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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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마을은 화산 산맥의 한 지맥이 동남쪽으로 뻗고, 다른 한 지맥이 동일 방향으로 뻗어 각각 마을 앞뒤의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사이에 들을 형성하고, 구일안못에서 발원한 냇물이 남으로 흘러 들의 중앙부를 통하여 신녕천을 이루는 지류를 형성하는 곳이다. 옛날부터 마을 뒤 백학산은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다. 영천의 가상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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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 있는 능라군(綾羅君) 권덕신(權德臣)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광사재(廣思齋)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 권응수 장군의 아버지 능라군(綾羅君) 권덕신(權德臣)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17세기 초엽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1925년 경에 중건된 것으로 보이며, 1993년에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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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호국(護國)에 관한 사실. 영천은 일찍이 고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국난 극복의 보루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영천이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영천인들의 국난 극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호국 여신(女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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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권란(權鸞)의 본관은 안동(安東). 고조는 효행으로 정려된 현감(縣監) 권질(權晊)이며, 증조는 군수(郡守) 권시(權偲), 조부는 안동 권씨 영천 입향조인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열(權挒)이다. 부친은 증(贈) 호조 참의(戶曹參議) 권처정(權處貞)이며, 모친은 숙부인(淑夫人) 청주 양씨(淸州 楊氏)로 참의(參議) 양효지(楊孝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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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권응수(權應銖)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의병장으로 많은 공훈을 세워 1604년(선조 37)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으로 책록되어 효충 장의 협력 선무공신(效忠仗義協力宣武功臣)이라 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도총부 도총관이 된 뒤 1606년 경상도방어사, 1608년 남영장(南營將)을 겸하였으나 그해 7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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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권응수(權應銖)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소 앞에 세운 묘표(墓表). 권응수[1546~1608]의 본관은 안동, 호는 백운재(白雲齋)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에 급제한 후 수의부위권지(修義副尉權知)·훈련원부봉사(訓鍊院副奉事)를 지냈으며, 경상좌수사 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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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권응수(權應銖)[1546~1608]의 초상. 권응수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중평(仲平), 호는 백운재(白雲齋)이다. 경상북도 영천 신녕에서 태어났다. 그는 1583년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부봉사를 거쳐 1592년 경상좌수사 박홍(朴泓)[1534~1593]의 막하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향 신녕에서 의병을 모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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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권응수(權應銖)의 유물. 권응수[1546~1608]는 무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신녕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임란 초기 신녕·영천·경주 일원의 의병장들과 연대하여 관군과 함께 영천성을 수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임란 후 선무공신에 책록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권응수 장군 유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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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권응심(權應心)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성(仲星), 호는 일성(日省)이며, 1554년(명종 9)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열(權挒)이며 영천 입향조이다. 증조는 증(贈) 호조 참의(戶曹參議) 권처정(權處貞)이며, 조부는 권붕(權鵬)이다. 아버지는 권덕온(權德溫)이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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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내림과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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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서기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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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성씨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켜 식읍(食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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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서기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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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안동 권씨의 영천 입향조는 광주목사(光州牧使) 권열(權挒)이며, 권호병은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으로 책록되어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진 권응수(權應銖)의 후손이다. 권호병(權虎秉)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로 이주한 호군(護軍) 권산보(權山甫)의 5세손이다. 