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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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性穴 |
영어의미역 | Cup-mark |
이칭/별칭 | 홈구멍,알구멍,알바위,알터,알미,알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에서 확인되는 바위에 있는 구멍.
[개설]
성혈(性穴)은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 돌의 표면에 파여져 있는 구멍을 말한다. 성혈은 주로 고인돌[支石墓]의 덮개돌[上石]이나 자연 암반에 새겨진다.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민속에서는 알구멍, 알바위, 알터, 알미, 알뫼 등으로도 불린다.
홈구멍이 새겨진 바위는 대체로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후대에 계속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조성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성 동촌리 고인돌처럼 땅속에 묻힌 하부 구조에서 홈구멍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졌음은 분명하다.
청동기시대에는 이러한 홈구멍 바위그림[岩刻畵] 이외에 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 고인돌처럼 사람과 돌검이 새겨진 물상바위그림[物像岩刻畵]이나 홈구멍과 함께 새겨진 기하학적 바위그림도 확인되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바위그림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신앙의식은 생존을 위한 기원으로 신변 안전이나 식량 확보를 위한 개체 보존과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종족 보존이 주된 형태였을 것이다. 이러한 기원의 형태는 선사시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과 형태로 표출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홈구멍으로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홈구멍의 의미에 대해서는 주로 형태적 특징과 제작 방법 그리고 만들어진 곳의 입지를 통해 추론된다. 형태는 주로 원형으로 태양, 여성의 성기, 알, 구멍 등으로 상징되며, 돌 표면을 쪼아서 형태를 잡은 다음 회전 마찰을 통해 다듬었다. 모방주술(imitative magic) 의식을 통해 구멍-여성의 성기-마찰-생산으로 이어지는 기자신앙적(祈子信仰的) 형태와 구멍-알-곡식-생산으로 이어지는 풍요의 형태로 인식된다.
이 모두는 당시 생존을 위하여 가장 큰 기원인 생산이라는 형태로 귀결되는 바, 청동기시대에 활발히 전개되는 농경의 발달은 인구의 증가와 동시에 많은 생산량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된다. 홈구멍은 농경사회에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적 의식의 표현으로 생각되는 바, 홈구멍 유적의 입지도 마을의 상징적 경관에 위치함으로써 그 자체가 성스러울 뿐만 아니라 관련된 의례가 성스러운 행위로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현황]
여수 지역에서 성혈이 확인되는 유적은 지석묘에 한한다. 첫 번째 성혈은 여수시 미평동 평지 ‘다’ 지석묘에서 확인되었다. 지석묘는 미평역 구내에서 여수 쪽으로 200m 정도 가면 담장 근처 숲속에 1기가 있다. 동-서 방향 장축의 뚜껑돌 밑에는 훼손된 흔적이 있다. 굄돌 3개가 보이며 뚜껑돌 위에 성혈이 있다. 뚜껑돌의 크기는 620×380×180㎝이며, 괴석형 상석을 한 탁자식이다.
두 번째 성혈은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화련마을 ‘나’ 지석묘군에서 확인되었다. 화련마을 지석묘군은 모두 80기로서 화련마을 안쪽 구릉과 산사면에 비교적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 중 일부 지석묘에는 성혈이 있는 뚜껑돌과 그 윗면을 고르게 간 흔적이 있다.
세 번째 성혈은 여수시 만흥동 상촌마을 ‘다’ 지석묘군에서 확인되었다. 상촌마을에서 남쪽 약 500m 떨어진 곳으로 마을 건너편 계곡 입구에 있는 논에 지석묘 2기가 있다. 마래산 북동쪽 산기슭 아래의 평지이다. 1기는 매우 크며 윗면이 편평하고 하부는 논에 밀착되어 있다. 크기는 445×270×190㎝로 괴석형 뚜껑돌 아래에 굄돌 1개가 있다. 다른 하나는 360×280×135㎝ 크기이며, 굄돌은 보이지 않는다. 이 지석묘의 뚜껑돌 위에 2개의 성혈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