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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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마을은 화산 산맥의 한 지맥이 동남쪽으로 뻗고, 다른 한 지맥이 동일 방향으로 뻗어 각각 마을 앞뒤의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사이에 들을 형성하고, 구일안못에서 발원한 냇물이 남으로 흘러 들의 중앙부를 통하여 신녕천을 이루는 지류를 형성하는 곳이다. 옛날부터 마을 뒤 백학산은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다. 영천의 가상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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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상리(佳上里)는 가래실이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가래나무[楸子]의 숲이 무성하여서 ‘가래실’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상리에는 약 520여 년 전에 구의헌(九宜軒) 권열이 안동에서 처음으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웃가래실과 아랫가래실엔 화산리·암기리·대기리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래실이 으뜸 되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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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 있는 산성. 가상리 산성은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가래실마을의 뒷산인 해발 215m의 백학산에 있다. 이 성의 구체적인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가 없지만 축조 기법이나 형태 등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가상리 산성의 체성은 토석혼축으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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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도 불리며, ‘오직 성서[sola scriptura]’, ‘오직 신앙[sola fides]’, ‘오직 은총[sola gratia]’이라는 원리로 16세기 가톨릭 교회에 대한 투쟁으로 시작된 종교 개혁이 그 기원이 된다. 가톨릭의 지나친 형식주의에 반하여, 예전의 전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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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고디[다슬기]가 많이 채취되는 여름철에 국으로 먹는 향토 음식. 맛있는 고디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일단 고디를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고디는 민물에서 채취되는 것으로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잔여물이 남아 맛이 반감하게 된다. 물을 팔팔 끓이고 나서 씻어놓은 고디를 넣어 한 번 더 끓인다. 고디를 삶아 건져내고 바늘로 고디 살을 발라 내는데 예전에는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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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盧穗)를 시조로 하고, 노탁(盧琢)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광주 노씨(光州盧氏)의 시조는 중국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이다. 당나라 선종(宣宗) 말인 859년 전후에 난을 피하여 아들 9형제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정착하였다가 용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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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의 발달은 정치 중심지를 핵으로 하여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과 지세의 복잡성은 교통로 발달을 저해하였고, 교통로의 미발달은 지역간 문화적 차이는 물론, 생활권·언어권 등의 폐쇄성을 낳아 오랜 동안 전통적 유습을 지속시킨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영천시는 현재 중앙선과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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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호국(護國)에 관한 사실. 영천은 일찍이 고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국난 극복의 보루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영천이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영천인들의 국난 극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호국 여신(女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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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권규섭(權奎燮)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좌영장으로 활약한 의병이다. 권규섭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인숙(仁俶)으로, 1883년(고종 20) 지금의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권영식(權英植)과 어머니 경주 최씨(慶州崔氏)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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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 권극립(權克立)[1558~1611]의 본관은 안동. 자는 강재(强哉), 호는 동봉(東峯)이며 문절공(文節公) 권중화(權仲和)의 6세손이다. 고조는 부승(副丞) 권영신(權永愼)이며, 증조는 사정(司正) 권균(權勻)으로 처음 영천에 옮겨 살았고, 조부는 사직(司直) 권필신(權弼臣)이다. 아버지는 통훈랑(通訓郞) 울산훈도(蔚山訓導) 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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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권란(權鸞)의 본관은 안동(安東). 고조는 효행으로 정려된 현감(縣監) 권질(權晊)이며, 증조는 군수(郡守) 권시(權偲), 조부는 안동 권씨 영천 입향조인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열(權挒)이다. 부친은 증(贈) 호조 참의(戶曹參議) 권처정(權處貞)이며, 모친은 숙부인(淑夫人) 청주 양씨(淸州 楊氏)로 참의(參議) 양효지(楊孝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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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권목(權穆)의 본관은 안동. 자는 심중(深仲)으로 1643년 5월 21일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통훈랑(通訓郞) 울산훈도(蔚山訓導) 권해(權楷)이며, 증조는 증(贈) 공조참판(工曹參判) 권극립(權克立), 조부는 수직(壽職) 절충호군(折衝護軍) 권봉(權崶)이다. 권목의 아버지는 권구민(權求敏),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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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권사억(權師億)의 본관은 안동. 자는 송서(宋瑞), 호는 만귀(晩歸)이다. 고조는 호군(護軍) 권산보(權山甫)로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로 이주하였으며, 증조는 부호군(副護軍) 권복형(權復衡), 조부는 권사룡(權士龍)이다. 아버지는 권해운(權海運)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驪興 閔氏)로 민우하(閔友夏)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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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내림과 동시에 권씨(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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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교육자. 