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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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청주 양씨 선조를 제향하는 사당. 논산 충헌사는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를 주향으로 하고,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 등을 제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양기의 본관은 청주, 호는 암곡, 시호는 충헌이다. 양치는 양기의 증손으로 호는 퇴은(退隱)이다. 세종 때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개척하고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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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아들 서융(徐隆, 부여융이라고도 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융은 660년(의자왕 22)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멸망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다. 당나라 고종은 서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후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서융의 원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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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의 청주양씨는 서원백파(西原伯派)로 원래 한양에서 살다가 중종연간에 첨정공 양춘건이 주곡리에 정착하였다. 현재도 청주양씨는 마을 인구의 50~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마을에 사람이 한창 북적이던 1970~1980년대는 70%가 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장, 새마을지도자, 동계 회장, 총무 등등 대부분의 주요직을 맡고 있어 마을 일에 적극적이며, 마을 내에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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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청주양씨 시조.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암곡(巖谷). 양기(楊起)는 중국인으로 원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과 중서성정승을 지냈다.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연경에 머무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고려로 돌아갈 때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 후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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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여 논산에 정려가 세워진 문신,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경(仁卿), 호는 도곡(道谷). 양응춘은 회덕현감을 지내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을 따라 청주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이어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이조참의로 증직되었고, 1720년 충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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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8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양응춘에게 내려진 정려. 양응춘은 청주양씨로, 자는 인경(仁卿)이고,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현감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성의 탈환전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이어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왜적을 베었으나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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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전투.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고 한다.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도 특히 제2차 침략전쟁을 계기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격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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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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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춘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는 청주양씨, 함평이씨, 전주이씨 세 집안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청주양씨는 주곡리의 터줏대감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 1920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따르면, 1920년대 논산의 동족마을에 대한 자료에서 청주양씨가 상월면 주곡리에 동족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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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 가면 산노리 효암서원 앞에 이른다. 서원 입구 오른쪽에 강응정 정려가 있다 효암서원의 전신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가야곡면 두월리의 갈산사로서, 1713년(숙종 39) 현재의 자리인 산노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갈산사는 중화재 강응정을 모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