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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558
한자 權寧珉
영어음역 Gwon Yeongmi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 370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 370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09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인천청년회 집행위원|민주주의민족전선 충남도위원회 조직부원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권영민은 1909년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임화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 3월 논산군 양촌공립보통학교(현 양촌초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공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중도에 퇴학을 당하고 같은 해 12월에 양촌면 인천청년회 집행위원이자 조직부 부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서울의 동양자동차강습소에서 3개월 강습하고 자동차 운전수 시험에 합격한 뒤 귀향하였다. 1931년 4월 동아일보 논산지국 기자로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활발한 사회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1932년 5월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에서 노동조합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노동조합의 창립대회를 위해 일제 경찰에 집회 허가를 요청했으나 여러 차례 거부되자, 5월 25일 노동조합원과 함께 창립대회를 강행하였다. 일본 경찰이 강제로 해산시키자 참석자들은 적기(赤旗)를 들고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군중들이 강경경찰서로 압송되는 그를 구출하려고 하였다. 당시 군중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불복하여 상고했으나 기각되어, 1935년 2월 만기 출옥했다.

194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참가하여 서울, 경기도, 충청북도 등 각 도 대표와 함께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를 방문하여 임시정부 요인의 환국을 환영하고 시국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1946년 3월에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 충남위원회 조직부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50년 3월 북한정치보위국에 소속된 대남한공작대원으로 월남하여 주로 관공리 및 남한의 반공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여 북한에 보고하다 소위 ‘북한정치보위국 남한공작대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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