권호병의 자는 이백(彛伯), 호는 신암(愼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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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에 있는 의병장 권응수를 모시는 서원. 귀천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던 권응수와 조경온을 배향한 서원으로 1676년 건립되었다가 훼철된 후 1923년 복설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강당, 영정각을 비롯한 4동의 건물이 있다. 귀천 서원은 지방도 919호선에서 치산 관광길을 따라 치산 계곡 쪽으로 가다보면 치산 마을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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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양 김씨의 시조(始祖)는 영의공(英毅公) 김충(金忠)이다. 712년 10월 1일 중국 하남성(河南省) 여남(汝南)에서 출생하였으며 벼슬은 당 왕조에서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755년(신라 경덕왕 14)에 안렴사(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죽도에 표류해 오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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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류몽서(柳夢瑞)의 본관은 서산. 1534년에 태어나 1604년(선조 37) 10월 10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진사(進士) 류윤경(柳允庚)이며, 증조는 충순위사전(忠順衛司典) 류수종(柳秀宗), 조부는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이다. 아버지는 봉상시봉사(奉常寺奉事) 류한문(柳漢文)이며, 어머니는 영양 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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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류영회(柳榮晦)의 본관은 서산. 자는 사엽(士燁)이며, 1565년(명종 20)에 태어났다. 고조는 충순위사전(忠順衛司典) 류수종(柳秀宗), 증조는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 조부는 봉상시봉사(奉常寺奉事) 류한문(柳漢文)이다. 아버지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류몽서(柳夢瑞)이며, 어머니는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이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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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권치선(權致宣)과 그 아들 권상현(權象鉉)의 살림집. 권치선의 본관은 안동, 호는 면천(勉川)이며,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고, 아들 권상현[아명 권상현(權尙鉉)]의 호가 면와(勉窩)이다. 마을 개천 건너에는 권치선의 부친인 화남(華南) 권재병(權載秉)[1782~1852, 자 성유(聖裕)]의 살림집인 화남재(華南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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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에 있는 손덕침(孫德沈)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모헌재는 모헌 손덕침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손덕침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영천 출신 의병장이다. 자는 사원(士源), 호는 모헌(募軒), 본관은 월성(月城), 참봉 손주(孫胄)의 아들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銖)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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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나무에 글을 새긴 인쇄용 판. 목판은 주로 사찰과 서원, 문중(門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집 간행에 필요한 인쇄용 판을 말한다. 영천 지역에서는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고 조선 왕조가 숭유정책을 취하면서 일찍부터 유가적 문풍(文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1. 고려 시대 여말 선초 영천 지역의 유풍(儒風) 진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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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영천 관련 인물이 쓴 각종 시문(詩文) 등을 모아 편집한 책. 문집(文集)은 특정한 주제 의식이나 문체를 의식하는 것과 달리, 문체나 주제에 특별한 제약 없이 특정한 인물의 전 저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편집도 다른 부류의 전적과 달리, 사적(私的)인 성격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집의 출간은 저자의 사후 학연(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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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의 문화 활동에 대한 소산으로서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형 무형의 자산. 문화재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예술·과학·종교·도덕·법률·경제·민속·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 가치를 이루어 온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에서 문화재를 역사상·예술상·학술상·관상상(觀賞上) 가치가 큰 것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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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천 지역의 무신. 본관은 구산(龜山), 자는 치서(致瑞), 호는 괴암(槐庵). 고조할아버지는 박이종(朴以宗), 증조할아버지는 박수창(朴壽昌), 할아버지는 박자형(朴自亨)이다. 아버지는 박세방(朴世芳)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烏川鄭氏)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영천 이씨(永川李氏)이며, 아들은 박몽렴(朴夢濂)와 박몽설(朴夢卨)이며, 사위는 주덕창(周德昌)과 정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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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 7월 14일 영천 지역 의병 연합진이 신녕현 박연(朴淵)에서 왜군을 물리친 전투. 박연 전투는 1592년(선조 25) 4월 22일 왜군에 의해 영천성이 함락된 후, 정세아(鄭世雅)·정대임(鄭大任)·권응수(權應銖) 등의 의병장이 연합하여 7월 14일 신녕현 박연에서 왜군을 물리친 전투이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의병과 관군은 사기가 크게 올랐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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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사리 마을에 있는 백암 김응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백암사가 자리하고 있는 사리마을[담골]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백암(栢巖) 김응택(金應澤)[1551~1597]의 자손들이 420여 년 간 세거해온 마을이다. 