권오봉(權五鳳)의 본관은 안동. 자는 덕여(德汝), 호는 청민(靑民)이며, 1930년 11월 13일에 태어나 1999년 7월 3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권치일(權致一)이며, 증조는 권준현(權俊鉉), 조부는 권희락(權凞洛)이다. 아버지는 권영구(權寧球)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로 박동률(朴東律)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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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 문인. 권응규(權應奎)의 본관은 안동. 자는 백종(伯宗)이다. 신라 말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는 안동 권씨 후손이다. 1651년(효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을 지낸 권론(權碖)이 고조이고, 증조는 통덕랑(通德郞) 권성(權偗)이며, 조부는 통덕랑 권석(權䄷)이다. 수직(守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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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권응수(權應銖)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의병장으로 많은 공훈을 세워 1604년(선조 37)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으로 책록되어 효충 장의 협력 선무공신(效忠仗義協力宣武功臣)이라 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도총부 도총관이 된 뒤 1606년 경상도방어사, 1608년 남영장(南營將)을 겸하였으나 그해 7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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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권응수(權應銖)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소 앞에 세운 묘표(墓表). 권응수[1546~1608]의 본관은 안동, 호는 백운재(白雲齋)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에 급제한 후 수의부위권지(修義副尉權知)·훈련원부봉사(訓鍊院副奉事)를 지냈으며, 경상좌수사 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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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권응수(權應銖)[1546~1608]의 초상. 권응수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중평(仲平), 호는 백운재(白雲齋)이다. 경상북도 영천 신녕에서 태어났다. 그는 1583년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부봉사를 거쳐 1592년 경상좌수사 박홍(朴泓)[1534~1593]의 막하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향 신녕에서 의병을 모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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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권응심(權應心)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성(仲星), 호는 일성(日省)이며, 1554년(명종 9)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열(權挒)이며 영천 입향조이다. 증조는 증(贈) 호조 참의(戶曹參議) 권처정(權處貞)이며, 조부는 권붕(權鵬)이다. 아버지는 권덕온(權德溫)이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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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권응전(權應銓)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평(子平), 호는 동호(桐湖)이며, 1548년(명종 3) 7월 5일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서 태어나 1606년(선조 39) 10월 6일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열(權挒)이며 영천 입향조이다. 증조는 증(贈) 호조 참의(戶曹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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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권익(權釴)의 본관은 안동. 1643년(인조 21)에 태어나 1689년(숙종 15)에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통사랑(通仕郞) 권덕온(權德溫)이며, 증조는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 권응기(權應箕),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권신립(權信立)이다. 아버지는 권시경(權是經)이며, 어머니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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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성씨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켜 식읍(食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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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서기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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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태용(權泰鏞)은 강제 징집되었으나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권태용은 1920년 지금의 영천시 신녕면 부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 권석중(權錫中)과 어머니 영일 정씨(迎日鄭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권태용은 경성혜화전문학교 재학 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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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의 안동 김씨 입향조.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형부상서(刑部尙書)·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시중(侍中)에 이르고 시호가 충렬(忠烈)인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하고,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민부의랑(民部議郞) 겸 성균직강(成均直講)이 되어,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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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건설된 넓은 길. 도로는 고속 도로와 지방도 등과 관련 시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동서로는 대구와 포항을 연결하고 남북으로는 북부의 영주, 안동과 남부의 경주에 이어 경상남도의 울산과 부산까지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영천시에는 고속 도로 3개 노선[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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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 봉사 단체. 영천 지역 로타리클럽은 국제 로타리[Rotary International]의 모토인 ‘초아(超我)의 봉사’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자원 봉사자 네트워크로, 국제 로타리 3630지구 8지역에 소속되어 있다. 