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을 준비하여 제공해 주는 것으로, 사람에 의해 점유되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활동이 포함된다. 특히 한 지역의 건축 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활동의 프로세스를 반영한다. 따라서 영천 지역의 건축 형태 및 성격은 기후와 지리, 산출 재료 등...
-
경상북도 영천시의 초기 국가 시대부터 신라 멸망까지의 역사. 영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소국인 골벌국(骨伐國)을 형성하였다가 신라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교통과 군사의 요지로서 중요시되면서 발전하여 왔다. 1. 선사 영천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자취는 이 지역에 산재한 많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산면 연계리와 금호읍 어은리 등에서 발견된...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신라 말기로 가면서 정치가 혼란해지자 지방에서는 호족 세력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농민 봉기를 배경으로 각처에서 일어나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자기들의 근거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보유하면서 스스로 성주(城主) 또는 장군(將軍)이라 칭하면서, 그 지방에 대한 행정권과 군사권, 그리고...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신라 말기의 행정구역. 고울부(高鬱府)는 절야화군(切也火郡) 혹은 임고군(臨皐郡)으로 불리던 영천 지역이 신라 말기에 명칭이 개칭된 지역이다. 절야화군[임고군]이 고울부로 개칭된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925년(고려 태조 8) 10월 고울부 장군 능문(能文)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에 투항하였다든가 927년(태조 10) 9...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지리(庫旨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고말 또는 고지리에서 나온 명칭으로, 980년(고려 경종 5)경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형상이 창고형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지리는 본래 영천군 비소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계동, 팔암동 일부와 경주군 서면 상추리 일부를 병합하여 영천군 북...
-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치산리에 있는 산성. 공산성은 팔공산의 동봉과 서봉을 포함하는 곳에 있다. 공산성의 축조 시기와 경영, 폐성(廢城) 시점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각축장을 벌였던 곳이라는 사실 등을 미루어 볼 때 통일 신라 시대 이전에 축성되었던 것으로...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치산 계곡의 중턱에 위치한 폭포. 공산 폭포(公山瀑布)는 1980년 대구시가 경상북도와 분리될 때 팔공산(八公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산 폭포로 표기가 통일되었다. 그러나 폭포 인근 지역인 대구에서는 팔공산에 있다 하여 팔공 폭포라 부르며, 영천에서는 신녕면 치산리 치산 계곡의 지명을 붙여 치산 폭포라 부르고 있다....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현풍 곽씨(玄風 郭氏)는 중국 송나라 관서(關西) 홍농(弘農) 출신으로 고려 인종[1122~1146] 때 한국에 들어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내고 금자광록대부로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진 곽경(郭鏡)을 시조로 하고 있다. 곽순(郭珣)의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1502년(연산군 8) 10...
-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하고 안증(安嶒)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광주 안씨(廣州安氏)는 고려 태조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이후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안방걸을 시조로 하며, 영천 입향조는 중종 때 사서(司書)·설서(說書)를 지낸 안증이다. 인종이 세자 시절, 시강원의 사서(司書)·설서(說書)로 있던 안증은 병약한...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있는 강릉 유씨(江陵劉氏) 시조의 묘하(墓下) 재사(齋舍). 구인재는 1800년대 초기에 유홍렬(劉洪烈)이 선산군 인동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유씨(劉氏)는 영천 지역에서는 묘금도(卯金刀) 유씨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의 행정 구역인 녹전동의 석동·비석동·비석골이란 지명 또한 유씨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호국(護國)에 관한 사실. 영천은 일찍이 고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국난 극복의 보루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영천이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영천인들의 국난 극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호국 여신(女神)...
-
영천의 안동 김씨 입향조.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형부상서(刑部尙書)·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시중(侍中)에 이르고 시호가 충렬(忠烈)인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하고,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민부의랑(民部議郞) 겸 성균직강(成均直講)이 되어,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성리...
-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소설가 백신애의 대표 소설. 1933년 『신여성』 1~2월호에 「ㅅ거래이」로 발표했다가 10월에 「꺼래이」로 개작 발표한 백신애의 단편소설이다. 백신애는 1908년 5월 20일 영천군 창구동 68번지에서 출생했다. 1923년 경북사범학교 강습과에 입학하고 다음해 졸업 한 후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29년 단편소설 「나의 어머니」가 『조...
-
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하고,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며, 정몽길(丁夢吉)과 정몽상(丁夢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압해가 나주에 소속되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집.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서 정루(亭樓)·정각(亭閣)·정사(亭榭) 라고도 부른다. 평면구조는 정사각형으로부터 직사각형·육각형·팔각형·자 형·부채 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직사각형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널리 보편화...
-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고 구규징(具規徵)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고려 광종(光宗)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역임한 구존유를 시조로 하는 능주 구씨(綾州具氏)는 7세에 이르러 11개 파로 분파되었다. 영천 지역에 세거하는 능주 구씨는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로 파조는 고려 공...
-
고려 말기 영천 출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지은 시조.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고려 왕조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의 속마음을 떠보고 회유하기 위하여 술자리에서 「하여가(何如歌)」를 부르자, 그에 대한 답변으로 즉석에서 지어 불렀다는 노래다. 정몽주가 이방원의 심복인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피살을 당하게...
-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고 서도(徐渡)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달성 서씨(達城徐氏) 영천 입향조는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서도로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을 시조로 한다. 서도는 1465년(세조 11)에 문과에 급제 후 벼슬이 무공랑(務功郞) 성균관학유에 이르렀으나 중앙정치에 염증을 느...
-
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도동화현(刀冬火縣)은 절야화군(切也火郡)을 구성하는 다섯 개 영현의 하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도동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776년(혜공왕 12) 정월에 원래의 지명인 도동화현으로 환원된 듯하다. 이후에는 도동화현과 도동...
