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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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居姓氏 |
영어공식명칭 | A Family Name of Residing for Generations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 살고 있는 성씨.
[변천]
부안 지역 성씨를 수록한 문헌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세종실록지리지』는 1454년(단종 2) 편찬된 『세종실록(世宗實錄)』의 부록으로 수록된 조선 전기 관찬 지리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 지리서로 1481년(성종 12)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수정·증보하여 1530년(중종 25) 55권으로 완성해 편찬한 문헌이다.
15세기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된 부안의 성씨를 보면, 부령(扶寧)의 토성(土姓)은 김(金)·장(張)·황(黃)·신(辛)·이(李) 등 5개 성씨이고, 속성(續姓)은 심(沈) 하나로 선산(善山)에서 들어왔으며 향리(鄕吏)이다. 보안(保安)의 토성은 한(韓)·황·송(宋) 3개 성씨이고, 속성은 임(林) 하나이고, 고촌(皷村)의 망성(亡姓)은 호(扈) 하나이다. 부령과 보안을 합쳐서 보면 조선 전기 부안에 세거하는 토성은 김·장·황[부령]·신·이·한·황[보안]·송 등 8개 성씨이고, 밖에서 들어온 성씨는 심과 임 2개 성씨이며, 없어진 망성은 고촌의 호 1개 성씨이다.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안의 성씨로 부령의 김·장·황·이·신·심 6개 성씨와 보안의 한·송·황·호·안(安)·임(林)·임(任), 호[고촌] 등 8개 성씨가 수록되어 있다. 심은 여전히 밖에서 들어온 내성(來姓)이라고 되어 있다. 부령과 보안을 합쳐 보면 16세기 부안에 거주한 성씨는 총 14개로, 15세기 『세종실록지리지』와 비교하면 안·임(林)·임(任) 3개 성씨가 늘어나 있다. 조선 전기에 꼭 이들 성씨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 성씨들이 부안에 거주하는 주된 성씨들이고 이 중에서도 김[부안(扶安)]이 대표적인 부안 지역 성씨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부안에 세거하는 성씨들을 담은 지리지로는 영조(英祖) 대인 1757년(영조 33)에서 1765년(영조 41) 사이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90년대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誌)』, 1887년(고종 24) 편찬된 『부안지(扶安誌)』 등이 있다. 영조 대의 『여지도서』에는 부안에 세거하는 성씨로 32개 성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 부령의 김·장·황·이·신·심 6개 성씨와 보안의 한·송·호·안·임(林)·임(任) 6개 성씨는 그대로이다. 다만 보안의 황이 부령의 황으로, 고촌의 호가 보안의 호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되었던 12개 성씨를 제외하면 영조 대 『여지도서』에 새로 추가된 성씨는 모두 20개이다. 이는 이 20개 성씨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선 건국 후 300여 년에 걸쳐 많은 성씨가 부안으로 이주하여 왔음을 알려 준다. 영조 대의 『여지도서』에 추기된 20개 성씨를 보면 최(崔)[전주(全州)]·유(柳)[진주(晉州)]·허(許)[태인(泰仁)]·고(高)[제주(濟州)]·박(朴)[밀양(密陽)]·민(閔)[여흥(驪興)]·윤(尹)[파평(坡平)]·채(蔡)[평강(平康)]·조(趙)[함열(咸悅)]·성(成)[창녕(昌寧)]·나(羅)[나주(羅州)]·오(吳)[군위(軍威)]·전(田)[연안(延安)]·정(鄭)[동래(東萊)]·강(姜)[진주(晋州)]·장(蔣)[아산(牙山)]·탁(卓)[광산(光山)]·신(申)[평산(平山)]·남(南)[의령(宜寧)]·홍(洪)[남양(南陽)]이다.
이렇듯 영조 대의 『여지도서』에 보이는 부안 지역 세거 성씨는 이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정조(正祖) 대인 1790년대에 편찬된 『호남읍지』에는 더 늘어나 있다. 1790년대 『호남읍지』에는 부안의 세거 성씨로 총 54개가 실렸으며, 여기에는 조선 전기의 토성 12개와 『여지도서』에 추기된 20개 성씨가 포함되어 있다. 즉 정조 대 『호남읍지』에는 영조 대 『여지도서』에 비해 부안 지역 세거 성씨가 22개 더 늘어나 있다.
정조 대 『호남읍지』 부안 성씨 조에 추가된 22개 성씨를 보면, 송[여산(礪山)]·김[광산]·김[경주(慶州)]·김[의성(義城)]·윤[칠원(漆原)]·김[창원(昌原)]·김[청도(淸道)]·조(趙)[한양(漢陽)]·안[죽산(竹山)]·안[탐진(耽津)]·이[전주(全州)]·이[고부(古阜)]·최[강진(耽津)]·이[경주]·유(柳)[문화(文化)]·임(任)[풍천(豊川)]·조[풍양(豊壤)]·양(梁)[남원(南原)]·전(田)[담양(潭陽)]·박[반남(潘南)]·임(林)[조양(兆陽)] 등이다. 30~40여 년 사이에 22개 성씨가 새로 등재된 것인데, 여기에는 이전부터 세거하였지만 수록되지 못한 성씨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영조·정조 대 많은 성씨가 부안에 새로 유입되었고, 전국적으로도 이주 현상이 상당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1887년에 편찬된 『부안지』[정해지]에는 부안의 성씨로 총 111개 성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보안 호씨와 고촌 호씨가 합쳐진 것으로 보고, 부령과 보안의 황씨도 합쳐진 것으로 헤아려 본 수치이다. 1790년대에 비해 1887년에 등재된 부안의 성씨가 57개 늘어난 것이다. 등재된 성씨로만 보면 조선 후기 100여 년 사이에 부안에 세거하는 성씨가 400년간 세거했던 성씨보다 두 배나 많아진 것이다. 실제로 두 배나 많아진 것은 아니겠지만 이는 조선 후기에 성씨가 급속히 늘었음을 말해 준다. 이렇게 많은 이주 현상은 부안만의 일은 아니었을 수 있다. 사회상이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이주 현상도 그만큼 늘어났고 들녘과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부안은 더더욱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총 114개 성씨가 있으며, 본관별 성씨로 나누어 보면 총 303개이다. 이 303개 본관별 성씨는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 극히 소수가 거주하여 기타로 잡힌 성씨는 제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