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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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申氏忠孝烈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Pyeongsan Sin Cl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798-3[화포로 289-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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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63년(철종 14)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798-3[화포로 289-8]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평산신씨의 충효열 정려.
[개설]
평산신씨(平山申氏)는 만경의 하일도 진관포 어부의 딸[신성녀]로 태어나 농촌 출신인 경주이씨(慶州李氏) 이독금(李禿金)의 처가 되었는데, 시아버지는 맹인이었고 시어머니는 앉은뱅이였다. 또한 평산신씨는 팔자가 기구하여 남편마저 일찍 여읜 10대의 청상과부로서 시부모를 봉양하게 되었다.
그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한 친정 부모가 딸이 과부로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음을 불쌍히 여겨 개가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평산신씨는 “내가 본래 빈천한 집 딸로 개가하는 데는 부끄럼이 없지만 시부모가 늙고 병들어 다른 자녀의 봉양도 없는데 어찌 개가하느냐”며 한사코 뿌리치고 평생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수절하였다.
그리하여 눈먼 시아버지를 봉양하는데, 날아가는 오리라든지 동절기에 잉어라든지 또 죽순이라든지 시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지성을 다하여 봉양한 후 일생을 마치자 나라에서 효부 열녀비를 세워 주었다. 이러한 내용이 『만경향교지』와 『김제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평산신씨는 장절공 신숭겸(申崇謙)[?~927]의 후손으로 정려를 특명으로 받았다고 한다.
[위치]
만경읍사무소에서 군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 약 3.2㎞쯤 가면 도로 왼쪽에 화포리로 가는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3㎞쯤 가면 화포리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두 갈래로 나 있는데 그 삼각 지대에 평산신씨 충효열 정려가 있다.
[변천]
평산신씨 충효열 정려는 1863년(철종 14) 겨울에 전라감사의 특명으로 세우게 되었다. 이후 1971년 5월 18일 5세손인 본 마을 이재원 외 많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중수하였다.
[형태]
평산신씨 충효열 정려는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집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홍살이 있으며, 바로 주변은 돌로 담장을 낮게 쌓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