김응택의 본관은 의성. 자는 취용(就用), 호는 백암(栢巖)이다. 참봉 김순번(金順蕃)의 아들이며 임진왜란 때 백암산(柏岩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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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천문로에 있는 사회 단체. 영천시 한천(漢川)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왜군의 만행과 약탈이 이어질 때, 이 지역의 지사(志士)들이 도탄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구하고자 4월 27일 창의 기병(倡義起兵)하여 5월 6일 이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왜적과의 전투에서 전국 최초의 승리를 거둔 승첩지이다. 이 승리는 후일 임진왜란 사상 육전(陸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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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의 영천 문화원 내에 있는 구한말 영천 지역에서 조직되었던 의병 단체의 순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산남의진비는 구한말 일본의 국권침탈에 대응하여 의병을 일으켰던 정환직(鄭煥直)[1844~1907]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1862~1907] 의병장을 비롯해 수많은 장병들의 공훈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 경상북도의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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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서원은 조선조에 발달한 사립 고등 교육 기관으로 1543년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건립한 백운동 서원이 효시로서, 고려 말 이후 존재하던 서재의 강학 기능과 더불어 선현을 봉사하는 사묘(祀廟)를 가지고 있었으며, 풍속 교정, 지방 여론 조성 등의 기능을 갖춘 향촌 문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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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촌리(石村里)는 마을에 멋진 바위가 있어 석촌(石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때 석계정(石溪亭)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시 석촌이라 하였다고 한다. 석촌은 조선 인조 때 경주 김씨 형제가 정착한 마을이며, 박연(朴淵)덤은 마을 앞의 절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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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성씨(昌寧成氏)는 고려 중엽 때 향직의 호장을 역임한 성인보(成仁輔)를 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손자 성공필(成公弼)·성한필(成漢弼) 대에서 크게 두 계통으로 갈라져 6세에 내려와 성기(成紀)를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를 포함하여 13파로 분파되어 세계를 이어왔는데, 신녕 고을에 입향한 성오원(成五元)은 판서공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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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성적(成績)의 본관은 창녕. 자는 우경(禹卿), 호는 모와(慕窩)이며, 1552년(명종 7)에 태어나 1622년(광해군 14) 12월 13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성달문(成達文)이며, 증조는 성욱(成旭), 조부는 충순위(忠順衛) 성오원(成五元)이니 신녕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禮曹參議) 성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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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충신. 성훈(成勳)의 본관은 창녕. 자는 충경(忠卿), 호는 의헌(義軒)이며, 1535년 중종(中宗) 을미년(乙未年)에 태어났다. 고조는 성달문(成達文)이며, 증조는 성욱(成旭), 조부는 충순위(忠順衛) 성오원(成五元)이니 신녕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禮曹參議) 성덕룡(成德龍)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문소 김씨(聞韶金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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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신녕면(新寧面)은 본래 신녕군의 지역으로 신녕 현청이 있는 곳이므로 현내면이라 했었다. 그러나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현내면과 치산면을 합하여 신녕군의 이름을 따서 신녕면이라 개칭하였다. 신라 시대 사정화현(史丁火縣)·화산(花山)이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이름인 신녕으로 개명하여 양주(良州) 소관 임고군(臨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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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열(權挒)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의 세거 성씨.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본래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워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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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안여해(安汝諧)의 본관은 순흥. 자는 극화(克和), 호는 의동(義桐)이며, 1568년(선조 원년)에 태어나 1630년에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참봉(參奉) 안상(安常)이며, 증조는 영천 입향조인 찰방(察訪) 안우곤(安遇坤), 조부는 경릉참봉(敬陵參奉) 안세걸(安世傑)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 안도(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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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변천과 흥망 과정의 기록. 영천(永川)은 삼한 시대 부족 국가 골벌소국(骨伐小國)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切也火郡)·임고군(臨皐郡)·영주(永州)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영천이라 하였는데,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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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 7월 26일부터 7월 28일까지 영천 지역 의병들이 영천성을 탈환하기 위해 왜군과 싸운 전투. 영천복성 전투는 1592년(선조 25) 4월 22일 왜군에게 영천성이 점령당하자 영천 지역 의병이 중심이 되어 인근 의병들과 연합하여 성을 탈환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의병이 승리를 거둔 중요한 전투로 꼽히며, ‘영천복성 전투’ 또는 ‘영천성 복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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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문내동·성내동·교촌동·창구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읍성. 