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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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挽索場 |
영어의미역 | Mansakjang |
이칭/별칭 | 「줄다리기장」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남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종구 |
성격 | 전설|지명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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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전임 사또|신임 사또 |
관련지명 | 충주 |
모티프 유형 | 전임 사또의 가렴주구|신임 사또의 만삭장 개장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성남동에서 만삭장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만삭장’은 옛날부터 충주의 지신을 진압하기 위하여 해마다 대보름날 경에 줄다리기를 하던 곳이다. 「만삭장」 이야기는 줄다리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밝혀주는 지명유래담이다. 충주시를 동서로 양분(솔정이들과 갈매기들을 동군, 그 반대쪽을 서군)하여 동군과 서군으로 나누어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행하던 줄다리기의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는데, 당시에 충주시 용산동에 살고 있던 주민 정천득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조선 중기 신임 사또가 고을을 순행하다 보니 전답은 피폐하고 인심은 사나우며 백성들의 거동은 무력했다. 목사가 아전을 불러 그 연유를 물으니 전임 사또의 가렴주구가 심해 백성들이 극도로 피로해진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신임 사또는 퇴폐된 전답을 다시 옥토로 만들고 무력해진 인심을 바로 잡아 생기를 불어 넣어 주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만삭장을 열기로 하였다.
각 고을에 충주에서 난장을 연다고 방을 돌리고, 정초부터 고을을 두 패로 나누어 만삭장을 열었다. 그러자 고을이 점차 활기를 띠더니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고을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행동은 민첩해지고, 장사치들이 호경기를 맞게 되자 인심이 후해졌다. 외지에서 모여드는 장사치들과 어울려 장은 활기가 넘쳤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만삭줄을 끊어서 논에 풀어 놓아 논밭을 비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만삭장」의 주요 모티프는 ‘전임 사또의 가렴주구’, ‘신임 사또의 만삭장 개장’ 등이다. 현명한 신임 사또가 피폐한 지역을 활기차게 만들기 위해 만삭장과 난장을 열고 그때 행했던 줄다리기의 줄을 논밭에 풀어 농토를 기름지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줄다리기는 우리나라 수도경작 지역에서 행하던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충주 지역 정월 민속놀이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1788~?]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지금 호서 지역 충주목의 읍촌(邑村)에서는 정월 대보름부터 줄을 당기는 놀이의 승부로써 그 해의 풍흉을 점친다.”는 기록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