-
성주 도씨(星州 都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 입향조. 성주 도씨(星州 都氏)는 고려 명종 때 전리상서(典理尙書)를 역임한 도순(都順)을 시조로 하고 승지(承旨) 도여필(都汝弼)을 파조(派祖)로 하는 성주 도씨(星州 都氏) 승지공파(承旨公派) 후예이다. 도이유(都以兪)의 본관은 성주. 자는 화중(和仲), 호는 경암(敬巖)이다. 고조는...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류근회(柳根晦)는 고려 개국공신 류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는 문화 류씨(文化柳氏)의 9세손으로, 1252년(고려 고종 39)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자광록대부(僉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진 류성간(柳成澗)을 시조로 하는 서산 류씨(瑞山柳氏)로 분관(分貫)되었다. 류근...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고려 시대 문신 이중영(李仲榮)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 영천 이씨(永川李氏) 중시조(中始祖) 이중영은 원나라에서 봉승랑(奉承郞) 겸 권농방어사(勸農防禦使)를 지냈고 고려에서 지울주사(知蔚州事)가 되고 울산군(鬱山君)에 봉해졌다. 모원당(慕遠堂)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 342번지 동산마을에 있다. 매...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나무에 글을 새긴 인쇄용 판. 목판은 주로 사찰과 서원, 문중(門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집 간행에 필요한 인쇄용 판을 말한다. 영천 지역에서는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고 조선 왕조가 숭유정책을 취하면서 일찍부터 유가적 문풍(文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1. 고려 시대 여말 선초 영천 지역의 유풍(儒風) 진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
경상북도 영천시의 문화 활동에 대한 소산으로서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형 무형의 자산. 문화재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예술·과학·종교·도덕·법률·경제·민속·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 가치를 이루어 온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에서 문화재를 역사상·예술상·학술상·관상상(觀賞上) 가치가 큰 것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정의하고 있다...
-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元祖)로 하고,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며, 박영손(朴英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
-
조선 전기 월성 박씨(月城朴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 월성 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8남으로 월성대군(月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의(朴彦儀)를 시조로 하는 인재공파(忍齋公派) 파조이다. 박석문(朴碩文)의 호는 인재(忍齋)이며, 고조는 고려 중직대부(中直大夫) 예조전서(禮曹典書) 박유(朴瑜)이며, 증조는 고려 중군사정부령(中軍司正副令) 박구(朴龜), 조부는 조선...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녹훈되...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밀양 박씨(密陽 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조선 후기 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조선 중기 구산 박씨(龜山朴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 입향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44세손 구산군(龜山君) 박석보(朴碩輔)를 시조로 하는 구산 박씨 후예이다. 박후(朴 土+厚)의 고조는 고려(高麗)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박광후(朴光厚)이며, 증조는 구산군 박석보[초휘 박천(朴蕆)], 조부는 안동판관(安東判官) 박인해(朴仁海)이다. 아버지는 박원의(...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반계리(磻溪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반계’에서 나온 명칭이다. 980년(고려 경종 5)대 마을 개척 당시 맑은 냇물이 둘러 흐르고, 넓은 들 및 아름다운 주위 경관과 조화된 반석(磐石)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정도로 뛰어나 ‘반석’의 음을 따서 반계(磻溪)라 칭하였다 한다. 반계리는 본래 영천군 원당...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고대 변한어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 방언. 영천 방언은 삼한어(三韓語)의 중심인 변한어(弁韓語)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데, 조선에 들어서서 대구~경주~포항과 군위~의성~청송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독특한 영천 방언을 형성하고 있으나 크게는 대구-경주 방언권에 속한다. 영천 방언의 역사적 흔...
-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고 이배원(李培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벽진 이씨(碧珍李氏)의 시조는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忩言)이다. 이총언은 858년(신라 헌안왕 2)에 태어나 938년(고려 태조 21) 81세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성주군 서쪽 명암방(明巖坊) 수촌(樹村) 태극봉 아래에 있었다고 하여 심혈...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사원(寺院)·가람(伽藍)이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영천의 사찰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창건된 것은 은해사(銀海寺) 소속의 거조암(居祖庵)이다. 1. 삼국 시...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있는 창녕 조씨 재사(齋舍). 사효재는 고려 우왕 때 급제하여 희천 군수로 봉직하였고, 조선에서는 강계도 좌익병마사로 제수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절의로 영천으로 은둔한 조신충(曺信忠)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사효재는 영천시 금호읍에서 대창 방면 지방도로 909번에서 동쪽으로 500여m 가...
-
선원마을은 조선 인조 때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1535~1612]의 장손인 정호례(鄭好禮)[1604~1672]가 입향해 세거한 영천의 대표적인 동족마을로,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지역이다. 선원마을은 자호천과 선원천을 곁에 두고 그 뒤로 해발 200m 내외의 학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주변 산수가 너무 아름다워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경택(徐景澤)의 본관은 달성. 자는 자윤(子潤), 호는 괴헌(槐軒)이다.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의 후손이다. 영천 입향조는 서경택의 5대조인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서도(徐渡)이다. 고조는 창녕 훈도(昌寧訓導) 서숙원(徐叔元)이며, 증...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무인. 달성 서씨는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한다. 달성 서씨의 영천 입향조는 서경함의 5대조인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서도(徐渡)이다. 서경함(徐景涵)의 자는 자영(子泳), 1578년(선조 11년)에 태어났다. 고조는 창녕훈도(昌寧訓導) 서숙원(徐叔元)이며, 증조...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근대 공립 교육 기관이 설립되기 전 초등 교육을 담당했던 사설 교육 기관.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보편화된 교육 기관이었던 서당은 민간 사설 교육 기관으로 오늘날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서당의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 기관이다. 서당의 사회적 의...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루(徐婁)는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의 후손이다. 영천 입향조는 서루의 10대조로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를 지낸 서도(徐渡)이다. 서루의 초명(初名)은 서필항(徐必恒), 자는 구지(久之)이며, 1725년(영조 원년)에 태어나...
