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신라 말기의 행정구역. 고울부(高鬱府)는 절야화군(切也火郡) 혹은 임고군(臨皐郡)으로 불리던 영천 지역이 신라 말기에 명칭이 개칭된 지역이다. 절야화군[임고군]이 고울부로 개칭된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925년(고려 태조 8) 10월 고울부 장군 능문(能文)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에 투항하였다든가 927년(태조 10) 9...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변천과 흥망 과정의 기록. 영천(永川)은 삼한 시대 부족 국가 골벌소국(骨伐小國)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切也火郡)·임고군(臨皐郡)·영주(永州)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영천이라 하였는데, 일제...
925년부터 14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신라 때의 임고군은 군치와 장진현(長鎭縣)·임천현(臨川縣)·도동현(道同縣)·신녕현(新寧縣)·민백현(黽白縣)의 다섯 개 현을 영현으로 하였는데, 이 중 임고군 군치와 도동현, 임천현이 합하여 고려 초기에 영주(永州)가 되었다. 임고군 군치와 도동현, 임천현 등 인근 군현을 합해 영주로 만든 것은 925년(...
1895년부터 19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영천군(永川郡)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당시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영천군이 되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과 ‘산’을 사용하도록 명하자 천을 선택...
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임고군은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에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절야화군(切也火郡)을 임고군으로 바꾸었다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절야화군은 임고군으로 이름이 바뀌고, 그 영현들의 이름도 바뀌게 되었다. 경덕왕 때 일제히 전국의 고을 이름을 바꾼 이유는 귀족 세력을 억압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데 있었다...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조계상의 본관은 창녕. 자는 종성(宗聖)이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창녕 조씨 조계상(曺繼商)의 고조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좌익병마사(左翼兵馬使) 판희천군사(判熙川郡事) 조신충(曺信忠)이니 영천 입향조이다. 조계상의 증조는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조상치(曺尙治), 조부는 예조참의(禮曹參議) 조변융(曺變隆)이다. 조계...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천리(平泉里)는 들 가운데 샘이 있으므로 ‘들새미’ 또는 한자로 ‘평천(平泉)’으로 불리어 왔다. 또 임진왜란 이후 거듭되는 가뭄으로 온 마을의 식수가 고갈 상태에 이르렀을 때도 들판 아무 곳에나 우물을 파면 물이 잘 나왔다 하여 평천(平泉)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평천리의 밑덤·다칭·다산(茶山) 마을에는...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정치 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기·교통·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