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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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應銖墓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자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46년 - 권응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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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08년 - 권응수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685년 - 권응수 묘표 건립 |
현 소재지 | 권응수 묘표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
성격 | 묘표 |
관련 인물 | 권응수|김세호|권득형 |
재질 | 돌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권응수(權應銖)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소 앞에 세운 묘표(墓表).
[개설]
권응수[1546~1608]의 본관은 안동, 호는 백운재(白雲齋)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에 급제한 후 수의부위권지(修義副尉權知)·훈련원부봉사(訓鍊院副奉事)를 지냈으며,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의 막하에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돌아가 의병을 모집해 궐기했다.
고향의 지인들과 규합해 영천성 수복·경주·창암·달성·형강·울산 전투 등 각처에서 왜군과 대항해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경상도 병마좌별장·충청도 방어사·경상좌도 방어사·밀양 부사·의흥위부사직(義興衛副司直)·충무위호군(忠武衛護軍) 등을 거쳐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으로 책록되었으며,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시호가 충의(忠毅)로 영천시 신녕의 경덕사(敬德祠)[귀천서원]에 제향되었다.
[건립 경위]
권응수 묘표는 임진왜란 때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권응수의 업적을 기리고자 1685년(숙종 11)에 그의 묘 앞에 세웠다.
[금석문]
권응수 묘표는 한성부 판윤을 역임한 김세호(金世鎬)[1806~1884]가 찬하고 권득형(權得衡)이 썼다. 비문의 초반부에는 명의 신종황제가 권응수의 초상화를 보고 빼어난 모습에 대해 칭찬하고 포상한 일을 기록해 두었고, 중반부에는 권응수의 선조에 대해 기록한 후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일에 대해 서술하였다. 후반부에는 권응수의 자손들에 대해 서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