국제 로타리 3630지구는 영천 지역 외에 포항·경주·구미·김천·안동·예천·의성·군위·상주·영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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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권치선(權致宣)과 그 아들 권상현(權象鉉)의 살림집. 권치선의 본관은 안동, 호는 면천(勉川)이며,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고, 아들 권상현[아명 권상현(權尙鉉)]의 호가 면와(勉窩)이다. 마을 개천 건너에는 권치선의 부친인 화남(華南) 권재병(權載秉)[1782~1852, 자 성유(聖裕)]의 살림집인 화남재(華南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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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 있는 구의헌(九宜軒) 권열(權栵)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 권열은 1429년(세종 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持平), 광주 목사(牧使) 등을 지냈다. 모선재(慕先齋)는 가상마을 초입에서 도화원길로 1㎞ 지점에 있다. 모선재 상량문 편액에 ‘숭정기원후사계미2월신미19기미(崇禎紀元後四癸未二月辛未十九己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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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문에 뛰어난 사람. 영천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이후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배출된 고장으로, 특히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1. 조선 전기 조선 초기 영천으로 유배를 온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이 팔공산(八公山) 아래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여, 대전(大田) 이보흠(李甫欽)과 경재(警齋) 곽순(郭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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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朴仁老)[1561~1642]는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가사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 무인 겸 문인가객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다. 그의 생애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초반에는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고, 후반에는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했던 선비와 문인 가객으로서의 면모가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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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고대 변한어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 방언. 영천 방언은 삼한어(三韓語)의 중심인 변한어(弁韓語)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데, 조선에 들어서서 대구~경주~포항과 군위~의성~청송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독특한 영천 방언을 형성하고 있으나 크게는 대구-경주 방언권에 속한다. 영천 방언의 역사적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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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와 부산리 경계에 있는 고개. 봉화(烽火)재는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에서 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수리령 또는 여음고개라고도 불린다. 봉화재의 높이는 200m 정도이며, 지방도 919호선이 지나고 있다. 봉화재는 옛날에 서울로 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고개로, 서울을 출발한 조선 시대 통신사들이 안동과 의성·의흥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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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부리(三釜里)는 지형이 가마솥처럼 산에 둘러싸여 있고 세 길이 나 있어서 삼부제(三釜堤)라 불린데서 지금의 명칭이 유래되었다. 삼부리는 토지가 비옥하고 큰 평야에서 약간 외진 곳이라서 예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가암못안·삼부제는 가암못[釜池] 안에 위치하여 5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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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인인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이 영천시를 관통하는 금호강 일대의 구곡원림(九谷園林)을 노래한 한시. 성고구곡을 조성한 이형상[1653~1733]은 1700년 경주부윤을 사직한 후 금호강 가에 호연정(浩然亭)을 짓고 영천에서 은거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이후에도 벼슬살이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을 영천에 살면서 학문 연구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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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과 문자 등의 수단. 또는 사회 관습적 체계. 영천 지역의 언어는 삼한어(三韓語)의 중심인 변한어(弁韓語)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지역의 언어권에 속하며, 영남[동남]의 언어권 가운데 대구 지역의 언어권[천시권, 1966]인 대구·영천·경주·포항·영덕·영양 지역의 언어권에 속한다.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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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역사적으로 도로를 따라 발달한 마필 공급 및 숙식을 제공하던 장소. 역원(驛院)은 역사적으로 주요 역에 설치하였던 여관 시설을 가리킨다. 삼국 시대 교통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지리지에 5통문(通門)과 5문역(門驛)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 중 5통문의 하나인 염지통(鹽池通)은 경주의 정북방을 나타내는 감문역(坎門驛)에서 출발하여 골화소국(骨火小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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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는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350㎞ 지점에 위치하고,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 하고 있다. 또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는 경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다. 역사적으로는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및 봉수대(烽燧臺)와 연관이 있었고, 시장 및 교통망의 중심지로 대변되는 영천의 역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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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 후 장진홍(張鎭弘)이 제2차 계획으로 추진한 영천경찰서 폭탄 거사. 1927년 10월 18일 정오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장진홍이 대구의 일제기관 4개소를 폭파할 목적으로 배달시킨 점화식 폭탄 4개 중 3개가 폭발하여 경관 4명이 중경상을 입고 은행 창문 70여 개가 파손되었다. 그 후 장진홍은 안동과 영천에서도 폭탄 거사를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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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의 의례 음식인 염장(鹽藏)된 상어고기. 