영천읍성은 1591년(선조 24)에 축성되었지만 이듬해 임진왜란의 전화(戰禍)를 입어 파괴되었다. 지금은 고문헌의 기록과 고지도, 현장 확인 등을 통해 성곽의 범위를 대략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의 추정 범위는 영천시 문내동·성내동·교촌동·창구동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남천과 절벽,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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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남동부 중앙에 위치한 시. 영천시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노계(蘆溪)박인로(朴仁老), 최무선(崔茂宣) 등 많은 선현들을 배출하였으며,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는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킨 호국·충절의 고장이다. 지리적으로 동경 128°42′~129°09′, 북위 35°49′~36°11′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350㎞ 지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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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행해지는, 중국 공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 학문과 종교적 의례 및 활동. 유교는 중국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도덕 사상이다. 인(仁)을 기본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을 내재한 종교 개념으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베트남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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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이국빈(李國賓)의 자는 여관(汝觀), 호는 국헌(菊軒)이며, 1560년(명종 15)에 태어나 1624년(인조 2)에 세상을 떠났다.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로, 고조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이석보(李錫保), 증조는 영천으로 이주한 참봉(參奉) 이방(李芳)이며, 조부는 영릉 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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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이군빈(李君賓)의 본관은 성산. 자는 중관(中觀), 호는 남포(南浦)이며, 1568년(선조 원년)에 태어나 1640년(인조 18)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이석보(李錫保)이고, 증조는 영천으로 이주한 참봉(參奉) 이방(李芳)이며, 조부는 영릉참봉(英陵參奉) 이언기(李彦沂)이다. 아버지는 이억령(李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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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이온수(李蘊秀)의 본관은 경주.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천(李蒨)을 파조로 하는 국당공파(菊堂公派)의 후손이다. 자는 여실(汝實), 호는 가은(稼隱)이며, 1558년(명종 13) 11월 2일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 1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부호군(副護軍) 이옥삼(李玉三)이며, 증조는 사직(司直) 이의달(李義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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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다. 또한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가 동서로 뻗쳐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익산포항고속도로를 비롯하여 국도와 지방도 등이 통과하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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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임진왜란 당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승리한 역사적인 장소. 임란의병 한천전(漢川戰) 승첩지는 임진왜란 당시 영천 지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승리한 곳으로서 현재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 4월 이후 약 한 달 동안 파죽지세로 왜군이 북상했다. 이 과정에서 영천 한천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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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북도 영천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에 도착한 왜군은 경상도 지역 주요 고을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영천성은 1592년 4월 22일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영천·신녕 지역의 의병들은 인근 지역의 의병들이 연합하여 각처에서 소규모의 유격전을 전개하여 승전하였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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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하던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나주 정씨(羅州 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 사람이다. 벼슬은 승상(丞相)에 이르렀으나 신라 문성왕 때 신라에 귀화했다. 조선 세종(世宗) 때에 형 정몽길(丁夢吉)과 함께 신녕(新寧) 효정리(孝亭里)로 들어온 예조참판(禮曹參判) 정몽상(丁夢祥)이 영천 입향조이다. 정응거(丁應居)의 고조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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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정응서(鄭應瑞)의 본관은 영일. 자는 군길(君吉), 호는 학남(鶴南)이다. 고조는 찰방(察訪) 정이휘(鄭以揮)이며, 증조는 찰방(察訪) 정차성(鄭次誠)이니 신녕(新寧) 고을로 이거하였다. 조부는 정윤온(鄭允溫)이며, 아버지는 정언침(鄭彦琛)이니 양대 모두 침랑(寢郞) 벼슬을 하였다. 어머니는 대구 배씨(大邱 裵氏)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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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의번(鄭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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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의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효각. 