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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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과 공주시 반포면·계룡면, 계룡시 두마면 및 대전광역시의 유성구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계룡산국립공원은 지리산국립공원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룡산은 조선을 개국한 후 태조가 신도안(현 계룡시 신도안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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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는 계룡산 줄기에 기대어 주변의 산이 마치 삼태기 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마을 입구 방죽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이 살짝 마을 안을 가려주어 안온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마을 앞으로는 풍요로운 농토가 펼쳐있고, 갑사 계곡에서 흘러나온 노성천이 유유히 흐른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주곡리는 그 전통과 역사성 덕분에 논산의 역사마을로 선정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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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 장승제는 논산시 향토유적 제2호로 선정된 유래 깊은 전통행사이다. 그러나 장승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오랫동안 마을에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하나는 조선 중종 연간에 청주양씨 첨정공 양춘건(楊春健)이 인근 신도내에서 숯골로 이사한 후, 동구 밖에 장승을 만들어 놓고 나라의 안정과 마을수호를 위해 제를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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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기성 종교에 대하여 전개된 새로운 종교운동. 우리나라의 신흥종교는 300~4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수적으로 다양하고 각기 계통을 달리함에도 불구 여러 특징들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내용만 다를 뿐 그 내적 구조는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동일해 보일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흥종교운동은 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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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의 윗뜸, 아랫뜸, 망가리는 청주양씨(淸州楊氏), 함평이씨(咸平李氏), 전주이씨(全州李氏)의 터전이기도 하다. 주곡리에 처음 터를 잡은 것은 윗뜸의 청주양씨로 전해지는데 입향조인 첨정공 양춘건이 중종 연간에 신도내에서 이곳 주곡리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그 후, 터를 잡고 살던 청주양씨와의 혼인으로 인해 함평이씨와 전주이씨가 각각 주곡리에 들어와 아랫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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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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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헌 씨가 전해주는 주곡리 장승의 유래는 고려 말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마을에 장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천하일색으로 널리 소문난 강충신의 부인을 호시탐탐 탐을 내었다. 그러던 중 멀리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장정승이 강충신의 부인을 가로채고자 마음먹고 강충신을 자신을 돕는 부사로 함께 가게 하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장정승은 결국 강충신의 목숨을 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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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우리의 주생활은 1960년대 들어 구조의 변화를 겪어 평면 구성과 외관의 특이성 등이 나타났다.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을 받아 거주 환경, 집의 구조, 재료 등 주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1970년대 이후 국가 시책과 더불어 양적·질적인 확대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변화의 범위는 더욱 확대되어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