-
유차달(柳車達)을 비조(鼻祖)로 하고, 유성간(柳成澗)을 득관조(得官祖)로 하며, 유방선(柳方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을 시조로 하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의 9세손으로 1252년 고려 고종 임자년(壬子年)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자광록대부(僉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숙원(徐叔元)의 본관은 달성. 자는 공계(公季), 호는 채운(採雲)이다.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봉정대부(奉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정평(貞平)의 시호를 받은 서균형(徐鈞衡)으로 시조 서진의 증손이다. 증조는...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용원(徐勇元)의 본관은 달성. 자는 공의(公義)이다.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봉정대부(奉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정평(貞平)의 시호를 받은 서균형(徐鈞衡)이니 시조 서진의 증손이다. 증조는 귀계(龜溪) 서...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서원위(徐元衛)의 자는 사유(士由)이며,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의 후손이다. 달성 서씨 영천 입향조는 서원위의 8대조로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를 지낸 서도(徐渡)이다. 서원위의 고조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서일(徐逸)이며, 증조는 용양...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익후(徐翼後)의 본관은 달성. 자는 익지(翼地)이다.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후손이다. 달성 서씨 영천 입향조는 서익후의 7대조로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를 지낸 서도(徐渡)이다. 고조는 참봉(參奉) 서희복(徐希福)이며, 증조는 군...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서일(徐逸)의 본관은 달성. 자는 천민(天民)이다.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서도(徐渡)로서 영천 입향조이며, 증조는 창녕훈도(昌寧訓導) 서숙원(徐叔元), 조부는 증(贈) 형조참의(刑曹參議)...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희록(徐希祿)은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승사랑(丞仕郞) 광흥창(廣興倉) 부승(副丞) 서문한(徐文翰), 증조는 영천 입향조인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서도(徐渡)이다. 조부는 창녕훈도(昌寧訓導) 서숙원(徐叔元)이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서희복(徐希福)은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군된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후손이다. 고조는 승사랑(丞仕郞) 광흥창(廣興倉) 부승(副丞) 서문한(徐文翰), 증조는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서도(徐渡)이니 영천 입향조이며, 조부는 창녕훈도(昌寧訓導) 서숙원(徐叔元)이다...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만든 군사적인 방어 시설물. 성(城)의 사전적 의미는 ‘적을 막기 위하여 높이 쌓은 담’이며, 한자의 자의(字義)는 흙[土]으로 마련한[成] 시설물임을 뜻한다. 또한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전부 일컫는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성과 외성을 구분하여 축조하거나 뚜렷이 구분하지 않았다....
-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고 이방(李芳)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성산 이씨(星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인 이능일(李能一)이다. 그는 신라 말기에 성산현(星山縣)[지금의 성주군] 일대를 통치하던 호족이었는데 12년간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큰 공훈을 세웠다. 고려가 건국된 후 태조 왕건의 딸인 정순궁주(淨...
-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고 안종신(安從信)을 파조로 하며 안우곤(安遇坤)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성씨. 순흥 안씨(順興 安氏)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손자 판도판서(版圖判書) 안부(安孚)와 증손 안향(安珦)의 귀함(貴函)[상대를 높여 그의 편지를 이르는 말]으로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
-
경상북도 영천 출신 시조 시인들이 지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시조(時調)는 고려 말엽에 발생하여 조선 시대를 거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고, 현재도 많은 시인들에 의하여 창작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 시가다. 우리나라 문학사에는 향가·고려가요·가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 시가 갈래들이 다채롭게 등장했으나,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러한...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으며, 8세(世)...
-
영천의 평산 신씨(平山申氏) 입향조. 신여주(申汝珠)는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하고,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로 시호가 사간(思簡)인 신호(申浩)를 파조로 하는 평산 신씨(平山 申氏) 사간공파(思簡公派) 후예이다. 신여주의 자는 내여(乃汝), 호는 운계(雲溪)이며, 1624년(인조 2)에 태어났다. 고조는 상의원주부(...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으로,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영산 신씨(靈山 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8세(世)...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으며,...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충신. 영산 신씨(靈山 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金紫光錄大夫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8세...
-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열(權挒)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의 세거 성씨.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본래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워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안영중(安榮重)의 처 열녀 월성 손씨(月城 孫氏)는 손성도(孫星度)의 딸로 1786년(정조 10)에 태어났으며, 1814년(순조 14) 9월 24일 2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안영중은 고려의 매염진국장군(梅塩鎭國將軍)이며 광릉군(廣陵君)인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하는 광주 안씨(廣州 安氏)로 좌랑(佐郞) 안증(安嶒)이...
-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손자 판도판서(版圖判書) 안부(安孚)와 증손 안향(安珦)의 귀함으로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의 상계는 알 수 없으며, 당시 흥녕(興寧)[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손자 판도판서(版圖判書) 안부(安孚)와 증손 안향(安珦)의 귀함으로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의 상계는 알 수 없으며, 당시 흥녕(興寧)[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살게 된 후 후손들이...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의 팔공산 남동 방향에 있는 폭포. 안흥 폭포(安興瀑布)는 1186년(고려 명종 16) 기성대사(箕聖大師)가 기기암(寄寄庵)에 기거하면서 몸은 비록 사바세계에 있으나 마음은 극락에 있다고 한 데서 유래해 ‘기기암 폭포’라고도 하는데, 기기암의 옛 이름이 안흥사(安興寺)여서 안흥 폭포라 불린다. 안흥 폭포는 영천시 청통면 팔공산(...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청주 양씨(淸州楊氏)의 시조인 양기(楊起)는 공민왕(恭愍王)이 북경에 머무르다가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1351년(고려 충정왕 3)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함께 귀국할 때 노빈도령(魯嬪都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체찰사(軆察使) 노국삼명사신(魯國三命使臣)으로 고려로 들어왔다. 후에 고려에 귀화하니 벽상삼한창국공신(壁上三韓昌...
