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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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김진성(金璡聲)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문옥(文玉), 호는 연호(蓮湖)이다. 고조는 김중담(金重燂)이며, 증조는 김이기(金履基), 조부는 김여택(金麗宅)이다. 부친은 김성익(金聖翊)이며, 모친은 하양 허씨(河陽 許氏)로 허담(許譚)의 딸이다. 부인은 영양 최씨(永陽 崔氏) 최박성(崔璞省)의 딸이며, 재취는 창녕 조씨(昌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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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하고,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며, 정몽길(丁夢吉)과 정몽상(丁夢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압해가 나주에 소속되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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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천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나주, 자는 술지(述之), 호는 농고(聾皐)이다. 고조는 정남규(丁南奎)이며, 증조는 정시대(丁始大), 조부는 정태언(丁台彦)이다. 아버지는 정주한(丁周翰)이며, 어머니는 고성 이씨(固城 李氏)로 이종근(李宗根)의 딸이다. 부인은 양산 이씨(陽山 李氏)로 이중원(李重源)의 딸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정석호(丁錫浩)와 정재성(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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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하던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나주 정씨(羅州 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 사람이다. 벼슬은 승상(丞相)에 이르렀으나 신라 문성왕 때 신라에 귀화했다. 조선 세종(世宗) 때에 형 정몽길(丁夢吉)과 함께 신녕(新寧) 효정리(孝亭里)로 들어온 예조참판(禮曹參判) 정몽상(丁夢祥)이 영천 입향조이다. 정응거(丁應居)의 고조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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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정응기 처 오천 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각. 정응기(丁應璣)의 처 오천 정씨(烏川鄭氏)[영일 정씨(迎日鄭氏)]는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입을 피해 신산[노고산]으로 시부모와 함께 피신했다. 하지만 왜군에게 붙잡혀 시아버지는 왜군에게 죽고 시어머니도 죽이려 하면서 자신을 핍박하자 기지를 발휘해 시어머니를 보내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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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누정. 활천정(活川亭)은 조선 철종(哲宗) 때의 학자인 정갑조(丁甲組)를 추모키 위해 문하생과 후손들이 마을 입구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갑조는 나주 정씨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관찰사 정몽길(丁夢吉)의 후손으로 자는 술지(述之), 호는 농고(聾皐)이다. 정갑조는 어릴때부터 효자로 소문이 났고, 자라서는 문사(文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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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삼국 시대 무덤. 효정리 고분 떼는 남북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고분 떼의 남쪽 유적[일부 발굴 조사됨]은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강변마을[갱마] 서쪽 능선에 있고, 북쪽 유적은 효정리 괴정마을 북동쪽 능선에 있다. 효정리 고분 떼 중 남쪽 유적의 일부만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경위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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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서당. 효정리 서당은 나주 정씨(羅州丁氏) 문중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고종 시대인 1800년 후반에 건립하였고, 효정리 마을의 서당지 좌측에 있다. 효정리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두르고 서당의 우측 모서리 담장 부분에 사주문을 내어 대문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