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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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善梅 |
이칭/별칭 | 의수(毅叟),파와(怕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554년 4월 6일 - 최선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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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26년 11월 18일 - 최선매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81년 - 최선매 공조참의로 추증 |
묘소|단소 | 최선매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장제고내동 |
사당|배향지 | 고산재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장제고내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대표 관직|경력 | 공조참의 추증 |
[정의]
조선 후기 영천 지역의 문인.
[가계]
본관은 경주, 자는 의수(毅叟), 호는 파와(怕窩). 고조할아버지는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 최우강(崔祐江)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 최득경(崔得涇),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최삼락(崔三樂)이다.
아버지는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최하태(崔夏泰)로 경주에서 영천으로 처음 옮겨 살았으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증 숙부인(淑夫人) 경주 이씨(慶州李氏)로 이상윤(李祥潤)의 딸이며, 아들로 최연(崔演)과 최동로(崔東魯)가 있다.
[활동 사항]
최선매(崔善梅)[1554~1626]는 부래산(浮來山) 아래에 살면서 포은(圃隱) 정몽주의 원우(院宇)[옛 임고 서원]의 유생이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원이 소실될 당시에 불길에 뛰어들어 선생의 영정과 위판을 받들어 기룡산(騎龍山) 석굴 속에 피안(避安)시켰으며, 난리가 평정 된 후에 서원을 중건하여 다시 안치하였다.
1881년(고종 18)에 공조 참의로 추증되고 사림이 기적비를 서원의 앞에 세우고 포은의 방손(傍孫)인 정희규(鄭凞奎)가 비문을 지었다.
[묘소]
최선매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장제고내동(長堤古內洞) 임좌(壬坐)이며, 후손 최병민(崔炳玟)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장제고내동(長堤古內洞) 묘소 옆에 묘재인 고산재(古山齋)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