-
이천일(李天一)을 원조(遠祖)로 하고 이백령(李栢齡)을 시조로 하며 이성(李晟)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고려 충렬왕 때에 이백령이 삼중문하찬성사(三重門下贊成事)를 지내고 왕명으로 중국에 갔을 때, 지은 시가 널리 회자되어 황제가 황금과 비단·말 등 상품을 하사하였으며, 귀국 후 임금이 위로하여 양산군(陽山君)에 봉하고 시호를 충민(忠...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과 문자 등의 수단. 또는 사회 관습적 체계. 영천 지역의 언어는 삼한어(三韓語)의 중심인 변한어(弁韓語)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지역의 언어권에 속하며, 영남[동남]의 언어권 가운데 대구 지역의 언어권[천시권, 1966]인 대구·영천·경주·포항·영덕·영양 지역의 언어권에 속한다. 삼...
-
영천시는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350㎞ 지점에 위치하고,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 하고 있다. 또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는 경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다. 역사적으로는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및 봉수대(烽燧臺)와 연관이 있었고, 시장 및 교통망의 중심지로 대변되는 영천의 역할과...
-
신경(辛鏡)을 시조로 하고, 신혁(辛革)을 파조로 하며, 신언륜(辛彦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
-
1935년 정형식(鄭瑩植)이 편찬하고 영천향교(永川鄕校)에서 간행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읍지. 『영양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문묘(文廟)와 관련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향안(鄕案)이며, 맨 마지막에는 간기(刊記)가 실려 있다. 읍지의 가장 첫 부분은 문묘위차(文廟位次)로, 그것은 다시 대성전(大成殿)·동배위(東配位)·서배위(西配位)·동종향(東從...
-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정광후(鄭光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한 정광후(鄭光厚)가 영천 지역에 입향하였다. 정광후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후 가선대부(嘉善大夫...
-
925년부터 14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신라 때의 임고군은 군치와 장진현(長鎭縣)·임천현(臨川縣)·도동현(道同縣)·신녕현(新寧縣)·민백현(黽白縣)의 다섯 개 현을 영현으로 하였는데, 이 중 임고군 군치와 도동현, 임천현이 합하여 고려 초기에 영주(永州)가 되었다. 임고군 군치와 도동현, 임천현 등 인근 군현을 합해 영주로 만든 것은 925년(...
-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10월 중순~11월 상순에 재배되는 배나무의 열매. 영천은 비가 적고 맑은 날이 많아 과수재배의 적지이다. 특히, 삼호배가 영천배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재배 기술이 뛰어나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금호강 상류지역인 영천은 강 주변에서 부터 과수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맑은 물과 토양오염이 없는 사질양토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생산한 과실주. 와인은 잘 익은 포도의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 음료로 어원은 라틴어 Vinum(비눔: 포도를 발효시킨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영어로는 와인(Wine), 프랑스어로는 Vin(뱅), 이탈리아어로는 Vino(비노), 독일어로 Wein(바인)이라고 한다. 사과·복숭아·라즈베리 등 다른 과실을 발효하여 만든 와인은 그 과실...
-
경상북도 영천을 관향으로 하며,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는 성씨. 영천 이씨(永川李氏)는 알평공계(謁平公系) 이씨에서 분종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문헌상 기록을 찾지 못하여, 고려 초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울군(高鬱君)[영천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이문한을 시조로 하여 10개 파로 나누어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분파를 살펴보면 서승공파(署丞...
-
경상북도 영천을 관향으로 하며,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는 성씨. 최씨(崔氏)의 원조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로 전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어 신라 말에서 고려 중엽의 인물을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 계통이 자세하게 전하는 본으로는 경주(慶州)·전주(全州)·해주(海...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관향으로 하며, 황보능장(皇甫能長)을 시조로 하는 성씨.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시조인 황보능장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창업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금강성장군(金剛城將軍)으로, 신라에 쳐들어간 후백제의 군사를 고울부(高鬱府)에서 격파하는 등 공을 세워 영주군(永州君)[현 영천(永川)]에 봉해지고, 영천 일대를 식읍으로 받아 그 후손들...
-
전영령(全永齡)을 시조로 하고 전성천(全聖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옥산 전씨(玉山全氏)의 시조 전영령은 도시조(都始祖) 전섭(全聶)의 27세손으로 고려 신종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玉山君)[지금의 경산]에 봉해졌기에, 후손들이 정선 전씨(旌善全氏)에서 분적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옥산 전씨 영천 지...
-
이길권(李吉卷)을 시조로 하고, 이숭검(李崇儉)을 파조로 하며, 이성남(李成男)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용인 이씨(龍仁李氏)의 시조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구성백(駒城伯)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태사(太師)에 봉해지고, 고려 태조의 부마가 된 이길권이다. 후에 구성(駒城)이 용인(龍仁)으로 개칭되어 용인을 관향으...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유배 온 문인. 유방선(柳方善)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이다. 유방선의 고조는 태상경(太常卿) 유성계(柳成桂)이며, 증조는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서녕군(瑞寧君)으로 봉해진 유숙(柳淑)이다. 조부는 관찰사(觀察使) 유후(柳厚)이고, 부친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태종 때 관찰사(觀察使)를...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한다. 유성간(柳成澗)은 문화 유씨 9세손으로 1252년(고려 고종 39)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자광록대부(僉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졌다. 유성간으로부터 서산 유씨(瑞山柳氏)로 분관(分貫)되었다. 유윤겸...
