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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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圓溪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원각길 50-6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우경원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있는 벽진 이씨 영천 종중 재실.
[개설]
원계재(圓溪齋)는 벽진 이씨 영천 종중에서 종사를 논의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원각골의 계류를 바라보면 용산정사(龍山精舍), 독락당(獨樂堂) 등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원계재 맞은 편에는 용계서원이 있다.
[변천]
원계재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나 기문과 묵서 등을 확인할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에 방과 대청에 합판 반자를 설치하여 천장을 막았다. 5년 전에는 담장 및 대문을 수리하고 기단을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맞배집 양 측면의 풍판은 노후화되어 무너진 것을 3년 전에 방부목으로 새롭게 보수하였다.
[형태]
원계재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대지에 남서향 하여 세워져 있다. 일곽은 토석담장을 두르고 전면에 일각문을 세워 재사로 출입하게 하였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평면 구성은 좌측부터 마루방, 방 2칸, 대청을 드린 편당형이다. 벽장 등의 평면적인 확장은 없으나 건물 전·후로 쪽마루를 설치하여 공간을 확장하였는데 좌협칸의 마루 칸 후면에만 쪽마루를 두지 않았다.
정지한 대지에 기단을 높게 조성하고 넓적한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기단 상면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기둥은 모두 각주를 세웠는데 단면 크기가 200×200㎜로 상부로 갈수록 민흘림을 두었다. 기둥 상부는 장혀와 굴도리를 수장하고 보아지 없이 보를 결구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제형 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했다. 창호는 방의 경우 전면과 후면에 창을 내었는데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문, 후면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청방간 출입문은 좌측 방의 경우 아래 굽널을 끼운 쌍여닫이 굽널문을 달고, 우측의 경우 사분합불발기문을 달았다. 대청 양 측면과 뒷벽에는 판벽을 설치하고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 형식으로 양 측면은 풍판으로 막혀져 있다.
[현황]
원계재 좌측으로 나란히 용산정사(龍山精舍), 독락당(獨樂堂)이 원각산 계류를 바라보며 배치되어 있다. 재사를 일곽하는 토석담장은 하부에 석축을 2단 쌓고 그 위에 담장을 축조하였다.
재사 건물에는 별도의 현판이나 편액이 걸려 있지 않다. 목부재는 연목과 풍판, 창호 등이 신재로 최근에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풍판은 기존의 목재와 다른 방부목을 이용하여 보수되었는데 처짐을 방지하기 위해 기단 위에 기둥을 세워 보강하였다. 처마는 전·후측에 파도현상이 약하게 나타난다.
원계재는 마루의 짜임과 청판이 매우 오래되었다. 청판의 너비가 매우 넓고 전·후 들여진 쪽마루는 도리 방향으로 긴 청판이 끼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원계재는 영천 지역의 일반적인 재사 건축의 평면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방이 중앙에 있는 것이 독특하다. 기문과 상량문 등이 없어 건립연대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사용된 목부재와 마루 청판 짜임 등은 조선 시대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