 몰고 일가친척 또는 인접 마을과 도시 등으로 떠나게 된다. 이후 국군 11사단 9연대 토벌대가 빨치산 토벌을 위해 지리산 지구의 산간 마을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결과]

견벽청야작전 수행으로 재산을 잃은 양민들은 대부분 선량한 민간인들로 빨치산에 의해 고통을 당하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더욱이 양민들은 공비들과 내통한 혐의로 군경 토벌대에 의해 색출되거나 생명을 위협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의의와 평가]

견벽청야작전은 공비 토벌을 목적으로 민간인 마을을 불태워 없앰으로써 삶의 터전을 잃은 민간인들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을 준 전쟁의 상흔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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