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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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던 조선 전기 유학자 박증의 후손들이 남긴 유물. 박증(朴增, 1461~1517)은 외조부 성삼문의 충절을 추모하여 벼슬의 뜻을 버리고 32세 되던 1492년(성종 23) 노성현 암천(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로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이로써 무안박씨 노성파가 형성되었다. 박증이 노성 지역으로 입향한 이후 후손들이 지금까지 노성 지역에 세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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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노성면 읍내리는 조선시대 노성현의 읍취락(邑聚落)이었기 때문에 읍내(邑內)란 명칭이 유래했다. 노성현의 구읍취락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예전 기능을 이미 상실하였다. 노성은 본래 백제 때에는 열야산현이었는데, 당나라가 노산주(魯山州)로 고쳤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니산으로 고치고 웅주(현 공주)에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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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승을 시조로 하고 박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무안박씨 시조는 박진승(朴進昇)으로,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여섯 째 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후예이다. 박진승은 고려 전기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안이라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시대의 박승중(朴昇中), 조선시대의 박의장(朴毅長)·박홍장(朴弘長)·박창하(朴昌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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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1492년(성종 23) 이산(尼山) 암천(巖川)에 은거한 무안박씨논산 입향조. 본관은 무안(務安).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 어머니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어머니 창녕성씨는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成三問)의 딸이다. 박증의 아버지 박임경은 1456년 병자사화(丙子士禍)로 장인이 참화를 당하자 그 시신을 김시습(金時習) 등과 수습하여 노량(露梁)에 매장하고 두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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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 박증의 조선 전기 묘소. 박증(朴增)의 본관은 무안(務安)으로 자는 익지, 호는 암천(巖川)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하였으며, 사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뒤 묘소가 있는 당점산으로 서원을 이건하여 당호재라 하고 그곳에서 배향하고 있다. 1933년에 복원된부적면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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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박증의 조선 중기 묘표. 박증의 자는 익지이고 호는 암천으로 본관은 무안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했으며, 사후에 형조참의를 제수받았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이후에 묘소가 있는 당점산의 당호재와 복원된 충곡서원에서 배향되고 있다. 박증 묘표는 박증이 죽은 지 150여 년이 지난 1670년(현종 11)에 건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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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증이 낚시를 즐겼던 바위. 박증(朴增)[1461~1517]의 자는 익지(益之), 호는 암천(巖川)이며,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이(朴頤)[1402~1478]이고,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1436~?]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풍채가 빼어나며 대인장자 같다고 하여 기린(麒麟)이라 불렸다. 효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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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후동 산제 및 마을 기금에 관한 문서. 대명리 후동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초사흗날 마을을 굽어보는 국사봉에 올라 마을의 안녕을 위한 산제를 지내는데, 산제와 관련한 후동산제절목(後洞山祭節目)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후동산제절목은 1859년부터 기록이 남아있고, 노안 및 하계는 각각 1854년, 1858년부터 기록되었다. 1911년 이후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