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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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강봉학(姜鳳鶴)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약한 의병으로 1890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에서 태어났으며 1914년 군자금 활동으로 피체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10월 순국하였다. 강봉학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강봉은(姜鳳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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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권규섭(權奎燮)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좌영장으로 활약한 의병이다. 권규섭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인숙(仁俶)으로, 1883년(고종 20) 지금의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권영식(權英植)과 어머니 경주 최씨(慶州崔氏)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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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에서의 근대(近代)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학자에 따라서는 근대의 시점을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로 보기도 한다. 1. 대한제국기 현재의 영천 지역은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개혁으로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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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김수곡(金水谷)은 1875년 지금의 영천시 신녕면에서 태어났으며,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조직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가담하여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정환직의 명령에 따라 동지들과 무기를 휴대하고 1907년 10월 29일 흥해 읍내에 들어가 우편취급소를 습격하여 소장 일본인 시원위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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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영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해방 운동. 영천 지역의 독립 운동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乙未義兵)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는데, 1895년 을미의병과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의병 투쟁, 1919년 3·1 독립운동, 1920년대 대중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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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 또는 외지 출신으로 영천 지역 내외에서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국권 회복 운동과 독립 쟁취를 위해 활동한 인사들.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이요, 호국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영천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한말에는 의병 항쟁을 전개하여 국권 회복 운동에 앞장섰으며,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당한 일제 강점기에는 3·1 만세운동을 비롯하여 학생운동과 의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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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나무에 글을 새긴 인쇄용 판. 목판은 주로 사찰과 서원, 문중(門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집 간행에 필요한 인쇄용 판을 말한다. 영천 지역에서는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고 조선 왕조가 숭유정책을 취하면서 일찍부터 유가적 문풍(文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1. 고려 시대 여말 선초 영천 지역의 유풍(儒風) 진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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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박광(朴匡)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답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박주광(朴柱匡)이다. 박광은 1906년 3월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조직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의거할 때 군위와 의흥 지역을 맡아 모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영천과 청송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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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박한종(朴漢宗)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치만(致萬)이고, 1855년(철종 6)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도일리에서 태어나 1934년에 세상을 떠났다. 박한종(朴漢宗)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 정책이 노골화되어 가자 민족적 위기의식을 느끼고 항일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동지를 규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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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의 영천 문화원 내에 있는 구한말 영천 지역에서 조직되었던 의병 단체의 순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산남의진비는 구한말 일본의 국권침탈에 대응하여 의병을 일으켰던 정환직(鄭煥直)[1844~1907]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1862~1907] 의병장을 비롯해 수많은 장병들의 공훈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 경상북도의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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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조직된 항일 의병 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중추원 의관 정환직(鄭煥直)이 광무황제로부터 의병 봉기의 밀지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와 함께 영천을 중심으로 거병한 의병 부대이다. 초기에 정용기가 관군에게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1906년 9월 그의 석방을 계기로 의병진을 재편하여 영천·경주·청하·청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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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변천과 흥망 과정의 기록. 영천(永川)은 삼한 시대 부족 국가 골벌소국(骨伐小國)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切也火郡)·임고군(臨皐郡)·영주(永州)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영천이라 하였는데,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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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정광후(鄭光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한 정광후(鄭光厚)가 영천 지역에 입향하였다. 정광후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후 가선대부(嘉善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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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에 정환직(鄭煥直)과 정용기(鄭鏞基) 부자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한 재사(齋舍). 충효재는 1905년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아 영천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항일투쟁을 벌인 정환직과 정용기 부자의 충효 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동네 이름을 검단동에서 충효동으로 고쳐 1923년에 건립하였다. 정환직[1843~1907]은 한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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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한말 국권 회복을 위한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무력 투쟁. 의병 항쟁(義兵抗爭)은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기 전에 스스로 일어난 민군(民軍)의 무력 투쟁을 말한다.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의병은 민군이다. 나라가 위급하면 바로 의병이 일어나는데 조정이 명령하는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적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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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이규필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주범(周範), 호는 관천(觀川)으로 1878년(고종 15) 지금의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에서 태어나 1915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이정영(李庭榮)과 어머니 김녕 김씨(金寧金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이규필(李圭弼)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주축이 된 영천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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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이형표(李亨杓)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영천 남부지역의 책임자로 활동한 의병이다. 이형표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성범(聖範), 호는 처우당(處憂堂)이며, 1856년 지금의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서 태어나 1924년 세상을 떠났다. 이시화(李時化)와 파평 윤씨(坡平尹氏)와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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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전응팔(全應八)의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국삼(國三), 호는 석강(石崗), 이명(異名)은 전상택(全相宅)이다. 1878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서 태어나 1971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전록영(全祿永)과 어머니 경주 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전응팔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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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장. 정용기(鄭鏞基)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관여(寬汝), 호는 단오(丹吾)이며, 정진택(鄭鎭宅) 또는 정관녀(政寬女)라고도 불린다. 아버지 정환직(鄭煥直)과 어머니 여강 이씨(麗江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1862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당시 검단리]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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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장. 정환직(鄭煥直)은 한말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제2대 의병장이다. 정환직의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치우(致右), 자는 좌겸(左兼), 호는 우석(愚石)이라 하였으나, 환직(煥直)으로 개명 후 자는 백온(伯溫), 호는 동엄(東广)으로 바꾸었다. 1844년 아버지 정유원(鄭裕원)과 어머니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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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조상환(曺相煥)은 의병 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도포장으로 활약하였다. 조상환(曺相煥)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석보(石甫)이며, 1866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거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병전(曺秉銓)과 어머니 경주 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조상환은 1906년 3월 정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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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창구동(倉邱洞)은 창고가 있었다는 데 연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이곳에는 관에서 관장하던 창고가 있었으므로 창고(倉庫)·창뚜들로 일컫다가 창구동이라 하였다. 창구동은 영천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한 마을로, 진청마당·개웅굴샘·옥터·객사터·성문터·형방터·호방터 등 속칭이 많은 지역이었다. 창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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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최치환은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 조직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후봉장으로 활약하였다. 최치환(崔致煥)의 본관은 전주. 1875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당시 검단리]에서 태어나 1944년 세상을 떠났다. 최치환(崔致煥)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이한구(李韓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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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충효리(忠孝里)는 대한제국 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이 마을 출신 산남의진(山南義陣) 대장 정환직(鄭煥直)·정용기(鄭鏞基) 부자의 충효를 기리어 충효리라 하였다. 충효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일견동·검단동·내검동과 청하군 죽남면 하거동 일부를 병합하여 영천군 자양면 충효동이 되었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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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황보근(皇甫覲)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원직(元直)이며, 초명은 황보명용(皇甫名容)이다. 1882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서 태어났으며 1963년 세상을 떠났다. 황보근(皇甫覲)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과 더불어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