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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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達 |
이칭/별칭 | 경삼(景三),덕암(德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4월 17일 - 김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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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김달 호적령에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고 경산 마안산에 은거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 김달 향리로 돌아와 용산정에서 서당을 열고 후진 양성 |
몰년 시기/일시 | 1960년 3월 13일 - 김달 사망 |
출생지 | 김달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 |
거주|이주지 | 김달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 |
수학|강학지 | 김달 강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청도 |
[정의]
근대 청도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청도. 자는 경삼(景三), 호는 덕암(德岩). 청도 김씨 영헌공 김지대(金之岱)의 후손이다. 1883년 4월 17일 청도군 청도읍 덕천(德泉)에서 태어났으며, 김용준(金鏞俊)의 아들 3형제 중 장남이다.
[활동 사항]
김달(金達)[1883∼1960]은 1883년(고종 20)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에서 출생하였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달은 1922년 일제의 호적령에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다가 청도 경찰서에 체포되어 수감되었으나 끝내 거부하였고, 석방 후 경상북도 경산시 마안산(馬鞍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1943년 향리로 돌아와 용각산(龍角山) 아래 덕천의 용산정(龍山亭)에서 서당을 열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60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
김달의 문인 김용관과 김용보 등에 의하면, 김달은 일제하에서 「천하 포고문」이라는 격문을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문집이 있었으나 간행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