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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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蘆溪祠堂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38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경재 |
건립 시기/일시 | 1770년경 - 노계 사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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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80년경 - 노계 사당 현 위치로 이건 |
현 소재지 | 노계 사당 - 경상북도 영천시 도천리 383번지 |
성격 | 사당 |
양식 | 3량가|맞배기와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밀양 박씨 노계공파 종중 |
관리자 | 박정환 |
문화재 지정 번호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개설]
조선 중기의 문인 박인로(朴仁老)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박인로[1561~1642]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으로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영천군 북안면에서 태어났다.
박인로는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13세에 「대승음(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절구를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세아(鄭世雅)의 휘하에서 별시위로 전공을 세우고, 이어 1598년(선조 31)에 좌절도사 성윤문(成允文)의 막하에 수군으로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듬해 무과에 등과하여 수문장·선전관·만호를 지냈으며, 40세 이후에는 은거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인 활동을 하였다.
[위치]
영천 시내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영천경찰서 방향으로 가다보면 냉천교차로가 나오고 교차로에서 경주 방면으로 좌회전한 후 북안농공단지까지 진행하면 지방도 912호선[운문·명주 방면]과 만나는 반정교차로가 나온다. 지방도 912호선을 따라 북안면 소재지까지 진행한 후 면소재지에서 3.2㎞ 가량 진행하면 좌측으로 경북 영광 학교가 있는 도천리 초입에 다다른다.
영광 학교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학교를 우측에 두고 마을로 들어서서 200m를 가면 세 갈래 길과 만나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200m를 더 들어가면 좌측 방향으로 마을회관으로 가는 갈림길과 만난다. 갈림길에서 좌측에 있는 논 쪽을 바라보면 나무에 둘러싸인 노계 사당이 있다.
[변천]
노계 사당은 1770년경 도계 서원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서원 철폐령으로 폐철되었다가 사당만 남아있던 것을 1880년경 현 위치에 이건한 것이다.
[형태]
노계 사당은 사당 건물 1동과 일각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둘러 일곽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평면이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사당 전후로 넓은 외벌대 기단을 마련한 다음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올린 형태이다.
가구는 3량가 맞배기와집으로 상부 가구를 간략하게 꾸미고 처마는 홑처마로 구성했다. 평면 형태는 3칸 통칸으로 처리하고 바닥은 마루 시설 없이 시멘트 마감했으며, 창호는 좌우 측면과 배면으로는 설치하지 않고 사당 전면으로만 쌍여닫이 굽널띠살문을 설치했다. 지붕은 좌·우측 박공면(牔栱面)에는 풍판을 달았는데 장혀와 도리 뺄목이 드러나도록 했다.
[현황]
노계 사당은 이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퇴락이 진행되고 있다. 사당 여러 부분에서 증·개축의 흔적이 보이는데 3~4년 전에 담장과 지붕이 허물어져 수리가 있었다. 사당 내부는 기존의 마루 시설을 없애고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기단에도 시멘트로 마감하는 등 개축의 흔적을 보인다. 향사는 매년 음력 12월 5일에 지냈으나 최근에 와서는 12월 하정(下丁)에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노계 사당은 초기 건립 당시 도계 서원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훼철된 후 사당만 남아있던 것을 현 위치에 이건한 것이다. 현재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도계 서원 내에 사당이 따로 있고 현재로서는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으로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퇴락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