영천 돔배기는 상어고기를 가리키는데, 이 상어고기를 ‘돔박 돔박’ 네모나게 토막 내어 썰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돔배기는 경상도 일대에서만 유통되고 소비되는 의례 음식으로서 전국 최대 판매처는 영천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영천에서 주로 판매되는 상어고기는 양제기[제수 용으로 좋다는 뜻]와 모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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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노동에 있는 종합 버스 터미널. 영천 버스 터미널에서는 1일 5회 서울을 왕복하는 고속버스와 부산·경주·울산·포항·의성·안동·구미·김천·대구 등 각 방면으로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또한 2010년 3월 2일부터 휴게소에서 고속버스를 갈아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고속버스 환승제가 확대 시행되고 있다. 영천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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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 7월 26일부터 7월 28일까지 영천 지역 의병들이 영천성을 탈환하기 위해 왜군과 싸운 전투. 영천복성 전투는 1592년(선조 25) 4월 22일 왜군에게 영천성이 점령당하자 영천 지역 의병이 중심이 되어 인근 의병들과 연합하여 성을 탈환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의병이 승리를 거둔 중요한 전투로 꼽히며, ‘영천복성 전투’ 또는 ‘영천성 복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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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큰장[영천시장]에는 돔배기를 파는 상가들이 운집한 골목이 있다. 돔배기는 전국에서 경상북도 영천·안동·의성·예천·경산 지역에서 주로 판매하고 있으며, 특히 영천의 돔배기가 유명하다. ‘돔배기’란 상어고기로, ‘토막고기’를 뜻하는 경상북도 지역의 사투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돔배기’는 상어고기로 만든다. 상어를 토막 내 소금에 절인 것으로서 경상북도 지역의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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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도시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한방의 과학화, 한방의 산업화 그리고 한방의 대중화를 위하여 새로운 한방문화의 진수를 선보이고자 매년 개최하는 축제. ‘건강한 삶, 장수의 꿈! 영천한약장수축제와 함께!’ 라는 슬로건의 ‘영천 한약 장수 축제’는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고, 가져가는 풍성한 축제를 지향하고 있다. 사상체질, 한방김치, 족욕, 방향제 만들기 등 각종 체험을 통하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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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에 있는 고려 말 부사 이용(李容)이 건립한 관속 누각. 조양각(朝陽閣)은 서세루(瑞世樓)라고도 하며, 고려 말에 명원루(明遠樓)로 창건되어 여러 차례 시대의 변란에도 지금까지 우뚝 서있는 영천을 상징하는 유적이다. 조양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누각으로 손꼽히는 경상남도 밀양의 영남루·진주의 촉석루 등과 함께 영남 3루라고도 전하며,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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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2월부터 1896년 1월 사이에 영천을 포함한 경상도 각 군현의 향교를 중심으로 돌았던 의병 문서. 「의병격문통문(義兵檄文通文)」은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각 의병진에서 창의 격문(檄文)이나 통유문(通諭文)을 각처로 보내어 의병을 일으킬 것을 독려한 의병문서이다. 의병들이 봉기했을 당시 각지 향교를 중심으로 돌았던 의병 문서 다섯 건이 현재 경상북도 4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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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한말 국권 회복을 위한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무력 투쟁. 의병 항쟁(義兵抗爭)은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기 전에 스스로 일어난 민군(民軍)의 무력 투쟁을 말한다.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의병은 민군이다. 나라가 위급하면 바로 의병이 일어나는데 조정이 명령하는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적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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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경주 이씨의 시조는 알천양산촌장 이알평(李謁平)이며,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이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 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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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다. 또한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가 동서로 뻗쳐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익산포항고속도로를 비롯하여 국도와 지방도 등이 통과하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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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응(孫凝)을 시조로 하고 손진충(孫盡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일직(一直) 손씨는 안동(安東) 손씨라고도 하며, 선계(先系)는 고려 초 중국 송(宋)나라 개국 2대 위(魏)왕, 3대 기(冀)왕 때 황제(皇帝) 등극을 두고 내란이 일어나 왕족과 귀족 세력이 고려로 망명·귀화하여 온 손응(孫凝)을 시조로 하고 있다. 원래 성은 순(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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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임고 서원에 소장된 전적. 임고 서원은 고려 말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주향한 서원으로, 1553년(명종 8)에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건립되었다. 이에 앞서 이황(李滉)[1501~1570]은 1550년(명종 5) 백운동 서원[소수 서원]의 사액 운동을 후원했다. 백운동 서원은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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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북도 영천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에 도착한 왜군은 경상도 지역 주요 고을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영천성은 1592년 4월 22일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영천·신녕 지역의 의병들은 인근 지역의 의병들이 연합하여 각처에서 소규모의 유격전을 전개하여 승전하였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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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경동노회에 소속된 교회 자천교회(慈川敎會)는 대한제국 말 개신교가 전래된 이래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역사성 있는 교회이다. 