-
경상북도 영천시에 시조공 묘소가 있는 유(劉)씨의 시조. 유전(劉荃)의 자는 원보(原甫), 호는 죽간(竹諫), 시호는 문양(文襄)이며, 한(漢)나라 태상황(太上皇)의 후손으로 1051년 4월 8일 중국 강소성(江蘇省)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한림(翰林)을 지낸 유종(劉宗)이며, 조부는 이부상서(吏部尙書) 유적(劉迪), 부친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유채(劉采...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유하리(柳下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유하[아래버드재]에서 나온 명칭으로, 990년(고려 성종 9)대에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당시 마을 위에 버드나무 숲이 많았고 버드나무 숲 아래 마을이 있다고 하여 ‘유하’란 이름이 유래하였다. 유하리는 본래 경주부 북안면의 지역이나 1895년 흥해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
-
조선 중기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 입향조.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건국의 공으로 벽상삼한익찬공신 2등 삼중대광 태사에 이르고, 서기 943년 태조 왕건이 승하하고 혜종이 즉위한 후 신라 수도였던 동경[경주] 대도독으로 부임한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한다. 윤세강(尹世岡)의 자는 언남(彦南), 호는...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관향(貫鄕)으로 하는 신녕 윤씨(新寧 尹氏) 시조. 신녕 윤씨는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尹莘達)의 7세손 윤인직(尹仁直)이 득관조(得貫祖)이다. 윤인직은 고려 명종 때 동북병마사로서 서경(西京)의 난을 진압해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윤자임(尹自任)의 본관은 신녕. 자는 충부(忠父)이다. 고조는 윤인직의 현손으로 통헌대부(通憲...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팔공산 내 진불암 초입에 있는 부조상. 수도사에서 2km 가량 올라가면 진불암이 있다. 진불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혼수(混修)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보각국사(普覺國師) 환암혼수(幻庵混修)[1320~1392]인지는 알 수 없다. 1637년(인조 15) 이응...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은해사 진불암의 인법당에 봉안하였던 후불탱화. 진불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혼수(混修)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보각국사(普覺國師) 환암혼수(幻庵混修)[1320~1392]인지는 알 수 없다. 1637년(인조 15) 이응선(李應善)이 중창하였으며, 1920년 석...
-
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이감의 자는 의민(義民), 호는 문한당(文閒堂)으로 1380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유배생활을 하다가 만년에 고향에 은거하였고, 양친이 돌아가시자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묘소를 돌보며 3년을 여막에서 보냈다. 이감(李敢)[1...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이국빈(李國賓)의 자는 여관(汝觀), 호는 국헌(菊軒)이며, 1560년(명종 15)에 태어나 1624년(인조 2)에 세상을 떠났다.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로, 고조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이석보(李錫保), 증조는 영천으로 이주한 참봉(參奉) 이방(李芳)이며, 조부는 영릉 참봉(...
-
경상북도 영천시에 시조공 묘소가 있는 광주 이씨의 시조. 이당(李唐)은 광주 이씨(廣州李氏)의 시조이다. 처는 인화 이씨(仁華李氏)로 슬하에 5남을 두니 이봉(李逢)·이집(李集)·이희령(李希齡)·이자령(李自齡)·이성(李省)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얻었다. 광주 이씨의 분파를 보면, 둔촌(遁村) 이집(李集)[리원령(李元齡)]을 1세조로 하는...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시조는 알천양산촌장 이알평(李謁平)이며,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이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
-
성주 이씨(星州 李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시조는 신라 말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이순유(李純由)이며, 중시조는 11대손으로 고려 고종 때의 인물인 이장경(李長庚)이다. 강양군(江陽君) 이약(李若)이 성주 고을에 부임하여 이장경의 인품을 보고 딸과 혼인시켜 살게 하였는데, 이백년(李百年)·이천년(李千年)·이만년(李萬年)·이...
-
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
경상북도 영천 지역 양산 이씨(陽山 李氏) 입향조. 양산 이씨는 신라 때 문장가(文章家) 이천일(李天一)을 원조(遠祖)로 하고,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에 양산군(陽山君)에 봉해졌으며 시호가 충민(忠敏)인 이백령(李栢齡)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성(李晟)의 본관은 양산. 자는 일성(日成)이다. 고조는 강계부사(江界府使)를 지내고 양산군(陽山君)에 봉...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단인(端人) 일선 김씨(一善 金氏)는 진사(進士) 김건준(金建準)의 딸로, 성산인(星山人) 이세하(李世賀)의 부인이다. 이세하는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 후손으로, 처음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17세(世) 이석보(李錫保)의 네째 아들 이방(李芳)이 이세하의 6대조가 된다. 이세하의...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수겸(李守謙)은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는 벽진 이씨(碧珍李氏)로 고조는 생육신(生六臣) 이맹전(李孟專)이며, 증조는 조산대부(朝散大夫) 대구교수(大丘敎授) 이순(李恂), 조부는 장사랑(將仕郞) 이배원(李培源)으로 영천 입향조이다. 부친은 장사랑(將仕郞) 이의(李椅), 모친은 계림 박씨(鷄林 朴...
-
조선 전기에 활약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인 서기 32년에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6부촌장의 의장(議長)이었으며, 혁거세(赫居世)를 신라 초대 왕에 추대...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시복(李時復)은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 후손이다. 처음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17세(世) 이석보(李錫保)의 넷째아들 이방(李芳)으로 이시복의 9대조가 된다. 이시복의 자는 내백(來伯), 호는 신와(愼窩)이며, 1758년(영조 34)에 태어났다. 고조는 통덕랑(通德郞) 이기(李淇...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이심(李淰)의 본관은 성산. 자는 혼원(混源), 호는 경우(敬宇)이다.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 李氏)의 후손으로, 고조는 영천으로 이주한 참봉(參奉) 이방(李芳)의 아들로 영릉참봉(英陵參奉) 이언기(李彦沂)이고, 증조는 이억령(李億齡)이며, 조부는 장사랑(將仕郞) 정읍훈도(井邑訓導) 이...