정의번(鄭宜藩)[1560~1592]의 본관은 영일, 자는 위보(衛甫), 호는 백암(柏巖)으로 정세아(鄭世雅)의 아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박소’에서 권응수와 정대임이 승리하는데 앞장섰고, 아버지 호수 정세아와 함께 의병[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복성(復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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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정천리(鄭千里)의 본관은 영일. 초명은 찬(讚), 자는 양지(揚之), 호는 원호(遠湖)이고, 1548년(명종 3)에 태어났다. 고조는 정광후(鄭光厚) 현손인 정이은(鄭以殷)이고, 증조는 수직(壽職) 호군(護軍) 정흥인(鄭興仁)이며, 조부는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 정귀달(鄭貴達)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병조 참의(兵曹參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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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조경온(曺景溫)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율(汝慄), 호는 임계(林溪)이며, 1548년(명종 3) 5월 9일에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장사랑(將仕郞) 조계조(曺繼祖)이며, 증조는 정릉참봉(貞陵參奉) 조응하(曺應河), 조부는 경릉참봉(敬陵參奉) 조영(曺英)이다. 아버지는 정릉참봉(貞陵參奉) 조희장(曺希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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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천군과 신녕현은 경상도 소속으로 별개의 지방 행정 단위로 존속하다가 일제 강점기 때 영천군으로 통합된 이래 현재 영천시 행정구역과 큰 변동 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왕조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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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조종악(趙宗岳)은 한양 조씨(漢陽趙氏)로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며, 영천으로 입향한 정릉 참봉(定陵參奉) 조문림(趙文琳)이 고조이다. 증조는 충순위(忠順衛) 조임(趙恁)이고, 조부는 참봉 조원서(趙元緖)이며, 아버지는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된 조침(趙忱)이다. 어머니는 수원 김씨(水原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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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갑현마을에 있는 주택. 청류당은 충의공 권응수(權應銖) 장군의 손자로 갑현마을을 개척한 조선 숙종 때 부호군을 지낸 권산보(權山甫)[1629~1708]의 종택이다. 청류당은 신녕면에서 28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4.2㎞ 지점에 있는 화남 1리 갑현마을에 있다. 마을 초입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영천성을 탈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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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산 계곡(雉山溪谷)은 팔공산(八公山)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여름이면 팔공산의 수많은 골짜기에서 모인 물이 공산 폭포(公山瀑布)의 낭떠러지로 쏟아져 물안개를 뿜어낸다. 공산(公山)은 팔공산의 옛 이름으로 치산 계곡의 공산 폭포에 남아 있다. 치산 계곡에 팔공산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치산마을 사람들은 공산 폭포를 치산 폭포(雉山瀑布)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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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 5월 6일 신녕현 한천(漢川) 대동(大洞)[화남면 삼창 3리]에서 왜군을 소탕한 전투. 한천 전투는 영천성 복성 이전 여러 전투 중의 하나로 권응수 의병군이 신녕현 동편 한천 대동에서 지역민을 노략질하던 왜군 13명과 첩자 일당 30여 명을 소탕한 전투다. 비록 작은 전투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초기 아군이 승리한 소중한 전투로 한천승첩 또는 한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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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남리(華南里)는 화산(華山)의 남쪽이 되므로 화남리라 하였다. 화남리는 본래 신녕군 치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무암동·온천동·상미동·갑현동(甲峴洞)과 별이동(別二洞) 일부를 병합하여 화남동이라 하여 영천군 신녕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3일에는 동(洞)을 이(里)로 바꾸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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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 1리 갑현마을에 있는 주택 . 화남재는 조선 순조 때 무신으로 장기·공주·신도 등의 첨사를 역임했던 권재병(權載秉)[1782~1852, 자는 聖裕, 호는 華南]의 종택으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화남재는 신녕면에서 28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4.2㎞ 지점에 있는 화남 1리 갑현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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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고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 화산(華山)은 해발 828m로, 군위군 고로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 가운데 가장 큰 산이다. 화산의 정상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기복이 대체로 평탄하여 평지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자형의 산줄기를 따라 산성을 쌓은 것이 화산 산성이다. 화산 산성은 해발 828m지점에 둘레 200m,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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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누정. 화포정(華圃亭)은 조선 고종 때의 학자로 안동 권씨(安東權氏) 복야공파의 후손인 권호현(權浩鉉)의 강학지소(講學之所)이다. 권호현은 천성이 탁월하고 행의가 지순(至純)하였으며 평생 동안 후학 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화포정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크게 공을 세운 권응수(權應銖)[1546~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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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 있는 서원. 회계 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임계(林溪) 조경온(曺景溫)을 배향하고 있다. 회계 서원은 삼창리 마을 뒤쪽 숲 뒤 바깥 못의 우측에 있다. 회계 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임계 조경온을 배향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신녕면 치산리의 구천서원에 충의공 권응수와 함께 제향하였으나 문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