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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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允謙 |
이칭/별칭 | 형수(亨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개설]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한다. 유성간(柳成澗)은 문화 유씨 9세손으로 1252년(고려 고종 39)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자광록대부(僉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졌다. 유성간으로부터 서산 유씨(瑞山柳氏)로 분관(分貫)되었다.
[가계]
유윤겸(柳允謙)의 본관은 서산, 자는 형수(亨叟)이며, 1409년(태종 9)에 태어났다. 고조는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서녕군(瑞寧君)으로 봉해진 유숙(柳淑)으로 문희(文僖)의 시호를 받아 문희공파(文僖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증조는 관찰사(觀察使) 유후(柳厚)이며, 조부는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해 조선 태종 때 관찰사(觀察使)를 지내고 서녕군(瑞寧君)에 봉군된 유기(柳沂)이다.
아버지는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철성 이씨(鐵城李氏)로 양헌공(襄憲公) 이원(李原)의 딸이다. 슬하에 아들 세자보덕(世子輔德) 유혜동(柳惠仝)이 있다.
[활동 사항]
유윤겸은 할아버지 유기가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사건에 연루되어 죄를 입고 아버지 유방선 역시 연좌죄로 관노가 되었다가 뒤에 사면되어 평민이 되었다.
아버지가 억울한 생활을 하는 동안 두보시(杜甫詩)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배워 과거를 치르기 전에 세종의 부름을 받아 포의(布衣)로서 두시의 찬주(撰註)에 참여하였다. 과거응시를 허락하여 달라고 상언하여 허락을 얻어 진사가 되고 1462년(세조 8)에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3위로 급제하였다.
1465년 사헌부감찰이 되자 사간원에서 그의 선대 할아버지의 죄를 지적하면서 규찰임무를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미 벼슬길이 허용되었던 관계로 그대로 감찰직이 제수되었다. 이듬해 교리로서 발영시(拔英試)에 2등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성균관사성을 지냈으며, 1480년(성종 11)에는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과 창화(唱和)를 할 수 있는 젊은 문신들에게 두시를 교습시켰다.
그 이듬해 왕명을 받아 조위(曺偉) 등과 함께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 25권을 완성하여 강희안(姜希顔)의 필체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하여 국문학사상 큰 업적을 남겼다. 1482년 홍문관부제학이 되었을 때는 언로를 널리 개방할 것[開廣言路], 현인과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할 것[任用賢才] 등을 상언하여 왕의 인정을 받은 바 있다.
이듬해 공조참의가 되었으며, 또 왕명에 의하여 서거정(徐居正)·노사신(盧思愼)·허종(許琮)·어세겸(魚世謙)·유순(柳洵) 등과 함께 『연주시격(聯珠詩格)』과 『황산곡시집(黃山谷詩集)』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1484년 대사간을 거쳐, 다시 부제학이 되어 시관(試官)으로서 문신의 강서(講書)를 맡기도 하였다. 이어서 동부승지·호조참의·돈령부도정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