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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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豚地公所 |
영어공식명칭 | Donji Catholic Church|Donji Gongso |
이칭/별칭 | 돈지천주교회,돈지성당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돈지1길 65[의복리 6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병구 |
설립 시기/일시 | 1980년 - 돈지공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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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96년 - 돈지공소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의복리 67-9에서 돈지1길 65[의복리 68-1]로 이전 |
최초 설립지 | 돈지공소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의복리 67-9 |
현 소재지 | 돈지공소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돈지1길 65[의복리 68-1] |
성격 | 공소 |
설립자 | 박정일 주교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의복리 돈지마을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부안성당 소속 공소.
[개설]
돈지공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의복리 일원의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공소 예절 및 각종 기도 모임을 갖는 신앙생활 공간의 중심이다.
[설립 목적]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의복리 돈지 지역을 중심으로 천주교 진리의 전파와 함께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끌고, 지역 공동체의 발전 및 지역 주민의 행복 추구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의복리 돈지 지역에 천주교 신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7년 이후이다. 계화도 간척 사업으로 확보된 농지에 섬진강(蟾津江) 댐 수몰민들이 이주하게 되면서 돈지 지역 일대에 많은 이주민이 생겼다. 전라북도 정읍 등지에서 이주한 십여 명의 신자들은 가정을 돌며 공소 예절을 시작하였다. 1986년 이만호 초대 공소 회장이 대지 449.59㎡에 건평 56.20㎡의 가옥을 매입하여 공소 경당으로 기증하면서, 비로소 ‘돈지천주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주민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고, 서로 낯설어 신뢰감도 없었다. 원주민들의 횡포와 텃세 또한 극심했다고 한다.
공소 신자들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마을에 신자가 많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열정적으로 선교하였다. 돈지는 샤머니즘이 성행하던 마을이었고 개신교와 불교가 먼저 들어와 있어서 전교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3년 12월 본당과의 협의 끝에 프란체스코(Francesco) 전교 수녀 3명을 초빙하여 50여 일 동안 집중적인 교리 교육을 실시하여 45명이 세례를 받는 성과를 올렸다.
현 김용운 공소 회장은 신자들의 모범적인 생활과 열성으로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큰 호응을 얻은 결과였다고 말했다. 힘을 얻은 돈지공소 신자들은 1996년 ‘부안성당 설립 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돈지공소의 새 경당을 마련하였다. 7780만 원을 들여 대지 1,428㎡에 155.37㎡ 규모의 경당을 신축하여 지금의 공소를 가지게 되었다. 신자 수는 68세대 120명에 이르렀으나,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생계가 어려워져 도시 이주 인구가 늘고 고령화 추세까지 겹쳐 꾸준히 줄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89년 3월, 레지오 마리에(Legio Mariae) ‘로사리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설하여, 현재까지 매주 회합을 가지며 유지하고 있다.
[현황]
2020년 6월 현재 공소 회장은 김용운 토마스이고, 신자 수는 33세대 44명이다. 첫째 주와 둘째 주 미사는 부안본당에서 지내고, 셋째 주 미사는 본당 신부가 방문하여 돈지공소에서 올리며, 넷째 주 미사는 신자들끼리 하는 공소 예절로 대신한다.
[의의와 평가]
돈지공소는 간척지 이주민과 현지인 간의 갈등 해소 과정이 진행되던 초기에는 신자 수가 크게 늘었다가, 새만금 간척 사업 이후로는 이농과 고령화로 인해 많이 줄었다. 그래도 돈지공소는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신자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