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제
-
경상북도 영천시의 초기 국가 시대부터 신라 멸망까지의 역사. 영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소국인 골벌국(骨伐國)을 형성하였다가 신라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교통과 군사의 요지로서 중요시되면서 발전하여 왔다. 1. 선사 영천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자취는 이 지역에 산재한 많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산면 연계리와 금호읍 어은리 등에서 발견된...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암리(龜岩里)는 구복동(龜伏洞)과 가암동(佳岩洞)을 병합하여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구암리라 하였다. 구복동[혹은 구암(龜岩·九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은 아홉 개의 바위 가운데 한 개가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가암동은 마을에 있는 아홉 개의 바위가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암...
-
경상북도 영천시 본촌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본촌동 고인돌 떼는 경부고속도로 영천 인터체인지 북편에 인접한 본촌동 예실마을 서쪽 구릉 정상부에 있는데,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개석식 고인돌 2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본촌동 고인돌 떼의 서쪽에는 청제(菁堤)가 있고, 동편 약 400m 거리에는 봉동천이 동남에서 북서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서인원(徐仁元)의 본관은 달성. 자는 가성(可成), 호는 박약재(博約齋)이며, 고조는 봉정대부(奉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정평(貞平)의 시호를 받은 서균형(徐鈞衡)이니 시조 서진의 증손이다. 증조는 귀계(龜溪) 서침(徐沉), 조부는 승사랑(丞仕郞) 광흥창(廣興倉) 부승(副丞) 서문한(徐文翰), 아버지는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변천과 흥망 과정의 기록. 영천(永川)은 삼한 시대 부족 국가 골벌소국(骨伐小國)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切也火郡)·임고군(臨皐郡)·영주(永州)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영천이라 하였는데, 일제...
-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과 금호읍 구암리 경계에 있는 신라 시대에 축조한 저수지. 영천 청제는 신라 시대 476년 혹은 536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신라 시대 축조된 수리시설 중 지금까지 관개 수리시설로 이용되는 유일한 못이다. 2005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된 바 있으며, 청제를 축조한 기록을 담고 있는 청제비(菁堤碑)는 1969년...
-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에 신라 시대 청못[靑池]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우리나라 최고의 수리비(水利碑). 경상북도 영천은 전국에서 저수지가 가장 많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청제비는 신라 시대에 축조된 영천 청제[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이 비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못으로 인식되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1968...
-
경상북도 영천시는 기후적으로 일조량은 많은 반면에 강수량은 적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농경을 위한 수리(水利) 시설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1,500여 개의 저수지가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수리 시설의 모습을 밝혀 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 영천시 도남동 청못 밑에 세워진 청제비(菁堤碑)가 있다. 영천시는 전국 최대량의 저수지가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통 시대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수리 시설. 제언(堤堰)은 농업용수를 저장하기 위해 설치한 제방(堤防)과 방축(防築)으로, 보통 ‘저수지’라고 한다. 16세기 이후 벼농사가 직파법(直播法)에서 이앙법(移秧法)으로 발전하면서 물의 확보가 농사에 중요한 문제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이앙법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전국에 많은 숫자의 제언이 설치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