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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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本里里 |
영어음역 | Bolli-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본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성주군 인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상동을 병합하여 본리동이라 하고 덕곡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덕곡면 본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두산[688m]과 문수봉[672m]에서 발원한 오리천이 인곡(仁谷)에서 소가천(小加川)으로 흘러들고, 두 하천이 만나는 곳에 넓은 범람원이 형성되어 있다. 남쪽에는 인곡 뒤로 사월봉(四月峰)[400m]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사월봉 동쪽 산지에는 인곡과 대가야읍 저전리 섬마를 이어 주는 꾸꾹재가 있다.
[현황]
2010년 4월 기준 면적은 3.56㎢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94세대에 195명(남자 98명, 여자 9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본리1리·본리2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인곡·시암 등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오리천이 형성한 넓은 범람원에서 벼농사와 딸기 재배가 이루어진다.
인곡은 조선 선조 때 운암(雲庵) 박대복(朴大福)이 인·의·충·효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마을에 흉년이 들면 곡식을 풀어 이웃을 도우며, 임진왜란 때는 군량미 2,000섬을 바치고 순절하였는데, 이에 사람들이 인의(仁義)의 마을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 마을은 조선 말엽까지 인곡방 소재지였다.
옛날 인곡에는 심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당시 심씨 가문은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세도가여서, 지나가는 사람의 길을 가로막고 괴롭히는 등 주변 고을 사람들을 몹시 못살게 굴며 악행을 일삼았다. 그러나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나 권력 때문에 마음속 불만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악행을 보다 못한 한 승려가 심씨 가문 사람에게 “저 산에 있는 너희 조상의 묘를 옮기면 더 많은 부와 권세를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니, 심씨들이 이장하기 위해 묘를 팠는데, 그곳에서 학 두 마리가 나와 멀리 날아갔다. 그 뒤로 이장한 심씨 가문은 권세가 급속도로 기울어져 더 이상 마을에 살지 못하고 하나둘 떠나가 지금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시암은 달리 구상리(舊相里)·전상리(田相里)·승암(勝岩)이라고도 한다. 고려 말 성주이씨인 승암 이인임이 이곳에 유배되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 이후에 와전되어 시암으로 바뀌었다.
문화 유적으로는 본리리 유물산포지(本里里遺物散布地), 모의재(慕義齋) 등이 있다. 본리1리에는 보호수[지정번호 제11-19-2-12-1호]로 지정된 수령 160년 된 왕버들 한 그루가 있고, 아래에는 의자를 두어 마을 주민들의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