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304 |
---|---|
한자 | 蔣益馦 |
이칭/별칭 | 우약(友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정의]
영천의 아산 장씨 입향조.
[개설]
아산 장씨(牙山 蔣氏)의 시조 장서(蔣壻)는 중국 송나라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신경위 대장군(神慶衛大將軍)을 지냈다. 고려 예종 때 금나라가 송을 침입하자 그는 상서(尙書) 이강(李綱)과 함께 항전할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배를 타고 망명하여 우리나라의 아산(牙山)에 표착하니, 이를 전해들은 고려 예종이 그에게 아산을 식읍으로 하사하고, 아산군(牙山君)에 봉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아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가계]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우약(友若). 고조는 장완(蔣琓)이며, 증조는 승사랑(承仕郞) 장응영(蔣應榮), 조부는 군자감정(軍資監正) 장문귀(蔣文龜), 아버지는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장계조(蔣繼祖)이다.
부인은 문화 류씨(文化柳氏)이며, 슬하에 4남을 두니 장사의(蔣思義)·장시의(蔣時義)·장창의(蔣昌義)·장홍의(蔣弘義)이다.
[활동 사항]
장익혐[1598~1657]은 통덕랑(通德郞)으로 전연사직장(典涓司直長)을 역임하였으며,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에서 신녕현(新寧縣)[현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당지 2리]으로 은거하여 빈궁함에도 그 절개를 잃지 않고 행의(行儀)로 칭송을 받았다.
[묘소]
장익혐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여덕리 조림산(鳥林山) 동록(東麓)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