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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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보를 시조로 하고 이다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가평이씨의 시조 이인보(李仁輔)는 신라 때 완산(현 전라북도 전주시)의 호장을 지낸 인물이다. 『가평이씨세보』에 의하면 이인보의 8세손 이기문(李起文)이 조종에 이거하면서 본관을 조종으로 하였다가 조선 태조 때 조종이 가평에 편입된 후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이 가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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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가평이씨 묘역. 가평이씨 집안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 1394~1468)이 송리의 딸과 혼인하면서, 연산면 화악리에 세거하던 여산송씨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화악리와 가까운 청동리에 세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다림의 아들인 이형손(李亨孫,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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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전기 토착 성씨들의 미미한 활동상에 비해, 연산현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세력은 여말선초에 입향한 이거 사족(士族)들이었다. 이거 사족들은 연산천(連山川)의 지류를 따라 농경지 개간이 용이한 산간 계곡에 근거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여말 정국 변동에 따라 은거지를 정하고 낙향한 경우로, 모두 여산송씨(礪山宋氏)와의 혼맥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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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이다. 여산송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추증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송유익의 선계는 중국의 경조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송자영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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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효자 이관연의 비각. 이관연은 가평이씨(加平李氏)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후에는 3년간을 하루같이 곡을 했으며, 어머니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병들자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 때와 똑같이 행하니 효자 중의 효자라고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 후에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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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이자 가평이씨 논산 중시조. 가평이씨는 신라 말엽에 8세 이기문(李起文) 선대에 의거 조종(朝宗)으로 본관이 바뀌었고, 다시 조선 전기에 31세 이다림(李多林) 중시조(中始祖)에 의거 가평(加平)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관은 가평(加平). 할아버지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이며, 아버지는 도평의사사를 지낸 이침이다. 이다림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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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민진의 정려. 이민진의 본관은 가평, 자는 자선, 호는 백봉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의병 3천 명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다. 당시 29세의 이민진은 출전할 때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 그러나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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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경의 비석. 이장경 묘갈은 가평이씨 후손들이 예산현감·안음현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던 이장경의 행적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칭송하기 위해 1537년(중종 32)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00m를 가면 연산중학교가 나온다. 연산중학교의 전면에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데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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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장생의 묘소. 이장생은 가평인으로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1467년에 태어나 1522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좋아하여 1490년(성종 21) 갑과에 급제하였고 용양을 거쳐 선전관을 지냈으며,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으로 있을 때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오고 평안도절도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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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철근의 묘표. 이철근은 1449년 가평군 이형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경기수운관·포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통훈대부의 관직에까지 이르렀다. 1491년 충주판관으로 북정에 참여하였으며 진산군수·봉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이장생과 이장경이다. 이철근 묘표는 1508년(중종 3) 후손들에게 이철근의 행적을 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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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가평. 자는 창백(昌伯). 아버지는 가평이씨의 중시조인 첨지중추원사 이다림(李多林)이며, 어머니는 지금주사 송리(宋理)의 딸이다. 1436년(세종 18) 무과갑과에 급제하고 1447년에 중시장원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455년(세조 1) 12월 판관으로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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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도강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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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현동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족보 『선원선계(璿源先系)』에 의하면 이한은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린(李隣)과 그의 형 이의방(李義方)은 고려시대 중앙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당시 여진족(女眞族)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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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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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조선 후기 마을들은 당시의 사회 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라 점차 동성 문중을 중심으로 취락을 형성하는 동족마을로 바뀌어 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논농사가 발달함에 따라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자, 주거의 형태도 구릉 중심의 산촌(散村) 형태에서 평야 지대의 집촌 형태로 촌락 구조가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