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과 함께 전국 2대 포구,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시장의 신화를 간직한 강경은 근대시기의 역사의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에 근대사 관련 유적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려 안타까움이 많다. 강경의 근대건축물은 19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강경천의 호안공사가 완료되면서 세워지기 시작했다. 시가지에는 상업도시 구조에 적합한 각종...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동일은행 지점. 1890년대 중반 정부 관료와 자산가 등에 의하여 국내에 근대적 개념의 은행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06년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된 이후 민간에서는 민족자본 육성을 위한 은행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한일은행은 1912년 민영휘(閔泳徽)가 은행장으로 취임하면서 민씨 문중의 은행으로 성격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성은행이나 대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은진현(恩津縣)편에 의하면 예전의 강경포는 강경산 아래 있는 해진(海津)이며, 강경산 봉수는 전라도 용안현(龍安縣) 광두원산(廣頭院山)에 응하고, 북으로는 황화산(皇華山)에 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강경은 한양과 호남간 봉화(烽火)의 중계지였다. 17세기 초의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직후였으므로 전쟁의 피해복구...
강경시장의 역사는 17세기 말경에 열린 하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시장이라기보다 민간 소유답에 휴한기를 이용하여 상품을 진열하는 정도였다. 1808년 저습지를 매립하여 입지를 확보하면서 큰 시장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 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가지를 조성하게 되어 상권은 더욱 넓어졌다. 상시장이 생긴 것은 지금의 북옥동 등 옥녀봉 밑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을 증설해...
강경젓갈시장 이 형성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염천리에서 젓갈상점을 운영해온 형제상회 박청수(남, 1939년생, 형제상회 사장) 사장을 만나 염천리의 변천과 젓갈상회의 유래 등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염천리의 지명은 예전부터 ‘염정(鹽井)’, ‘염대(鹽臺)’, ‘소금터’라고 불렸었는데, 염정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