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이씨
-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지은 지 오래된 가옥. 고택은 대개 우리의 오랜 전통적 생활양식과 의식구조, 기술, 장인에 의해 지은 목조기와집을 뜻한다. 즉, 근대 이전의 고유한 평면 및 구조 형태로 지은 우리네 살림집을 말한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금서헌(琴書軒)은 박륵(朴玏)[1594~1656]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박륵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숙헌(俶獻), 호는 금서(琴書), 아버지는 박의장(朴毅長),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회령판관·도총부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기만(南基萬)[1730~1796]은 1774년(영조 5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내며 정조에게 시폐를 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남몽양(南夢陽)[1771~1850]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길(應吉), 호는 야은(野隱)이다. 남필대(南必大)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증(贈) 좌승지(左承旨) 남경렬(南景烈),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순도(趙純道)의 딸 증(贈) 숙부인(淑夫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인데, 숙부 남경희(南景熙)와 안상침(安尙沉)의 딸...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휘만(南彙萬)[1725~1777]은 1777년(정조 1)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생원공일고(生員公逸稿)」가 전한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과 영해 지역 유교문화의 전개 양상과 관련된 이야기. 조선시대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고려 이래로 동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을 만큼 무향(武鄕)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여말선초에는 영덕·영해 지역에서 무과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영덕·영해 지역에 정착한 주요 가문의 입향조(入鄕祖)나 현조(顯...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신지(朴身之)[1629~1705]는 1675년(숙종 1) 문과 급제 후 예조정랑(禮曹正郎)·울산도호부사(蔚山都護府使) 등을 지냈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효자. 백사복(白思復)[1745~1795]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성초(性初)이다. 아버지는 백광욱(白光頊), 어머니는 이유당(李維堂)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 조부는 백시웅(白時雄), 증조부는 백세경(白世經)이며, 부인은 조석형(趙錫衡)의 딸 증(贈) 영인(令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재종숙 윤화(白潤華...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표[1605~1684]는 백현룡(白見龍)의 문인으로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원리는 영덕군 축산면의 중앙 북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상원리이다....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에 있는 진성이씨 집성촌. 진성이씨는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을 관향으로 하고, 이석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상원리 진성이씨는 영모당(永慕堂) 이선도(李善道)[1544~?]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나 언제,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에 대를 이어 거주하고 있는 주요 토착 성씨.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에는 일찍이 주요 반촌(班村)이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여러 명문 가문이 영덕군 지역에 세거하며 명망 있는 인사를 다수 배출하였다. 현재까지 영덕군 지역에 세거한 주요 가문으로는 대흥백씨(大興白氏)·무안박씨(務安朴氏)·선산김씨(善山金氏)·수안김씨(遂安金氏)·안동권씨(安東權氏)·야성김씨(野城金氏)·...
-
개항기 영덕 출신의 의병. 신돌석(申乭石)[1878~1908]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경(舜卿), 초명은 신돌선(申乭先), 본명은 신태호(申泰浩), 이명은 태홍(泰洪)·태을(泰乙)·대호(大浩)이다. 돌석은 아명이며, ‘태백산 호랑이’라고도 불렸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서 7대조 진사 신후종(申厚宗) 때부터 영해(寧海)에 들어와서 살았다. 이후 영해부(寧海府...
-
개항기 태백산맥을 무대로 의병 활동을 펼친 영덕 출신 의병장 신돌석 이야기. 신돌석(申乭石)[1878~1908]은 영덕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6~1908년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이끌었다. '태백산 호랑이'는 신돌석을 풍자화한 이름이다. 신돌석은 태백산맥 여러 곳에 요새를 두고 탁월한 지휘력과 전투력으로 일본군 수비대를 여러 차례 격파했던 민족의 영웅이다. 축지법으로 신출귀몰하는...
-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후기 구석기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한반도 전역에 인류가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덕에서도 오십천(五十川) 유역의 지품면 오천리, 송천(松川) 유역의 창수면 삼계리 일대를 중심으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오천리 유적은 중기 구석기 혹은 그 이전으로 편년...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영덕 난고종택(盈德蘭皐宗宅)은 원구전통마을에 세거하는 영양남씨 종택이다. 영양남씨는 남준(南峻)[1474~1550]이 평해에서 원구리로 이거한 이래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난고종택은 남경훈(南慶薰)[1572~1612]의 큰아들인 안분당 남길(南佶)[1595~1654]이 건립하였다. 남경훈의 자는 응화(應和), 호는 난고...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영덕 난고종택(盈德蘭皐宗宅)은 원구전통마을에 세거하는 영양남씨 종택이다. 영양남씨는 남준(南峻)[1474~1550]이 평해에서 원구리로 이거한 이래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난고종택은 남경훈(南慶薰)[1572~1612]의 큰아들인 안분당 남길(南佶)[1595~1654]이 건립하였다. 남경훈의 자는 응화(應和), 호는 난고...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영덕 상의당(盈德尙義堂)은 백충언(白忠彦)[1538~1609]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백충언의 본관은 대흥, 자는 언지(彦之), 상의당(尙義堂)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錄勳)되었다. 1874년(고종 11)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영덕 상의당(盈德尙義堂)은 백충언(白忠彦)[1538~1609]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백충언의 본관은 대흥, 자는 언지(彦之), 상의당(尙義堂)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錄勳)되었다. 1874년(고종 11)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구리는 영덕군 영해면 중앙의 북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원구1리·원구2리로 분리되어 있다....
-
조선 전기 진성이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이선도(李善道)[1544~?]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영덕 입향조로서, 영덕 지역에 퇴계학파(退溪學派)가 확산하는 데 일조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시명(李時明)[1590~1674]은 장흥효(張興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612년(광해 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이함(李涵)[1554~1632]은 1609년(광해군 1) 문과에 급제했으며, 의령현감(宜寧縣監) 등을 지냈다....
-
1392년 조선 개창부터 1876년 개항 이전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덕·영해 지역은 해안에 자리하였으므로 해산물과 제염(製鹽)이 성행하여 영남 북부 내륙지방의 어염물(魚鹽物) 공급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로(海路)를 통한 함경도, 강원도 지역의 조세 곡물을 운반하는 경유지로 그 경제적인 효과도 컸다. 반면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기에 동해안...
-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이석을 시조로 하고 이선도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진성이씨(眞城李氏)는 이석(李碩)[?~?]을 시조로 하고 이선도(李善道)[1544~?]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로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천3리 웃곰창마을에 있는 강릉함씨 집성촌. 강릉함씨는 강원도 강릉시를 관향으로 하고, 함혁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화천3리에는 1568년(선조 원년)에 수군만호 함득선(咸得善)[생몰연대 미상]이 입향하여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강릉함씨 집성촌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