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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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圃隱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종문 |
[정의]
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 문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시문집.
[저자]
정몽주[1337~1392]의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 또는 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 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과 함께 고려 말의 삼은(三隱)으로 불리고 있다.
고려 말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동시에 당대를 대표하는 한시 작가였으며, 정치·교육·외교 등 다방면에 걸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이 「하여가(何如歌)」를 부르면서 조선 왕조 개국에 동참할 것을 유혹하자, 즉석에서 「단심가(丹心歌)」를 불러 고려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노래했으며, 그러다가 마침내 이방원 일파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던 만고에 보기 드문 충신이었다.
[편찬/간행 경위]
『포은집』은 10번 정도 간행되었다.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현재 남아 있는 판본 중 신계본(新溪本)이 가장 오래되었다.
포은의 문인 변계량(卞季良)의 「포은시고서(圃隱詩藁序)」에 따르면, 『포은집』의 간행을 위한 유고 수집은 1409년(태종 9)에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포은의 아들 정종성(鄭宗誠)과 정종본(鄭宗本)에 의하여 『포은집』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뒤인 1439년(세종 21)이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은집』은 포은의 현손인(玄孫)인 정세신(鄭世臣)이 신계 군수로 있을 때인 1533년(중종 28)에 간행한 이른바 신계본(新溪本)인데, 신계본은 초간본에다 포은의 연보(年譜)를 더하여 간행한 것이다.
[구성/내용]
간행될 때마다 『포은집』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으므로 『포은집』이라고해서 내용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됨으로써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영천 임고 서원 간행본[1607년 간행]을 보면, 책의 첫머리에는 포은의 유상(遺像)이 실려 있고, 이어서 권채(權採)·노수신(盧守愼)·변계량(卞季良)·하륜(河崙)·박신(朴信) 등의 서문이 실려 있다. 1~2권에 25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3권은 잡저(雜著)와 습유(拾遺)로 이루어져 있는데, 잡저에는 산문 8편이, 습유에는 시 2편과 산문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는 「포은선생년보고이(圃隱先生年譜考異)」와 포은과 관계되는 다른 사람의 글들을 모아 놓은 부록이 첨부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포은집』은 일차적으로 저자인 정몽주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이다. 그러나 고려 말에 다방면에 걸쳐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쳤던 그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 책은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연구하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포은집』에 수록되어 그의 시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시는 대체로 호방하고 웅심한 시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춘흥(春興)」과 같은 작품은 중등학교 한문교과서에 오래도록 수록되어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포은의 이와 같은 작품들이 고려 말기 한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각별한 것으로 평가되며, 외교사절로 여러 번에 걸쳐서 중국·일본 등을 방문하면서 지은 시들은 당시 문화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