-
여주 이씨(驪州李氏) 경상북도 신녕현(新寧縣)[현 영천시] 입향조. 이운재(李雲載)는 고려(高麗) 중윤(中尹) 이은백(李殷伯)을 시조로 하고,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를 현조(顯祖)로 하며, 조선 태종(太宗) 때 보국공신(輔國功臣) 숭록대부(崇祿大夫) 좌의정(左議政)으로 구산군(龜山君)에 봉군된 이번(李璠)을 파조(派祖)로 하는 여주 이씨(驪州 李氏)...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이은해(李銀海)의 본관은 영천. 호는 행오헌(杏梧軒)이며, 고려 평장사(平章事)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고, 7세 상장군평장사(上將軍平章事) 이수춘(李守椿)을 파조(派祖)로 하는 영천 이씨(永川李氏) 상장군파(上將軍派)의 후손이다. 고조는 관찰사(觀察使) 이감(李敢)이며, 증조는 순천현감(順天縣監) 이거로(李居魯)...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 무인. 이응(李膺)의 본관은 영천이고, 1365년에 태어났다. 조부는 부사(府使) 이유(李瑜)이며, 아버지는 밀직 부사(密直副使) 이희충(李希忠)이다.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전주 최씨(全州崔氏)로 판서(判書) 최병례(崔丙禮)의 딸로, 슬하에 아들은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순몽(李順蒙)과 이계몽(李啓蒙)이 있다. 이응은...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의백(李宜白)의 본관은 벽진. 자는 여진(汝眞), 호는 봉강(鳳岡)이며, 1563년(명종 18)에 태어났다.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며, 고려 충렬왕·충선왕·충숙왕 3대에 걸쳐 시(詩)로 이름이 높았던 진현관 대제학 이견간(李堅幹)의 후손이다. 고조는 조산대부(朝散大夫) 대구교수(...
-
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벽진 이씨는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한다. 이종기는 고려 충렬왕·충선왕·충숙왕 3대에 걸쳐 시(詩)로 이름이 높았던 진현관 대제학 이견간(李堅幹)의 후손이며, 영천 입향조는 장사랑(將仕郞) 이배원(李培源)이다. 이종기(李宗基)의 본관은 벽진. 자는 찬경(璨卿), 호는 우파(愚坡)이며, 190...
-
영천 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
고려 말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었던 행정 구역. 이지폐현(梨旨廢縣)은 고려 시대 영주(永州) 이지은소(梨旨銀所)였는데, 고려 말에 이지현으로 승격되었다가 폐현(廢縣)되었다. 조선 태조 때 신녕현(新寧縣)에 편입되었는데, 이로 보아 이지폐현의 위치는 오늘날 신녕 일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7권 경상도 신녕현 고적조에 “이지폐현(梨...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천 이씨(永川李氏)는 고려 초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울군(高鬱君)[고울은 영천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천 이씨 울산군파(鬱山君派)는 원나라에 들어가 봉승랑(奉承郞) 겸 권농방어사(勸農防禦使)에 이르고 자금어대(紫金魚帶)를 하사받은 후 고려로 돌아와 지울주사(知蔚州事)가...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희백(李喜白)의 자는 백진(白眞), 호는 대암(臺嵒)이며, 1548년(명종 3)에 태어나 1608년(광해군 원년) 11월 23일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는 벽진 이씨로 충렬왕·충선왕·충숙왕 3대에 걸쳐 시(詩)로 이름이 높았던 진현관 대제학 이견간(...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다. 또한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가 동서로 뻗쳐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익산포항고속도로를 비롯하여 국도와 지방도 등이 통과하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193...
-
손응(孫凝)을 시조로 하고 손진충(孫盡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일직(一直) 손씨는 안동(安東) 손씨라고도 하며, 선계(先系)는 고려 초 중국 송(宋)나라 개국 2대 위(魏)왕, 3대 기(冀)왕 때 황제(皇帝) 등극을 두고 내란이 일어나 왕족과 귀족 세력이 고려로 망명·귀화하여 온 손응(孫凝)을 시조로 하고 있다. 원래 성은 순(荀)씨...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임고 서원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 수령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7.4m, 둘레는 5.95m에 이른다.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경상북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임고 서원의 은행나무는 전체적으로 수형이 웅장하고 안정된 형태로 자라고 있으며 생육도 양호한 편이다. 은행나무 남동쪽 20m 부근에는...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포리(林浦里)는 960년(고려 광종 11)대 마을 개척 당시 마을 앞 하천변에 울창한 버드나무 숲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포리는 본래 영천군 원당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비소면의 팔암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북안면 임포동이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
-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의 인동 장씨(仁同 張氏) 입향조. 인동 장씨의 시조는 고려의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며, 아들인 장선(張善)이 1072년(문종 26) 금오위 상장군(金吾衛 上將軍)에 올라 후손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본관(本貫)을 옥산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을 관...
-
영천의 아산 장씨 입향조. 아산 장씨(牙山 蔣氏)의 시조 장서(蔣壻)는 중국 송나라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신경위 대장군(神慶衛大將軍)을 지냈다. 고려 예종 때 금나라가 송을 침입하자 그는 상서(尙書) 이강(李綱)과 함께 항전할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배를 타고 망명하여 우리나라의 아산(牙山)에 표착하니, 이를 전해들은 고려 예종이 그에게...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창하리에 있는 영천 황보씨의 시조인 황보능장의 묘. 황보씨(皇甫氏)는 중국 안정(安定)에서 계출(屆出)된 성씨로서, 『영천황보씨세보(永川皇甫氏世譜)』에 의하면 황보능장(皇甫能長)이 고려 태조 때 금강성장군(金剛城將軍)으로 공을 세워 영천부원군(永川府院君)에 봉해져 그를 시조로 삼고 영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고 한다....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정담(鄭湛)의 본관은 영일. 자는 청윤(淸允), 호는 복재(復齋)이며, 1552년(명종 7) 2월 24일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서 태어나 1634년(인조 12)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
-
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도영(鄭島榮)의 본관은 영일. 초명(初...
