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명월관 부속 건물인 태화관[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2층의 동쪽 끝방에서 민족 대표 서른세 명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다. 태화관은 조선왕조의 인조가 즉위하기 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이후 안동김씨 김흥근의 저택이었다가, 헌종의 후궁 김씨가 머물던 순화궁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인 1905년 을사조...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수여(秀汝). 고조할아버지는 첨사(僉使) 백장(白璋)이며, 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역임한 백광호(白光浩)이다. 백선남(白善男)[?~1636]은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의 패륜함을 목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 때 창원부사에 임명되어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다. 1636년(...
-
오현필을 시조로 하고, 오옥린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보성오씨(寶城吳氏)는 오현필을 시조로 한다. 1216년(고종 3)에 거란군을 토평한 공으로 오현필의 큰형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지고, 둘째 형 오현좌(吳賢佐)는 동복군(同福君)에, 오현필은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3형제가 파를 형성하여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입향조인 오옥린(吳玉麟)은 현신교...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신(汝信), 호는 퇴암(退庵). 오종손(吳從孫)의 현손으로, 동생은 오대익(吳大益)·오대진(吳大晋)이다. 조선 광해군 때 사옹원봉사로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인조가 충청도 공주로 파천하자 두 동생과 함께 왕을 호종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동생들과...
-
조선 후기 문신이자 의병. 정묘호란은 1627년(인조 5)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에 대한 주전정책(主戰政策)이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 인조 즉위 후 집권 세력인 서인은 광해군 때의 대외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후금과의 관계를 끊는 한편,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후금은...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유지화의 정려. 유지화(柳志和)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준성(俊聖), 호는 반구당(泮鷗堂)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자 3년 동안 무덤 곁에서 움막을 짓고 정성껏 모신 다음 계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인조 때에 이르러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참봉 벼슬을 받았고 다시 주부에 올랐다. 이때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 1636년(인조 14) 4월 후금의 태종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이 왕자와 대신 그리고 척화론(斥和論)을 주장하는 자를 인질로 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당시 척화의 분위기가 고조된 조선 조정이 이를 거부하자 태종이 재차 침입을 감행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조선 조정은 12월 13일 도...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이괄(李适)은 인조반정에 대한 녹훈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하여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조영립의 정려. 조영립(趙英立)의 본관은 김제, 자는 사수(士秀)이다. 선조 때 인물로 충과 효를 함께 행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했던 조영립은 정유년에 과거에 오르고, 무오년에 아이만호(阿耳萬戶)라는 벼슬에 올랐다. 북쪽 오랑캐들이 창칼을 앞세우고 쳐들어오자 조영립은 자원하여 군에 들어가 좌영장 김응하와 더불어 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행지(行之)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叅判)에 추증된 조사회(趙思誨)이며, 어머니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여급(宋礪伋)의 딸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1624년(인조 2)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호위하였다. 선전관...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조필달의 유물.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본관이 김제이며 문양공(文良公) 조간(趙簡)의 11세손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1630년(인조 8) 충좌위우부장(忠佐衛右部將)에 처음 제수되었다. 그 후 순안현령, 보성군수, 양주목사, 포도대장(捕盜大將),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등...
-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지음서원은 충정공 이귀(李貴)[1557~1633]·나협[1546~1632]·나수눌(羅守訥)·고봉익(高鳳翼)·나처대(羅處大)[1714~1791]·나희후(羅喜厚) 등의 위패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이귀의 호는 묵재(墨齋), 자는 옥여(玉汝),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이(李珥)[1536~1584]와 성혼(成渾)[1535~1598]...
-
유인비를 시조로 하고, 유종숙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진주유씨(晉州柳氏)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유차달(柳車達)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나, 유차달의 9세손으로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진 유인비(柳仁庇)를 시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차달의 9세손 유순(柳淳)에 이르러 9형제로 번창하여 문화·풍산·서산·선산·전주·진주의 6파로 분파하였는데, 이때 유인비가 진산군에...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 유교를 국시를 삼은 조선시대에서는 행동 강령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강(三剛), 특히 군신과 부자와 부부 관계의 도리를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충(忠)·효(孝)·열(烈)을 장려하고 두드러진 행적이 있는 사람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올려 백성들의 사표로 삼았으며, 또 정려를 내려서 마을 입구에 정려...
-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정설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해주오씨(海州吳氏)는 고려시대에 건교군기감을 지낸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한다. 1410년(태종 10) 오선경(吳先敬)이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해주오씨족도(海州 吳氏族圖)」를 보면 해주오씨의 시조를 오인유라고 적고 있다. 오인유 계는 처음 본관을 수양(首陽)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해주가 전에 수양이란...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학자.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