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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녕지구 전승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39
한자 新寧地區戰勝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58년 10월 30일연표보기 - 신녕지구 전승비 건립
현 소재지 신녕지구 전승비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732-2번지 지도보기
성격 현충시설물
재질 콘크리트
크기(높이) 7.5m
너비 60㎝
두께 60㎝
관리자 신녕면장
문물|보호단위 등급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신녕 지역에서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개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국군 제2군단과 인민군 제2군단 간의 병력 2만5천명이 1950년 8월 13일에서 9월 14일까지 33일간 영천·신녕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때 국군 제6사단을 주축으로 한 아군은 인민군의 전차를 육탄으로 공격하는 등 용전혈투 끝에 인민군을 북으로 퇴각시켰다.

신녕지구 전투는 그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영천지구 전투와 함께 영천 지역에서 국군의 총반격 계기를 만든 전투로 평가된다. 칠곡군 왜관의 낙동강 전투로 유명한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는 다부동-신녕-영천-안강-포항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이 만들어지면서 각 지역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국군이 승리를 하면서 북진의 발판을 이루어냈다.

[건립 경위]

1950년 8월과 9월 사이 42일간 치열하게 벌어진 국군 제2군단과 인민군 제2군단 간의 전투에서 승리한 인민군을 북쪽으로 퇴각시킨 육군 제6사단 청성 육탄 용사 및 전몰 영령들의 멸사봉공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신녕지구 전승비가 1958년 10월 30일 건립되었다.

[위치]

신녕지구 전승비는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732-2번지로 성환산공원 내에 있다. 신녕면소재지에서 군위군 의흥면과 의성 방면으로 빠져나가자마자 우측에 보이는 언덕이 성환산공원이다.

[형태]

신녕지구 전승비화성리 성환산공원의 정상부 495m²[약 30평]의 부지에 66m²의 건축 면적으로 축대, 기단, 비를 세웠다. 축대는 2중으로 조성했다. 제1단 축대는 원형의 화강암 축댓돌 쌓기로 마감한 다음 제2단 축대 사이에 작은 나무를 심어 조경을 했다.

제2단 축대는 장방형의 화강암으로 가공한 높이 약 90㎝의 세벌대 축대로 평면 형태가 별 모양이다. 제2단 축대 상부의 가장자리에는 난간 동자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쇠사슬로 둘렀다.

중앙부에는 역시 별 모양의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을 3단의 계단식으로 조성했다. 기단부 상면 중앙에는 평면 정방형의 시멘트로 마감한 2중 비좌를 놓고 그 위에 사각기둥 모양의 비를 세웠다.

비의 상부에는 독수리를 형상화해 올렸는데 마치 진짜 독수리가 앉아있는 듯하다. 비신(碑身)의 전면 상부에는 별 모양을 박아 놓고 그 아래에 동판으로 된 비명 판을 세로로 붙였다. 기단의 높이는 2.5m이고 비의 높이는 7.5m이다. 평면 정방형의 비신은 그 폭이 60㎝이다.

[금석문]

신녕지구 전승비 평면 정방형의 콘크리트조 비에는 세로로 쓴 ‘신녕지구전승비(新寧地區戰勝碑)’라는 비명이 양각으로 적혀 있다. 영천지구 전승비의 경우 비문을 자연석 화강암에 음각으로 새긴데 반해 신녕지구 전승비는 별도의 동판에 글자를 주조했다.

[현황]

신녕지구 전승비가 있는 화성리 성환산공원의 정상부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체육 시설과 함께 조경 등이 잘 정비된 상태이다. 또 전체가 화성리 성터로 알려져 있고 환벽정, 신녕향교 등의 문화 유적이 주변에 있다.

매년 9월에 전몰 호국용사를 위로하는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한편 성환산공원 동쪽의 신녕초등학교에서 국가보훈처 경주보훈지청과 현충 시설 사랑을 위한 공동 협력 협정을 체결해 매년 학생들의 봉사 활동과 현장 체험 학습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녕지구 전승비는 6·25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국군의 총반격의 기회를 마련하고 북진을 할 수 있었던 신녕지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의미 깊은 유적이다. 지역의 학생들과 주민들이 매년 공동으로 위령제를 지내고, 학생들의 봉사 활동과 현장 체험 학습의 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현충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의미 있는 유적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이** 신녕전투(1950.08.13.~1950.09.15.)에는 국군 6사단과 북한군 1·8사단이 참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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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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