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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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川- |
영어의미역 | Sacheonga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한종구 |
성격 | 전설|지명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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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귀족 자제|6부 가족들|사씨|천씨 |
관련지명 | 사천성|중원경 |
모티프 유형 | 사천성의 개울가|4천여 호 마을|사씨천씨의 마을|네 갈래 냇물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서 사천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충주시 남산초등학교 서편의 하천 부근을 사천개라고 부른다. 「사천개」이야기는 이 하천 부근의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상황]
1981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에는 「옛날의 번화가 사천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충주의 구비문학』에는 「사천개」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내용은 동일하다.
[내용]
충주는 신라시대 5소경의 하나인 중원경이기도 하며, 한때 사천성이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 그때 이 사천개 부근에는 소경부에 배치되었던 귀족 자제들과 6부 가족들이 대번영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때의 고을 이름을 따서 ‘사천성의 개울가’라는 뜻으로 ‘사천개’라고 불렀다고 하며, 또 그 때의 가구가 4천여 호 살았다고 해서 사천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 설에는 옛날 이 부근에 대부호 두 집이 서로 세력을 과시하며 살았는데, 그 한 집은 사씨이고 또 한 집은 천씨였으므로 사천가 마을이라는 뜻으로 ‘사천개’라 불렀다고 한다. 또 예전에는 이 개울이 이 부근에서 네 갈래로 갈라져 물을 끌어갔기 때문에 ‘네 갈래 냇물’이라는 뜻으로 사천개라 했다고도 한다.
[모티프 분석]
「사천개」의 주요 모티프는 ‘사천성의 개울가’, ‘4천여 호 마을’, ‘사씨 천씨의 마을’, ‘네 갈래 냇물’ 등이다. 「사천개」이야기는 사천개 명칭유래담으로 신라시대 5소경의 하나인 중원경의 치소를 추측케 하는 전설이다. 중원경의 치소는 사천개 부근, 중앙탑 부근 등 여러 주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