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
1587년(선조 20) 정기명이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도 해상에서 왜구와의 전투 중 순절한 이대원을 애도하며 지은 한시. 이대원(李大源)[1566~1587] 장군이 고흥 녹도만호(鹿島萬戶)로 있을 때인 1587년(선조 20) 2월, 남해안에 왜구가 나타나 양민을 괴롭히자 그들과 일전을 벌였다. 이대원 장군은 적장을 사로잡아 전라좌수사 심암(沈巖)에게 넘겼다. 그러나 전공을 자...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여수 문학의 대상 범위는 여수 또는 타지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 여수를 배경으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 여수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여수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여수 문학은 신화, 민...
-
전라남도 여수시 여서동에 있는 문화재단. 범민(凡民)이란 ‘평범할 범(凡)’, ‘백성 민(民)’의 조합으로 평범한 백성이라는 뜻과 함께 여수 사랑의 정신으로 지역발전에 애썼던 고(故) 박윤수의 호인 범민을 차용한 중의적 뜻을 가진 이름이다. 박윤수는 지역의 인물을 키우기 위해 ‘범민장학회’를 만들어 후학에 힘쓰고, 충무동에 ‘범민교’를 만들어 지역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였으며...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 내동마을 사충사 터에 세워진 비. 사충사(四忠祠)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종군하다가 전사한 정철(丁哲), 정린(丁麟), 정춘(丁春), 정대수(丁大水)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847년(헌종 13)에 건립되었다. 이후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철거되었다가 1921년 여수 웅천동에 오충사(五忠祠)란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이에 192...
-
1587년(선조 20) 손죽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와 전라좌수군이 벌인 전투. 1587년 1월 말경에 일본 규수의 오도(五島)와 평호도(平戶島) 출신들이 탄 왜선 두어 척이 흥양 녹도진[현재 고흥군 녹동] 앞바다를 침범했다. 보통 때 같으면 동남풍이 부는 4월 이후에 왜선이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예상을 깨고 일찍 침범했다. 녹도 만호 이대원이 경황이 없어 주장에게 보고하지도 않은...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자연마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자연마을로 충무공 이순신 어머니 기거지 등 유서가 깊은 지역이었다. 송현마을은 마을 주위에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하여 솔개, 솔고개 또는 솔곡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솔개는 소나무가 있는 포구란 뜻으로 바다를 기준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솔고개 또는 솔곡은 송림의 재(峙) 즉 산마루나 성(城), 읍(邑), 동(洞), 리(里)...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이순신과 압해정씨 창원맥의 4충신을 모신 사당. 사충사는 원래 가곡사(佳谷祠)라 하였다. 가곡사는 1847년(헌종 13)에 정재선(丁載璿)이 유림의 지원을 받아 정철(丁哲)에게 충절공(忠節公)이란 시호가 내려진 것을 기리기 위해 가곡마을에 세웠다. 통훈대부 행 종부사주부 정창협(丁昌夾)[1798~1875]이 상량문과 예성축문을 지어 21년간...
-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남해안 지방에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자 조선 조정에서는 비변사(備邊司)라는 합좌기관(合坐機關)을 설치하여 대비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 조정 내부는 대체로 당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이(李珥)가 10만양병설을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정에서 각 도에 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성곽을 수...
-
조선 중기 창원정씨 여수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창원. 자는 덕혜(德惠), 호는 월천(月川). 상호군 정연방(丁衍邦)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진사 정자린(丁自麟)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은 손자이며, 정대수(丁大水)는 증손자이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吏曹佐郞)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 때 부당함을 상소했다가 받...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정계생의 신도비. 사충사에 봉안되어 있는 임진왜란 공신인 정철, 정린, 정춘, 정대수와 그의 부친 정계생의 가계와 신상을 살필 수 있는 비이다. 금석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故月川丁公歿三百餘年至哲宗壬戌에 始贈公吏曹參判하고 高宗甲子에 又加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判義禁府事弘文館直提學하니 於法에 得竪碑神道而後孫이 久以孱力未遑이러니 今其遺裔龍洙相...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여숙(余淑), 호는 용서(龍西). 사성공(司成公) 정득우(丁得雨)의 8세손이다. 증조부는 정계생, 조부는 통사랑 정순종(丁舜鍾),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정호인(丁灝仁)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전했던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의 종질(從姪)이다. 1580년(선조 13) 아버지를 여읜 정대수는...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정대수의 신도비. 정대수(丁大水)는 자는 여숙이고 호는 용서(龍西)며 1565년에 웅천 송현마을에서 증 호조참판 정호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대사성 정득우의 9대손이고 월천공 정계생의 증손으로 정철, 정춘, 정린의 종질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휘하의 별장으로서 노량해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진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취임을...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원. 자는 사박(史博), 호는 묵암(黙庵). 성균관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원(丁舜元)이다. 아들은 정언신(丁彦愼)이고, 임진왜란 당시 함께 참여했던 정철(丁哲)은 형이요, 정춘(丁春)은 종형(從兄), 정대수(丁大水)는 종질(從姪)이다. 1588년(...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일. 자는 사순(士淳).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의 후손으로, 조부는 승의랑(承議郞) 정유침(鄭惟沈)이고, 아버지는 청사(菁莎) 정소(鄭沼)이다. 형은 정원명(鄭元溟)이고, 송강 정철(鄭哲)의 조카이다. 1545년(인종 1)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주...
-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사(靑莎). 송강 정철의 둘째 형이며, 큰누이는 인종의 귀인(貴人)이며, 둘째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이유(李瑠)의 부인이다. 정소(鄭沼)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18세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러나 1545년(명...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호(士浩).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청사(菁莎) 정소(鄭沼)이다. 동생은 정상명(鄭翔溟)이고, 송강 정철(鄭哲)의 조카이다. 정원명은 여수시 소라면 관기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훈련판관(訓練判官)으로서 동생 정상명과 함께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한산대첩 등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사명(士明), 호는 청은(靑隱). 성균관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원(丁舜元)이다. 임진왜란 당시 함께 참여했던 정린(丁麟)은 아우요, 정춘(丁春)은 종제(從弟), 정대수(丁大水)는 종질(從姪)이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였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사화(士華), 호는 송암(松巖). 성균관 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반(丁舜班)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여했던 정철(丁哲), 정린(丁麟)은 종형이고, 정대수(丁大水)는 종질이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가 1...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는 일과 그 체계. 여수 지역에는 원시적인 무교(巫敎)에서부터 기독교·불교·유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가 분포되어 있다. 이 종교들은 때때로 지역민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졌을 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역사의 격변 속에서도 굳건한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고, 개인의 인격과 도덕적 심성의 도야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여수에서는...
-
정연방을 시조로 하고 정계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알려져 있다. 정덕성은 853년(문성왕 15)에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로 귀양 와서 살았고,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장자 정열도(丁烈道)의 계손 정찬(丁贊)은 영광정씨(靈光丁氏), 그 아우 정관(丁寬)은 후창원정씨(後昌原丁氏), 차남 정응도(丁應道)의 계손 정윤종(丁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