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 출신 또는 외지 출신으로 영천 지역 내외에서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국권 회복 운동과 독립 쟁취를 위해 활동한 인사들.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이요, 호국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영천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한말에는 의병 항쟁을 전개하여 국권 회복 운동에 앞장섰으며,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당한 일제 강점기에는 3·1 만세운동을 비롯하여 학생운동과 의열 투쟁...
1919년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은 국내외의 정세에서 발생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 등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 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다. 뿐만 아니라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미국 윌슨(Wilson)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는 피억압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
1919년 3월 6일부터 4월 8일까지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신녕공립보통학교의 교사 및 학생들이 전개한 만세 시위 운동. 신녕공립보통학교 만세 운동은 교사와 학생들이 야간에 전개한 만세 시위 운동이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만주·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계속되었다.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변천과 흥망 과정의 기록. 영천(永川)은 삼한 시대 부족 국가 골벌소국(骨伐小國)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切也火郡)·임고군(臨皐郡)·영주(永州)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영천이라 하였는데,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