-
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몽주(鄭夢周)의 본관은 영일. 초명은 정몽란(鄭夢蘭) 또는 정몽룡(鄭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며, 1337년 12월 영천군(永川郡) 치소 동쪽에 있는 우항리(愚巷里)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봉익대부판도판서(奉翊大夫版圖判書) 정림(鄭林)이며, 증조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정인수(鄭仁壽), 조부는...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정문예(鄭文裔)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 鄭氏) 후손이다. 고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판도판서(奉翊大夫行版圖判書)인 정림(鄭林), 증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 조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신.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였던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석임(鄭碩臨)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여대(汝大), 호는 월송재(月松齋)이며...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게 된 것은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 때부터이다. 정수...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 때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수번(鄭守...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정시창(鄭時昌)의 본관은 영일. 자는 덕순(德順)이며, 1634년(인조 12) 8월 28일에 태어나 1680년(숙종 6) 4월 19일에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였던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 공조판서(嘉善大夫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양필...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 공조판서(嘉善大夫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유목(鄭裕睦)...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였던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 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 공조판서(嘉善大夫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유준(鄭裕俊)의 본...
-
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의번(鄭宜...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이교(鄭以僑)의 본관은 영일. 자는 자미(子美),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며, 1498년(연산군 4) 12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고조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인데 이때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정지소(鄭至韶)는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시조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인 정습명(鄭襲明)이다. 정지소의 고조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이고, 증조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인데, 이때부터 영천 전촌(錢村)...
-
조선 중기 남양 제갈씨(南陽諸葛氏)의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 제갈씨(諸葛氏)는 중국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다. 원조는 주나라 우림장군(羽林將軍) 제갈영(諸葛嬰)이며, 현조(顯祖)는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유명한 제갈량(諸葛亮)[諸葛孔明]이다. 우리나라의 제갈씨는 신라 미추왕 때 귀화한 제갈충(諸葛忠)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후 고려 충선왕 때 평장사(平章事)로 구산부원...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고 전한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였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였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였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신.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함안 조씨(咸安趙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 입향조. 함안 조씨(咸安 趙氏)의 시조 조정(趙鼎)은 중국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에 두 아우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이 우리나라로 와서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도와 합천(陜川)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931년(태조 14)에 고창성(古昌城)에서 후백제 견훤군을 대파하고 동경주현(東京州縣)...
-
영천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건물인 조양각(朝陽閣)과 관련된 시문을 모아 번역한 시문집 서세루(瑞世樓)라고 불리기도 하는 조양각(朝陽閣)은 1368년(고려 공민왕 17) 당시 영천부사였던 이용(李容)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명원루(明遠樓)였다. 그러나 원래 있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으며, 현재의 건물은 1637년(인조 15) 군수...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초인간적인 존재를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문화 현상. 우리나라는 삼국 이전 시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등장하여 성장·발전·쇠퇴를 거듭하였고, 그 전개 과정에서 시대적·지역적 특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영천 지역의 종교 활동 역시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고, 불교와 기독교·천주교 외에...
-
고려 시대 영주(永州)에 속했던 특수 행정 구역. 죽장이부곡(竹長伊部曲)은 신라 시대 양주(良州) 임고군(臨皐郡)의 영현인 장진현(長鎭縣) 지역으로, 고려 시대에 죽장이부곡으로 바뀌어서 영주에 속하였다. 신라 시대 임고군은 오늘날의 경상북도 영천시와 포항시 일부를 관할하였는데, 죽장이부곡의 위치는 포항시 죽장면 일대이다. 『삼국사기』 권34, 지리지 양주 ‘임...
-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고 하심(河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진주 하씨(晋州河氏)는 고려 정종과 문종 연간에 걸쳐 사직(司直)을 역임한 하진을 시조로 하며, 영천 입향조는 하심이다. 하심은 아우 진사공(進士公) 하탄(河灘)이 무오사화(戊午士禍)를 당해 경상북도 영천으로 귀양을 당해 적소에서 세상을 뜨니 어린 세 조카 하사...
-
경상북도 영천시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창구동(倉邱洞)은 창고가 있었다는 데 연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이곳에는 관에서 관장하던 창고가 있었으므로 창고(倉庫)·창뚜들로 일컫다가 창구동이라 하였다. 창구동은 영천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한 마을로, 진청마당·개웅굴샘·옥터·객사터·성문터·형방터·호방터 등 속칭이 많은 지역이었다. 창구동은...
-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며, 조신충(曺信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을 비조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창상리에 있는 황보능장(皇甫能長)의 묘하 재실(墓下 齋室). 창암재는 영천 황보씨의 시조인 황보능장(皇甫能長)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황보능장은 영천의 호족 출신으로, 신라 말 고려 초의 혼란기에 영천 지방을 지키기 위해 금강성을 축조한 장군으로 전해오고 있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을 이룩한 역사적 인물로서 고려...
-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고 황귀범(黃龜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고려 충숙왕(忠肅王)부터 공민왕(恭愍王)까지 다섯 조정에서 벼슬을 하며 문하시랑(門下侍郞) 동중서(同中書)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역임하고 시호가 공희(恭僖)인 황석기를 시조로 하고, 조선조 주부(主簿) 및 교수(敎授)인 황효신(黃孝信)을 파조로 하는 창원 황씨(...
-
은해사(銀海寺)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로, 은해사가 자리한 팔공산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경산시·군위군·칠곡군에 걸쳐 있다. 갓바위를 경계로 대구 쪽으로는 동화사(桐華寺)가 있고, 영천 쪽으로는 은해사가 팔공산의 대표 사찰로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은 중악(中岳)·부악(父岳) 등으로 불려져 온 영남 지...
-
김지대(金之岱)를 시조로 하고 김시영(金是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김지대[1190~1266]는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을 하여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원종(元宗) 때 수태부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고 오산군(鰲山君)[청도군의 옛 이름]에 책봉되어 청도 김씨(淸道金氏)...