특히 남녀석을 구분한 전통적인 한옥 예배당은 교회사뿐만 아니라 건축사·문화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어 현재 총회사적지 제2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2호, 한국 교회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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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는 묘소나 사묘 옆에 지은 집. 재사(齋舍)는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墓所)나 사묘(祠廟) 옆에 지은 집을 말하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고, 1년에 한 번 이상 자손들이 모여서 제사 지내는 곳이라 하여 재숙소(齋宿所)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재실은 묘제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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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고상필(高尙弼)을 입향조로 하여 세거하는 성씨. 제주 고씨(濟州高氏)는 제주도 탐라왕국 고을나왕(髙乙那王)을 시조로 하고, 고말로(髙末老)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제주 삼성사(三姓祠)을 비롯한 각 파조 신위를 봉안한 사묘와 서원이 경향 각지에 36개소가 있다. 고씨의 본관은 문헌에 제주를 비롯하여 장흥(長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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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조상환(曺相煥)은 의병 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도포장으로 활약하였다. 조상환(曺相煥)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석보(石甫)이며, 1866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거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병전(曺秉銓)과 어머니 경주 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조상환은 1906년 3월 정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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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천군과 신녕현은 경상도 소속으로 별개의 지방 행정 단위로 존속하다가 일제 강점기 때 영천군으로 통합된 이래 현재 영천시 행정구역과 큰 변동 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왕조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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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조선 국왕의 명의로 일본 막부 장군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 사절단. 1428년(세종 10) 일본 막부 장군 습직(襲職) 축하로부터 시작된 조선통신사는 1811년(순조 11) 대마도에서 국서를 교환한 역지통신(易地通信)이 행해질 때까지 총 20회 이어진 외교 사절단이었다. 서울에서 목적지까지 5개월에서 8개월이 소요되는 조선통신사의 긴 노정은 단순히 정치·외교적 의미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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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를 거쳐 서울과 경주를 연결하는 철도. 중앙선은 서울특별시에서 시작하여 영천시를 지나 경상북도 경주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중부 내륙 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노선이며, 총연장은 383.0㎞이다. 남부의 영천~우보 간 40.1㎞는 1938년 2월에 개통되었다 중앙선은 경부선에 이어 우리나라 제2의 종관 철도로서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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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永川)은 고려 말의 학자이자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지역이다. 1368년(고려 공민왕 17) 당시 부사(副使)였던 이용(李容)이 정몽주와 함께 남천의 절벽 위에 지은 건물인 조양각(朝陽閣)과 일편단심 충절을 지킨 정몽주의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고자 세운 임고 서원(臨皐書院)이 있는 곳이다. 1. 정몽주의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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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송리(下松里)는 국화가 만발하여 국실(菊室)·국골[菊谷]이라 칭하다가 마을 산에 소나무[松]가 많고 산 아래 있다 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하송(下松)으로 개칭하였다. 하송리는 약 450여 년 전에 강씨가 정착하면서, 비옥한 토지에 국화(菊花)가 만발하여 그 향기가 인근에 퍼지게 되어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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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호연사 유허지에 있는 비와 비각. 호연사(虎淵祠)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안증(安嶒)[1494~1553]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었다. 광주 안씨(廣州 安氏)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인 안증의 자는 사겸(士謙), 호는 완귀(玩龜)이다. 안증은 아버지가 김종직의 문인이었기에 김종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벼슬에는 뜻이 없고 학문에만 심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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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화남리에 있는 산성. 화남리 산성은 영천시 신령면 화남리 해발 559.2m의 혈암산(穴岩山)에 있다. 성의 축조 시기와 경영, 폐성(廢城) 시점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성내에서 삼국 시대 토기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의 신라성으로 판단되며 신라의 북방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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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화북면(華北面)은 193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화동면(華東面)의 4개 동과 지곡면의 8개 동, 신촌면의 12개 동을 병합하여 만들었다. 당시 화북면이 영천군의 북부(北部)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화북면은 영천군의 북부 지역에 있었던 명산면의 일부와 자천면의 전부, 그리고 신녕군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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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유성리에 있는 중앙선의 철도역. 화산역(花山驛)은 중앙선에 있는 역으로, 청량리 기점 327.2㎞ 떨어져 있으며 화산역에서 신녕역까지는 6.4㎞, 북영천역까지는 8.1㎞ 떨어져 있다. 화산역은 중앙선에 있는 역으로, 1938년 12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는데, 영업을 시작할 당시 역명은 ‘경북 화산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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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인인 정만양(鄭萬陽)과 정규양(鄭葵陽)이 화북면 횡계리 일대의 구곡원림(九谷園林)을 노래한 한시. 횡계에 구곡원림을 조성한 정만양[1664~1730]과 정규양[1667~1732] 형제는 당시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서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고 자연 속에 묻혀 살면서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영천시 대전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