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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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烈女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류호석 |
[정의]
전통 시대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잘 섬겼던 아들과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개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교육과 과거 등을 통하여 유교적인 가치관이 널리 보급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충(忠)과 효(孝)를 최고의 덕목(德目)으로 삼았다. 이렇게 충효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에 충신과 효자·열녀가 배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부와 각 문중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면서 시대가 지날수록 더 많은 효자와 열녀(烈女)들이 배출되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충신들이 배출되었다. 정부로서는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충효의 행적이 두드러진 사람들에 대하여 정려(旌閭)를 내려 표창하였고, 문중에서도 가격(家格), 즉 가문의 성가를 높이기 위해서 정려를 필요로 하였다. 특히 왕조 말기에 해당하는 고종 대에 훨씬 많은 효자와 열녀들이 정려를 받았는데, 이곳 부안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안 지역의 효자]
부안 지역에서 정려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효자는 김형철(金炯轍), 김행원(金行元), 김광수(金光琇), 김대용(金大鏞), 김로(金厂+魯), 김방술(金邦述), 김상적(金商迪), 김윤신(金允新), 김응규(金應圭), 김응종(金應鍾), 김채상(金彩相), 김행선(金行先), 김호(金壕), 박겸(朴謙), 박성순(朴性淳), 박희춘(朴希春), 송세정(宋世貞), 송시주(宋時周), 송윤승(宋潤承), 송윤팔(宋潤八), 신성식(辛性植), 신응환(辛應煥), 신재명(辛在明), 오영필(吳榮弼), 유인환(柳寅煥), 이광춘(李光春), 이덕규(李德圭), 이만록(李萬祿), 이사영(李思永), 이사창(李思昌), 이승간(李承幹), 이원수(李元秀), 이준섭(李駿燮), 이협(李峽), 이형원(李馨源), 이집홍(李集弘), 임용진(林龍鎭), 장순붕(張順鵬), 정원발(鄭元發), 조시정(趙是鼎), 진우방(陳佑邦)·진득서(陳得瑞)·진윤태(陳允泰) 등 삼 효자, 최갑룡(崔甲龍), 허권(許權), 허억(許億), 홍순한(洪淳翰), 홍치순(洪致淳) 등이 있다. 물론 이 밖에도 기록에서 누락된 효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부안 지역의 효녀 및 열녀]
부안 지역에서 정려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열녀는 최현수(崔鉉洙) 처 제주 고씨(濟州高氏), 윤창권(尹昌建) 처 권씨(權氏), 허곤(許坤) 처 김씨(金氏), 김영찬(金永燦)의 딸, 김낙순(金洛順)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 임용진(林龍鎭) 처 부령 김씨(扶寧金氏), 김회규(金會圭) 처 부안 김씨(扶安金氏), 김인억(金寅億)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 박동환(朴東煥) 처 김씨(金氏), 신재항(愼在恒) 처 김씨(金氏), 김응규(金應圭) 처 부안 김씨(扶安金氏), 김재묵(金載黙) 처 노씨, 김상철(金相喆)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 송종현(宋鍾炫)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 김우상(金佑相)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 지경영(池慶榮)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 김풍하(金豊夏)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 최동태(崔東台) 처 수원 백씨(水原白氏), 최인배(崔仁培) 처 수원 백씨(水原白氏), 최동길(崔東吉) 처 수원 백씨(水原白氏), 박병규(朴炳奎) 처 여산 송씨(礪山宋氏), 신종환(辛宗煥) 처 여산 송씨(礪山宋氏), 최응남(崔應男) 처 파평 윤씨(坡平尹氏), 정흥조(鄭興朝) 처 전주 이씨(全州李氏), 송현거(宋賢擧) 처 이씨(李氏), 이선문(李宣文) 처 전주 이씨(全州李氏), 이규술(李圭述) 처 평택 임씨(平澤林氏), 성중엄(成重淹) 처 함열 조씨(咸悅趙氏), 최석민(崔錫玟) 처 연안 차씨(延安車氏), 유봉술(劉鳳述) 처 연안 차씨(延安車氏), 최영태(崔榮泰) 처 평강 채씨(平康蔡氏), 김회규(金會圭) 처 낭주 최씨(朗州崔氏), 신재진(辛在鎭) 처 탐진 최씨(耽津崔氏), 박민삼(朴敏三) 처 전주 최씨(全州崔氏), 김영제(金永濟) 처 호씨(扈氏) 등이다. 그리고 특별히 효열(孝烈)로 정려를 받은 사람은 반흥술(潘興述) 처 해주 오씨(海州吳氏), 오영필(吳榮弼) 처 창원 김씨(昌原金氏), 오국호(吳國鎬) 처 부령 김씨(扶寧金氏), 최영태(崔榮泰) 처 평강 채씨(平康蔡氏), 김채상(金彩相) 처 탐진 최씨(耽津崔氏) 등이며, 효녀로는 허권(許權) 처 광산 김씨(光山金氏), 효부(孝婦)로는 송윤승(宋潤承) 처 부령 김씨(扶寧金氏) 등이 있다. 그러나 효와 열의 행적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기록에만 적혀 있지 않았을 뿐, 열행이 있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효행도 두드러진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