-
양기(楊起)를 시조로 하고 양효지(楊孝智)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청주 양씨는 중국에서 계출(系出)된 성씨이며 시조는 양기이다. 양기는 중국에서 태어나 원나라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위가 삼태(三台)에 이르렀으며, 1351년(충정왕 3)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같이 노빈도령(魯嬪都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체찰사(軆察使)...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 초파일[初八日]은 음력으로 매월 초순에 있는 8일을 말한다. 그러나 부처가 태어난 날이 음력 4월 8일이며, 초파일이란 일반 용어가 불교와 접목되면서 초파일하면 으레 4월 초파일을 연상하게 되었다. 초파일은 석탄일·불탄일·욕불일 등 다양한 용어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부처님 오신 날’로 일반화되었...
-
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현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동망(崔東望)의 본관은 영천. 고조는 훈도(訓導)로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된 최호(崔浩)이며,...
-
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이며, 화약 발명가.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현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무선(崔茂宣)의 본관은 영주(永州)[영천]. 고조는 시조 최한의 손자인 현감(縣監...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 최무선(崔茂宣)이 제조한 무기. 화포(火砲)의 역사는 고려 말 최무선의 화약 제조 성공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화약이 발명된 이후에 ‘대형 총통 속에 화약을 넣고 돌덩이를 쏘는 포’라는 뜻으로 화약을 이용하는 모든 포를 화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인 최무선은 고려 말 무신으로서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화...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연산은 지금의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한다. 최벽남(崔壁南)의 본관은 영천. 자는 천약(天若)이다. 고조는 충순위(忠順衛) 최윤정(崔潤...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의 대인(大人)이다.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연산은 지금의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용화(崔龍和)의 본관은 영천. 고조는 4세(世) 봉익대부(奉翊大夫) 전호위상호군(典護衛上護軍)...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신. 영천 최씨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연산은 현재의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우직(崔友稷)의 본관은 영천. 자는 순보(舜輔), 호는 유춘정(留春亭)이다. 고조는 예빈시 봉사(禮賓...
-
추계 추씨(秋溪秋氏)의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 추계 추씨(秋溪 秋氏)는 송나라에서 문과 급제 후 적부라(籍符羅)를 지내고 동쪽의 상서로운 기운을 보고 뗏목을 타고 고려로 돌아와 정착한 추엽(秋饁)을 시조로 하고 있다. 추두석(秋斗錫)의 자는 응오(應五), 호는 곡은(谷隱)이며, 1614년(광해군 6) 7월 26일에 태어나 1677년(숙종 3) 3월...
-
지경(池鏡)을 시조로 하고 지달기(池達沂)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충주 지씨(忠州池氏)는 중국 송나라 태학사로 고려 광종(光宗) 때 사신으로 들어와 귀화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태보평장사(金紫光祿大夫太保平章事)에 이르고 선의(善懿)라는 시호를 받은 지경을 시조로 하고, 5세(世) 지종해(池宗海)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충주(忠州...
-
치산 계곡(雉山溪谷)은 팔공산(八公山)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여름이면 팔공산의 수많은 골짜기에서 모인 물이 공산 폭포(公山瀑布)의 낭떠러지로 쏟아져 물안개를 뿜어낸다. 공산(公山)은 팔공산의 옛 이름으로 치산 계곡의 공산 폭포에 남아 있다. 치산 계곡에 팔공산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치산마을 사람들은 공산 폭포를 치산 폭포(雉山瀑布)라 부른다....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남아 있는 석조 문화재. 탑은 졸도파(卒都婆)·솔도파(窣堵婆)·제다(制多)·탑파(塔婆)·부도(浮屠)·방분(方墳)·원총(圓塚)·영묘(靈廟) 등으로 불리며, 처음에는 석가모니의 묘(墓)였다. 그 뒤 불교의 전파에 따라 인도·중국·한국·일본 등 불교국에서는 가장 존엄함을 나타내는 건축 방법과 재료를 택하여 다수의 탑이 건립되었다. 중국은 전탑(...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부계면 및 대구광역시 동구에 걸쳐 있는 산. 팔공산(八公山)의 명칭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말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 고려 태조가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당하였다. 그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
-
경상북도 영천(永川)은 고려 말의 학자이자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지역이다. 1368년(고려 공민왕 17) 당시 부사(副使)였던 이용(李容)이 정몽주와 함께 남천의 절벽 위에 지은 건물인 조양각(朝陽閣)과 일편단심 충절을 지킨 정몽주의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고자 세운 임고 서원(臨皐書院)이 있는 곳이다. 1. 정몽주의 출...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 문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시문집. 정몽주[1337~1392]의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 또는 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 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과 함께 고려 말의 삼은(三隱)으로 불리고 있다. 고려 말의 대표적 성리학자...
-
조선 중기 청주 한씨(淸州韓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 입향조. 청주 한씨는 고려 개국공신 위양공(威襄公) 한란(韓蘭)을 시조로 한다. 한동(韓棟)의 호는 노은(蘆隱)이며, 고조는 이조정랑(吏曹正郞) 한서봉(韓瑞鳳), 증조는 여주판관(驪州判官) 한언륜(韓彦倫), 조부는 내금위장(內禁衛將) 한민(韓愍), 아버지는 한흥서(韓興緖)이다. 부인은 월성 이씨(月城李...
-
곽경(郭鏡)을 시조로 하고, 곽수녕(郭遂寗)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현풍 곽씨(玄風郭氏)는 중국 송나라 관서(關西) 홍농(弘農) 출신으로 고려 인종[1122~1146] 때 한국에 들어와 문하시중평장사을 지내고 금자광록대부로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진 곽경을 시조로 하며, 영천 입향조는 곽수녕이다. 곽수녕이 영천으로 입향한 정...
-
1995년 4월 문화체육부에서 과학의 달 문화 인물로서 ‘과학자 최무선’이 선정되자, 최무선(崔茂宣) 장군의 태생지인 영천에서는 영천 최씨 문중과 지역 문화예술계·교육계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가운데 대대적인 추모 기념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1995년 2월 15일에 ‘최무선장군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고, 1995년 4월 21일 과학의 날에 종합적인 기념 행사를 실시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